노무현 대통령이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가운데), 천정배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재·보궐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천착했던 ‘김혁규 총리 카드’의 배경이다. 노대통령의 정치특보였던 문희상 의원의 이런 설명대로라면 노대통령이 ‘김혁규’에게 매달린 이유는 실용주의적 총리상 정립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물론 ‘차기’를 향한 밑그림도 보이지 않게 깔려 있다.
‘김혁규 카드’ 백지화 당분간 혼란
그러나 이런 노대통령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김혁규 의원이 용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용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6·5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조치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노대통령은 당분간 혼란 속의 여유를 갖게 됐지만 화는 풀리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흐트러진 집권 2기 구상에 속이 더 상한 모습이다. 노대통령은 화가 나면 극도로 논리정연해지는데, 6월4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협의에서 그 ‘논리’를 무기로 신기남 의장 등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지도부를 조목조목 ‘박살’냈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당과 청와대가 서로 달리 가야 하는 현실을 주입시켰다. “청와대 운영에 불필요한 논란이나 간섭을 최대한 자제해주기 바란다”면서 “(대통령도) 그동안 수직적 지위에서 간섭한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와 대등하고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던 당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노대통령의 모습에는 냉기가 흘렀다. 당은 은근히 대통령이 당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했다. 비서실장이나 정치특보를 통하지 않은 당지도부와 노대통령의 정례회동을 희망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도 무참히 짓밟혔다.
“대통령도 때때로 국회에서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막가는’ 식의 발언은 김혁규 총리 카드 등을 놓고 나오는 당내 불협화음에 대한 정면대응으로 읽힌다. 천정배 원내대표가 “80여명의 초선들을 만나봤는데 반대 없이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며 파문 진화에 나섰지만 노대통령은 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노대통령의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고위 당·청협의를 정례화해달라”는 신의장의 요청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하자”며 사실상 면전에서 거절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정치특보제를 폐지, 당직자들을 경악시켰다. 이는 당과 청와대 간 직접 채널이 닫히게 됐음을 뜻한다. 노대통령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6월6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49회 현충일 추념식을 마치고 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재·보선 결과를 미리 감지한 노대통령은 집권 2기 청와대와 당의 관계 등에 대해 선을 긋고 먼저 치고 나가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상 이날을 계기로 청와대 주변에서는 청와대의 정국운영 변화론이 증폭됐다. 문의원도 “정치와 정무 분야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여야 개념을 넘어서 노대통령의 통치술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란 섣부른 진단도 내놓는다. 이런 분위기는 재·보선 참패와 관련, 여당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지도부 인책론, 조기전당 대회론 등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넘나드는 통치술 조만간 시작?
갈등의 씨앗이었던 김혁규 총리 지명의 백지화는 이런 흐름의 시작이다. 문의원은 노대통령이 집권 2기 행보의 출발점을 탈(脫)정치에서 찾는다. “노대통령의 4일 말씀을 감정표현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당정관계 철학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당이 대통령의 젖을 뗄 시기라는 것. 또 “노대통령은 앞으로 개혁과 경제 문제에 집중하고 정치에 거리를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쟁에 휘말린 정치특보를 단칼에 날린 게 이런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 즉 탈정치, 탈권위로 축적된 힘을 동북아, 남북문제, 한국의 미래에 중점 투자하겠다는 얘기다. 노대통령은 7일 국회 연설에서도 같은 뜻을 밝혔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이런 구상이 제대로 먹혀들지는 속단하기 이르다. 우리당은 청와대와의 직접 통로를 시스템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특히 인사권 등과 관련, 당의 문제제기를 잘못된 것으로 보는 청와대 인식에 대해 “국회가 인준해야 하는 총리의 경우 당과 협의해야 정상 아니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특보를 없앤 일에 대해서도 “문의원의 과도한 언급을 탓한 것이지 그 자리가 필요 없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강변한다. 단절이냐, 새로운 관계설정이냐를 놓고 청와대와 당이 신경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이런 갈등은 결국 노대통령의 집권 2기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노대통령 앞에 정치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노대통령이 애착을 보였던 동진(東進)정책은 실패했고, 영남 출신 주도로 구성된 ‘영남발전특위’ 구상은 호남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김혁규 총리 카드를 접은 노대통령은 새로운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다른 불협화음은 가능하다. ‘차기 수업’에 나선 ‘정동영-김근태’에 대한 노대통령의 고민도 깊어간다. 선택과 조정 여하에 따라 여권은 권력재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6·5 재·보궐선거 참패는 여권과 청와대를 다시 번민과 고민에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