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 저녁,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올림피아극장 앞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올림피아극장은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무대지만, 이날 공연은 극장 안의 무대가 아닌 극장 밖 간이 단상에서 벌어졌다. 코미디언 디유도네가 극장측의 공연 취소에도 불구하고 1200여명이 모인 노상의 단상에서 개그 공연을 강행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공영TV ‘프랑스3’의 생방송 토크쇼에서 반(反)유대주의적 발언을 하는 바람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가뜩이나 빈발하는 반유대주의적 폭력 행위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민감한 시점에 그의 풍자 섞인 짤막한 발언은 일파만파로 번져 프랑스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발언으로 디유도네는 프랑스의 유대인 공동체는 물론 반(反)인종차별 시민단체 등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고, 연초에 전국 각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그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2월 초 리옹에서는 취소를 번복하는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열렸다. 그러나 공연장 앞에서 수백명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급기야는 공연 중 객석에 산(酸)이 든 병이 날아들어 관객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이어졌다.
코미디언의 차별 발언 ‘논쟁 도화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파리의 올림피아극장도 공연 이틀 전 안전을 이유로 공연 백지화를 선언했다. 디유도네는 이에 불복, 항의의 표시로 극장 앞 거리 한복판에서 계획된 공연을 강행한 것이다. 흑인인 그는 자신이 그동안 수많은 인종차별을 받아왔다며 “진정한 인종차별의 희생자는 흑인과 아랍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흑인과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은 여과 없이 전달하면서 유독 유대인에 대한 발언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그의 비판이다.
이번 사건은 프랑스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과 함께 반유대주의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경향이 다시 쟁점화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파리 동부 외곽 갸니에서 발생한 유대인학교 방화사건을 비롯해 도처에서 유대교회 약탈사건이 보고됐다. 또한 유대교 기념물과 유대인 상점에 대한 훼손행위, 유대인 대상 폭력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에는 라파랭 총리 주재로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퇴치를 위한 부처간 공동위원회’가 처음으로 소집됐다.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웠고, 반유대주의가 새삼 다시 등장하는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2월16일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서는 17년 만에 카차프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 폭력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 같은 행태를 하루빨리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프랑스는 유대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유럽 최초로 도입한 국가로, 일찍이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뿌리를 내렸다. 현재 5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유럽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프랑스 정치, 경제, 언론 등 각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반유대주의 문제가 표면화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내부 요인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나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드러난 극우파의 약진이고, 다른 하나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 인구의 영향력이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정치 이념의 한 축으로 삼는 극우파에게는 프랑스 내 유대인 출신들의 활약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지난해 12월 르몽드지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22%가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르펜이 2002년 대선 2차투표에 진출하며 프랑스 정치지형의 변화를 보여준 지 2년이 되는 지금도 극우주의는 여전히 이 나라 정치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반유대주의의 또 다른 축은 약500만명으로 추정되는 아랍권 출신의 이슬람 세력이다. 이들은 이민 2, 3세들의 성장과 함께 프랑스 사회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도르 착용 논쟁’에서 보여지듯,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독자 문화와 가치를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반목, 대치를 거듭해온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 간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프랑스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유독 프랑스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이 15개국 7000여명의 유럽인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 1위로 ‘이스라엘’이 지목됐다. 59%의 응답자가 이스라엘을 세계평화의 걸림돌로 지적했는데, 이는 미국과 이란·이라크 등을 앞선 수치다. 조사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결과는 유럽에서 다시 반유대주의 정서가 불거지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했다.
2월19일 브뤼셀에서는 유럽 내 반유대주의 움직임을 논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유럽 각국의 정치인과 유대계, 이슬람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최근의 경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이스라엘 샤론 정부의 강경한 외교노선에 대한 유럽의 반대와 유럽인의 반유대 정서 상승이 일치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울러 1930~40년대의 반유대주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도록 각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반유대 정서가 하루아침에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반유대주의 정서가 더욱 표면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전쟁을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인식하는 이슬람 세력이 있는 한, 그리고 그 공격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가 공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이들간의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유럽은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보안장벽 설치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공영TV ‘프랑스3’의 생방송 토크쇼에서 반(反)유대주의적 발언을 하는 바람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가뜩이나 빈발하는 반유대주의적 폭력 행위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민감한 시점에 그의 풍자 섞인 짤막한 발언은 일파만파로 번져 프랑스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발언으로 디유도네는 프랑스의 유대인 공동체는 물론 반(反)인종차별 시민단체 등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고, 연초에 전국 각지에서 열릴 예정이던 그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2월 초 리옹에서는 취소를 번복하는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열렸다. 그러나 공연장 앞에서 수백명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급기야는 공연 중 객석에 산(酸)이 든 병이 날아들어 관객이 부상하는 불상사가 이어졌다.
코미디언의 차별 발언 ‘논쟁 도화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파리의 올림피아극장도 공연 이틀 전 안전을 이유로 공연 백지화를 선언했다. 디유도네는 이에 불복, 항의의 표시로 극장 앞 거리 한복판에서 계획된 공연을 강행한 것이다. 흑인인 그는 자신이 그동안 수많은 인종차별을 받아왔다며 “진정한 인종차별의 희생자는 흑인과 아랍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흑인과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은 여과 없이 전달하면서 유독 유대인에 대한 발언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그의 비판이다.
이번 사건은 프랑스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과 함께 반유대주의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경향이 다시 쟁점화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파리 동부 외곽 갸니에서 발생한 유대인학교 방화사건을 비롯해 도처에서 유대교회 약탈사건이 보고됐다. 또한 유대교 기념물과 유대인 상점에 대한 훼손행위, 유대인 대상 폭력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에는 라파랭 총리 주재로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퇴치를 위한 부처간 공동위원회’가 처음으로 소집됐다.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웠고, 반유대주의가 새삼 다시 등장하는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2월16일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서는 17년 만에 카차프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 폭력 문제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 같은 행태를 하루빨리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프랑스는 유대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유럽 최초로 도입한 국가로, 일찍이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뿌리를 내렸다. 현재 5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유럽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프랑스 정치, 경제, 언론 등 각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반유대주의 문제가 표면화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내부 요인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나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드러난 극우파의 약진이고, 다른 하나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 인구의 영향력이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정치 이념의 한 축으로 삼는 극우파에게는 프랑스 내 유대인 출신들의 활약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지난해 12월 르몽드지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22%가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르펜이 2002년 대선 2차투표에 진출하며 프랑스 정치지형의 변화를 보여준 지 2년이 되는 지금도 극우주의는 여전히 이 나라 정치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반유대주의의 또 다른 축은 약500만명으로 추정되는 아랍권 출신의 이슬람 세력이다. 이들은 이민 2, 3세들의 성장과 함께 프랑스 사회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도르 착용 논쟁’에서 보여지듯, 이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독자 문화와 가치를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반목, 대치를 거듭해온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 간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프랑스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유독 프랑스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이 15개국 7000여명의 유럽인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 1위로 ‘이스라엘’이 지목됐다. 59%의 응답자가 이스라엘을 세계평화의 걸림돌로 지적했는데, 이는 미국과 이란·이라크 등을 앞선 수치다. 조사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결과는 유럽에서 다시 반유대주의 정서가 불거지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케 했다.
2월19일 브뤼셀에서는 유럽 내 반유대주의 움직임을 논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유럽 각국의 정치인과 유대계, 이슬람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최근의 경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이스라엘 샤론 정부의 강경한 외교노선에 대한 유럽의 반대와 유럽인의 반유대 정서 상승이 일치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울러 1930~40년대의 반유대주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도록 각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반유대 정서가 하루아침에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반유대주의 정서가 더욱 표면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전쟁을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인식하는 이슬람 세력이 있는 한, 그리고 그 공격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한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가 공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이들간의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유럽은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보안장벽 설치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