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토이치’는 1962년 이후 26편이나 만들어진 시리즈물의 새로운 버전이다. 시리즈 가운데 가쓰 신타로가 연기한 맹인 검객 자토이치는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이었고, 이영화의 스타일은 이후 동양권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액션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소개된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가 새로 만든 버전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스승이었던 사이토 치에코의 부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연기한 사무라이 역시 가쓰 신타로가 열연한 주인공처럼 장님 검객이자 맹인 안마사이며, 도박꾼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악당들이 지배하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는 복수를 꿈꾸는 떠돌이 게이샤 자매를 만나 그들을 돕기로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그 마을로 들어온 떠돌이 검객 하토리를 상대하게 된다.
굉장히 전형적인 사무라이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들처럼 무자비한 폭력과 차가운 유머의 무덤덤한 결합이다. 심지어 영화는 시대극이라는 설정이 종종 잊혀질 정도로 현대적이고 도회적이기까지 하다(반백의 머리를 쿨한 현대식 헤어스타일로 자르고 금발로 염색한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의 모습을 보라!). 그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면 시대극의 사실성도 포기해버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탭댄스를 추는 영화의 유명한 결말이 대표적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사무라이 영화 속엔 장르가 예고해주는 장엄함과 진지함은 사라진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지만 그들의 죽음엔 비장감이 없고 액션은 종종 의미 없이 허무하다. 장르의 공식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와 영화의 리듬은 이따금씩 따로 논다. 보통 영화에선 클라이맥스여야 할 자토이치와 하토리의 대결은 자토이치의 이웃집에 사는 미치광이의 발악보다 특별히 더 중요하지도 않다.
이런 식의 일탈을 기존 장르에 대한 냉소로 읽느냐, 아니면 자신의 스타일을 전통을 빌려 담아내는 또 다른 시도로 받아들이느냐는 관객들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일본 액션 영화 특유의 무시무시한 결벽증적 학살이 이러한 장르 비틀기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도 될 듯하다.
그런 ‘피투성이 청결함’은 기타노 다케시의 이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진지함이 어느 정도 사라진 그 빈 틈 속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기타노 다케시가 감독·연기한 사무라이 역시 가쓰 신타로가 열연한 주인공처럼 장님 검객이자 맹인 안마사이며, 도박꾼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악당들이 지배하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그는 복수를 꿈꾸는 떠돌이 게이샤 자매를 만나 그들을 돕기로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그 마을로 들어온 떠돌이 검객 하토리를 상대하게 된다.
굉장히 전형적인 사무라이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들처럼 무자비한 폭력과 차가운 유머의 무덤덤한 결합이다. 심지어 영화는 시대극이라는 설정이 종종 잊혀질 정도로 현대적이고 도회적이기까지 하다(반백의 머리를 쿨한 현대식 헤어스타일로 자르고 금발로 염색한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의 모습을 보라!). 그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면 시대극의 사실성도 포기해버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탭댄스를 추는 영화의 유명한 결말이 대표적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사무라이 영화 속엔 장르가 예고해주는 장엄함과 진지함은 사라진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지만 그들의 죽음엔 비장감이 없고 액션은 종종 의미 없이 허무하다. 장르의 공식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와 영화의 리듬은 이따금씩 따로 논다. 보통 영화에선 클라이맥스여야 할 자토이치와 하토리의 대결은 자토이치의 이웃집에 사는 미치광이의 발악보다 특별히 더 중요하지도 않다.
이런 식의 일탈을 기존 장르에 대한 냉소로 읽느냐, 아니면 자신의 스타일을 전통을 빌려 담아내는 또 다른 시도로 받아들이느냐는 관객들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일본 액션 영화 특유의 무시무시한 결벽증적 학살이 이러한 장르 비틀기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도 될 듯하다.
그런 ‘피투성이 청결함’은 기타노 다케시의 이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진지함이 어느 정도 사라진 그 빈 틈 속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