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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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시스템 작동 멈췄나

비서관 23명 청와대 떠나 뿔뿔이 … ‘이 전 실장 역할 과장’ 제기 속 ‘기본 틀 여전’ 시각도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1-07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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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 시스템 작동 멈췄나

    지난해 2월, 대통령비서실 출범 직전 토론회에 참석한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왼쪽). 기대 섞인 표정이 눈길을 끈다.

    ”정권말기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는 개혁인데 과연 관료들을 데리고 개혁이 잘 되겠나. 공무원들이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유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아닌가. 아무래도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바뀐 것 같다.”

    최근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 연말 단행된 청와대 개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총선 출마 등을 이유로 한 386그룹의 대거 퇴진과 이어진 이정우 정책실장의 2선 후퇴, 그리고 관료 출신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의 정책실장 기용을 놓고 “노대통령이 개혁이 아닌 안정적인 권력운영 쪽으로 방향을 튼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졌다. 이제는 소수파가 돼버린, 노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측근 그룹 내부에서도 불안감을 표출하는 이가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으로 대표되던 초기 청와대 코드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이광재 시스템’의 작동이 멈추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박세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가 편찬한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라는 책을 교과서로 지금의 대통령비서실 뼈대가 만들어졌는데 이 과정에 이 전 실장이 적지 않게 관여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동안 청와대를 떠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사실상 이 전 실장이 주축이 돼 구성됐던 초기 청와대 시스템이 붕괴된 듯한 느낌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11명 총선 출마 … 나머지는 현업 복귀 등 새 인생

    실제 지난해 8월과 12월 비서실 개편으로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비서관 가운데 23명이 청와대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서관급 이상만 보면 초기 구성원 3분의 2가 바뀐 셈이다. 이 가운데 총선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이해성 전 홍보수석, 김만수·김현미·서갑원·박범계·윤훈렬·문학진·곽해곤·박기환·김용석·박재호 전 비서관 등 11명. 나머지는 전공을 살려 현업에 복귀하는 등 비서관 이력과 무관한 분야에서 인생설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변인을 지낸 송경희씨는 학계 진출을 모색 중이고, 춘추관장을 지낸 권영만 전 비서관은 MBC 복귀가 거론되고 있다. 황덕남 전 법무비서관은 변호사 업무를 재개했으며, ‘노무현의 눈물’ 등 선거 카피를 만든 송치복씨도 광고업계로 복귀했다. 외무고시 출신인 박종문 전 국정홍보비서관은 일본에서 외교관으로 근무 중이다.



    물론 이들 비서관들의 청와대 탈출을 곧 대통령비서실 시스템 붕괴와 연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권 1년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대다수 비서관들이 청와대를 떠났다는 점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비서진이 흔들리면 이들의 보좌를 받는 노대통령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과연 이 전 실장이 비서실에서 차지한 몫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광재 시스템’으로 불러도 될 만큼 대통령비서실에서 그의 비중은 결정적이었을까. 노대통령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국정상황실장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힘이 커 보였던 것일 뿐 청와대 시스템을 이광재 한 사람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박세일 교수가 청와대 골격을 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박교수를 노대통령에게 소개한 사람은 이 전 실장이 아니라 정윤재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이라고 말했다. 정위원이 KDI 국제정책대학원 재학시절 은사인 박교수와 이각범 교수 등을 노대통령에게 소개했고, 이들이 주장하는 미국식 대통령비서실 시스템에 노대통령이 공감하면서 지금의 청와대 구조가 탄생했다는 것.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가 가동되면서 이 전 실장은, 박교수팀은 물론 정권출범 과정에 컨설팅을 맡은 삼성경제연구소측과 수시로 접촉하며 세세한 문제를 다듬고 정리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인사는 “이 과정에서 비서관급은 아니지만 행정관 인사에 이 전 실장을 주축으로 한 노대통령 측근 386들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광재씨가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된 뒤 여권 인사들로부터 각종 인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 정가에는 “공식 라인의 추천을 받더라도 이 전 실장이 밀어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정부투자기관 인사에도 이 전 실장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설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 전 실장의 한 측근은 “그런 소문은 이 전 실장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말했다. 국정상황실장은 청와대의 인사추천위원회의 한 멤버다.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는 위원장 문희상 비서실장과 간사인 정찬용 인사수석, 문재인 민정수석, 유인태 정무수석, 그리고 정책상황실장과 국정상황실장을 포함해 모두 6명으로 구성된다. 이 위원회에서 참석자들이 개별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사 대상자에 대한 평가와 검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천거할 사람을 가려낸다.

    그런데 다른 참석자들에 비해 이 전 실장은 사람에 대한 정보에 관한 한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앞서의 측근은 “국정상황실 자체가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부서 아닌가. 또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의 정보가 일차적으로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상업무에 쫓기는 비서실장이나 다른 수석들에 비해 사람에 관한 정보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이 전 실장이 인사추천위원회에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전 실장과 인사 관련 업무를 함께했던 한 인사는 “모든 정보가 이 전 실장에게만 모이면서 청와대 인사 관련 부서에서 정보 편중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노대통령 월권 봉쇄 … “2인자로 볼 수 없다”

    이 전 실장을 아는 사람들은 “이 전 실장은 무척 빠른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발빠르게 수집해와 대응방안을 내놓는 등 이 전 실장만큼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청와대 근무시절,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모두에게 몇 차례 개인적 이메일을 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잘해보자”는 뜻의 메일이었지만 이를 두고 “그가 왜 청와대 모두에게 메일을 보내느냐”며 의아해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이런 이 전 실장의 활동이 증폭되면서 외부에는 마치 그가 청와대 2인자인 것처럼 비치게 됐다는 게 측근 인사들의 해명이다.

    이 전 실장의 측근은 “노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안다면 이광재를 청와대의 2인자였다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대통령의 인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분권’과 ‘참여’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월권’에 대해서 비록 측근이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청와대는 정무와 정책, 외교안보 등 대통령의 통치영역별로 각각 포스트를 두는 3두마차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무의 총괄자로 비서실장을, 경제·사회정책의 조율사로 정책실장을, 그리고 외치·안보 분야는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조언을 구하는 식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사람이 바뀌고 정책상황비서관실이 경제비서관실과 사회비서관실로 나뉘기는 했지만 3두마차체제라는 기본 골격이 바뀌지는 않았다”며 “노대통령 통치의 기본 철학인 분권과 참여, 그리고 월권의 원천봉쇄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광재 시스템’으로 불렸던 청와대 기본 틀은 이 전 실장이 떠난 뒤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인사 원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화도 적지 않다. 밖으로는 노대통령이 이광재 안희정 등 측근 인사들의 조언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년 초, 이 전 실장은 노대통령에게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경제브레인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김 전 수석도 친구인 정운찬 서울대 총장과 함께라면 노대통령을 적극 돕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 전 수석을 만난 노대통령의 반응은 뜨악했다고 한다. 한 측근인사는 “흔한 말로 배짱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대통령수석비서관 인선 때는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노대통령이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은 수석비서관 내정자에 대해 이번에는 이 전 실장을 비롯한 대통령 측근들이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측근의 조언을 물리치고 그 인사를 수석비서관에 임명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판단해 좋으면 밀어붙이고 싫으면 끝까지 거부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를 ‘이광재 시스템’으로 부를 만큼 이 전 실장의 노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당사자인 이 전 실장은 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고 잠적한 상태다. 한 측근은 “우리와도 연락이 안 된다. 어딘가에서 특검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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