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우승으로 브라질은 통산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스웨덴월드컵은 축구천재 펠레가 17세 소년선수로 월드컵 무대에 데뷔한 대회이기도 하다. 에드손 아란데스 드 나시멘토란 긴 이름의 펠레는 경쾌한 드리블, 환상적인 패스, 절묘한 볼 컨트롤과 자로 잰 듯한 슈팅으로 스웨덴월드컵 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당시로는 혁명에 가까운 수비 4명, 미드필더 2명, 그리고 공격 4명을 내세운 4-2-4 전형은 상대팀들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가린샤, 디디, 바바, 펠레로 이어지는 4명의 공격수는 역대 최강이라고 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다. 브라질은 준결승전에서 펠레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프랑스를 5대 2로 제압하고 결승전에서 홈팀 스웨덴과 맞붙었다. 결과는 5대 2로 브라질의 승리. 펠레가 2골 바바가 2골, 자갈로가 1골을 터뜨렸다.
줄리메컵 영구히 보관 영광
브라질은 1958년 스웨덴월드컵과 62년 칠레월드컵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그래서 66년 영국월드컵부터는 과연 브라질과 이탈리아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우승을 차지해 줄리메컵을 영원히 보관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월드컵의 아버지 줄리메(프랑스)가 1회 우루과이월드컵을 앞두고 줄리메컵을 기증하면서 “어느 나라든지 먼저 세 차례 우승하는 나라가 이 컵을 가져가 영원히 보관했으면 좋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66년 영국월드컵은 브라질도 이탈리아도 아닌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의 힘 남미·유럽 균형도 깨
영원한 축구황제 펠레가 현역시절 골을 넣고 즐거워하는 모습.
그러나 이탈리아는 브라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브라질은 전반 18분 펠레가 선취골을 터뜨린 후 21분 게르손이 추가골을 넣었다. 이탈리아는 전반 37분 보닌세냐가 한 골을 만회한 데 그쳐 전반전은 2대 1로 브라질이 이탈리아보다 한 골 앞선 가운데 끝났다. 후반전에 접어들어 브라질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호시탐탐 이탈리아의 골문을 노리던 자일징요가 후반 26분 대세를 가르는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41분엔 알베르토가 쐐기골을 터뜨려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4대 1로 대파한다. 줄리메컵은 그렇게 브라질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되었다.
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다시 만난다. 당시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는 모두 월드컵 3회 우승의 타이 기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브라질로서는 70년 멕시코월드컵 결승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이탈리아를 잡고 ‘월드컵 최초의 네 차례 우승’이라는 신기원을 세워야 했다. 반면 이탈리아로서는 24년 전의 수모를 갚고 명실상부한 축구 최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공교롭게도 또 결승전에서 조우한 두 팀은 전·후반과 연장전 120분 동안의 혈전을 벌이지만 0대 0 무승부를 기록한다. 하지만 하늘은 브라질의 편이었다.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 최고의 공격수 로베르토 바조가 실축을 하는 바람에 브라질이 3대 2로 이긴 것이다. 브라질은 미국월드컵에서의 우승으로 월드컵 네 차례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다시 이탈리아와 독일을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100년 가까이 세계축구를 양분해오던 남미 최강 브라질과 유럽의 자존심 독일이 결승전에서 만났다. 이 결승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유럽과 남미 축구를 대표하는 독일과 브라질이 월드컵 무대, 그것도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맞부딪쳤다는 사실과 각각 8회씩 우승을 차지한 유럽·남미가 제3지역에서 진검승부를 벌인다는 점이었다. 또한 독일이 이기면 월드컵 통산 우승에서 독일과 브라질이 4대 4로 똑같아진다. 경기 결과는 브라질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호나우두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올리버 칸에게서 후반 22분과 34분에 잇따라 골을 빼앗아 브라질이 2대 0으로 완승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