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소액주주들이 2003년 11월28일 현대건설 주주총회에서 감자 조치가 잘못됐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건설 소액주주모임 7주 만에 진성회원 600여명 모여
강원모임에는 전체 주주 33만3834명 중 9.6% 가량이 가입했으며 회원들의 보유 주식은 약 91만주로 전체 주식수의 4.5%에 이른다. 대주주인 ‘법인’들을 제외하면 강원모임이 강원랜드에선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강원모임과 같은 ‘개미군단’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일까. 개미군단의 ‘서식 행태’를 따라가 보자.
△개미군단의 구성원은?=소액주주모임은 주식에 관심이 많고 같은 주식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다른 장소에선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다. 대학생에서부터 전업투자자 자영업자 샐러리맨 전문직 종사자 공무원 등 거의 모든 직종의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활약한다. 모임의 대표는 전업투자자나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현대건설소액주주모임(이하 현대모임) 대표 이정인씨(24)는 단국대 휴학생이다. 현대모임의 사무실이 그의 집. 현대건설 주식 4000주를 보유한 이씨는 2003년 10월8일 ‘다음 카페’에 소액주주모임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홈페이지를 개설한 뒤 ‘팍스넷’에 ‘현대모임을 만들었다’는 글을 띄웠는데 주주들의 반응은 상상을 넘어섰다. 불과 며칠 만에 수십명이 모여든 것.
11월28일 열린 현대건설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은 소액주주들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현대모임이 불과 7주 만에 진성회원 600여명을 자랑하며 운영위원회와 지방조직까지 갖춘 커뮤니티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힘을 키울 수 있었다”면서 “다음 주총에선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일부 이사에 대해 해임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모임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보통 회원들이 내는 성금을 통해 마련한다. 변호사 선임료를 제외하면 온라인 모임인 터라 크게 돈이 들어갈 곳은 없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각기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 품앗이를 하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 조인철씨(52)는 “소액주주모임에서 브레인 역할을 하며 소액주주들에게 주주의 권리 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면서 “전략·전술을 짜고 모임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모임에서 브레인 역할은 보통 조씨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맡는다. 이들은 법적인 조언을 해주거나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교육, 성명서, 항의서와 같은 공문을 작성하는 등의 일을 한다. 한 소액주주모임 대표는 “공무원 회원들이 회사에 대한 정부 자료를 통째로 빼온 적도 있다”면서 “정보 획득과 전략 수립 등 대부분의 일이 모임 내에서 해결될 정도로 구성원들 개개인의 전문성이 높다”고 자랑했다.
△개미군단의 서식지는?=인터넷이 없었더라면 개미군단은 조직될 수 없었다. 사이버 세상은 개미군단이 나고 자라는 보금자리다. 증권전문 사이트인 팍스넷과 38커뮤니케이션, 각 포털사이트의 금융정보 코너가 소액주주모임이 잉태되는 곳. 투자자들은 특정 종목에 대해 채팅 혹은 메신저로 토론하다 ‘이슈’가 발생하면 빠른 속도로 응집한다.
보통은 한 투자자가 인터넷 포털에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를 팍스넷 등에 공지하면 불과 한두 주 만에 1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한 소액주주모임이 꾸려진다. 물론 처음부터 막강한 위력을 가진 ‘운동집단’의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평소엔 정보를 교환하는 동호회 정도의 기능을 하다 주주들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사건이 터지면 비로소 응집력이 발휘되고 회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회원수가 늘면 조직은 온라인 중심에서 오프라인을 포함한 형태로 외연을 넓혀나간다.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될 즈음 지역별로 지부장 노릇을 하는 주주가 나타나는데 일부 소액주주모임은 해외에도 지부장을 두고 있다. 각 지부장들은 맡은 지역의 회원들을 관리하고 지역에서 온·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하면서 의견을 수렴, 서울에서 열리는 일종의 간부회의에 참석해 운동 방향을 정한다.
소액주주모임의 사무실은 대표, 즉 인터넷 커뮤니티를 최초로 제안한 이의 집이나 개인사무실에 자리잡는 게 일반적이다. 사무실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터라 사무실은 사실 의미가 없다. 전국의 소액주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MT나 오프라인 모임의 참석률은 그리 높지 않고 주총 당일 가장 많은 주주들이 모인다.
△개미군단은 언제 움직이나?=인터넷을 통한 소액주주 운동은 1999년 10월 대우사태 이후 만들어진 ‘개미주주’란 이름의 사이트가 그 효시다. 당시 대우전자 소액주주들은 모임 대표를 사외이사로 추천하고 주총 무효 판결을 받아내는 등 강한 응집력을 보였다. 보통 개미군단은 대우전자의 경우처럼 ‘이슈’가 터져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원랜드소액주주모임은 강원랜드가 코스닥에서 증권거래소로 옮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최근 들어선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개미군단이 조직돼 응집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영권이 안정되지 않은 기업에 대한 기업인수합병(M&A)을 노리는 기업 사냥꾼들이 소액주주들에게 구애활동을 벌이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태원 회장과 소버린이 벌이는 SK㈜ 지분전쟁에서 상한가를 치는 SK㈜소액주주모임이 바로 그런 경우다.
△개미군단의 목표는?=소액주주들은 그동안 ‘주총에서 시끄럽게 소란 피우는 존재’ 정도로 경영진에게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시에 ‘개미군단’이 가장 힘을 기울이는 건 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내는 것이다. 주주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대일로 각개약진에 나서기도 한다.
명목상 소액주주모임이 하는 주된 일은 회사경영 상태를 감시하고 일반 투자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감자나 회사의 부도 등 ‘유사시’를 제외하면 배당이나 증자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강원모임 대표 박종철씨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찾는다는 것은 기업과 주주가 공생관계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에 입각한 것”이라면서 “소액주주와 경영진은 기업을 잘되게 하겠다는 같은 목표를 갖고 한 배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입김이 세진 소액주주모임들은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등 기업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이 주총에서의 경영진 교체 요청. 기업경영이 투명한 기업은 소액주주들의 공격에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그들에게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모임의 입지는 더욱 넓어진다.
자리가 잡힌 소액주주모임은 배당 등 주주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대주주보다 소액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을 실시하는 회사가 느는 것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거세졌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주들은 소액주주모임 탓에 투자를 줄이고 배당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기업경영이 불투명할 때는 소액주주들의 주장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일부 코스닥 기업과 비상장 회사들에선 인터넷에 둥지를 튼 소액주주모임의 지분이 대주주의 그것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소액주주의 지분이 높아지면서 몇몇 중소기업들은 소액주주들에게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대원제약의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 운동에 나선 전업투자자 P씨 개인이 10%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했다”면서 “현재는 가끔 회사로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전부지만 다른 주주들과 힘을 보태면 투명 경영 등을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