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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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기세 등등 … 北 “어찌하오리까”

후세인 체포 이어 가다피도 무장해제 선언 … 다음 목표물 북한 움직임에 세계의 눈 쏠려

  • 워싱턴=이흥환/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3-12-31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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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 지도자 가다피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부시 독트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에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미국 안보의 위협이 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예방 차원에서 핵 사용을 포함한 공격을 가할 것(선제예방공격)이며, 대량살상무기를 생산·수출·중재·확산시키려는 어떠한 기도도 사전에 분쇄하겠다(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는 부시 독트린이 먹혀 들어간다는 것을 가다피의 선언이 다시 한번 입증해준 셈이다.

    사담 후세인 체포 소식으로 시작된 12월 셋째 주는 부시 독트린을 추진하는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에게 승리와 축제의 기간이었다. 사담 후세인 체포 소식에 이어 화요일(한국시간 2003년 12월16일)에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해오던 프랑스와 독일이 이라크 빚 탕감에 동의하면서 결국은 워싱턴 앞에 물렁해진 모습을 보였고, 이틀 후인 목요일(18일)에는 이란이 협박과 자기편인 유럽의 압력에 못 이겨 국제 핵 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금요일(19일), 리비아의 가다피가 무장해제를 선언한 것이다.

    美 강경파들 축제 분위기

    12월2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독트린,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행정부 안팎의 외교정책 강경파들은 리비아와 이란, 프랑스, 독일 등이 모두 유연해진 자세를 보이는 것은 모두 똑같은 이유, 즉 미국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라고 썼다. 이 기사는 또 “부시 독트린을 만든 사람들은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동맹국과 적국 모두를 떨게 만들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지적하면서, 행정부 자문 역할을 하며 보수강경 이념을 전파하는 매파의 대표주자 리처드 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보다 강력한 정책 추진이 과거 말없이 따라가기만 하던 경우보다 훨씬 더 적국의 협조를 잘 이끌어낸다는 것이 부시 독트린의 핵심이다. 사담 후세인 체포로 이제 주도권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변화다.”



    가다피의 항복 선언을 이끌어낸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이라크전이다. 부시 행정부가 가다피를 상대로 협상을 시작한 시점은 이라크전을 막 시작한 2003년 3월이다. 가을에는 리비아가 미국과 영국의 무기 전문가들에게 자신들의 무기고를 열어 보여주면서 수십곳을 샅샅이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가다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미 정보계는 가다피가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이 일에 개입해 성사시켰다고 했다. 워싱턴이 가다피와 직접 협상을 했다는 말이다.

    부시 독트린을 추진하는 매파들은 이라크, 이란, 리비아를 상대로 무력, 협박, 협상이라는 세 가지 다른 유형의 해결책을 선보였다. 이라크는 무력으로 정권을 교체시켰고, 이란은 유엔 제재라는 협박을 가해 국제사찰단의 핵 시설 사찰안에 서명하도록 만들었으며, 리비아는 협상으로 시작해 협상으로 끝을 맺었다.

    리비아는 1986년 1월부터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아온 나라고,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다. 미 기업들의 대(對)리비아 교역을 금지시키는 경제제재를 처음 시작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가다피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렀다. 로마와 비엔나 공항 습격을 주도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숨겨주었고, 미국인 2명을 죽인 베를린 디스코테크 폭발 사건에 리비아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럭커비의 팬암 103기 폭발사건으로 리비아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자리를 굳혔고, 북한·시리아 등과 함께 이른바 ‘불량국(rogue states)’으로 분류되었다.

    가다피는 무장해제를 선언함으로써 얻을 것이 많았다. 우선 산유국 리비아에 미 기업의 돈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미국의 투자가 절실했던 리비아다. 또 미국으로부터 자신의 체제도 보장받게 되었고, 아들에게 정권을 인계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 가다피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인 사이프 이슬람 가다피는 12월2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리비아와 미국)는 서로 믿을 수 있고, 우리의 모든 파일을 다 공개할 수 있다”면서 미국에 협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트리폴리의 대협상 안에 부자간 정권 승계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분류되어 이라크전 시작 전부터 미국의 ‘다음 목표물’로 지목된 북한은 가다피의 대미 12월 대협상으로 이래저래 더 주목받게 되었다. 6자회담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이라 그렇고, 대미 협상에서 반드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도 북한은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하와이 소재 싱크탱크인 퍼시픽 포럼의 랄프 코사는 “북한이 가장 염두에 두는 사항은 이라크다. 이라크를 보면서 핵 보유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리비아를 보면서 대안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리비아와 북한은 닮은 점이 많다. 두 나라 모두 항공기 폭발과 관련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들어갔고,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는 독재정권이다. 또 두 나라 모두 외부 투자에 목말라하며, 국제사회의 지원도 절실하다. 그러려면 내부 체제를 개방해야 하지만 선뜻 문을 열 수도 없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길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밖에 없으며, 워싱턴이 체제를 보장해주어야 협상하겠다는 김정일과 가다피의 생존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다자협상은 형식적?

    하지만 북한의 군사력은 리비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미 정보계는 이미 북한이 한두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판단한다. 리비아와 같은 수준의 협상이 북한에도 똑같이 적용될 리는 없다. 북한도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해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놓았다.

    핵 능력에서도 차이가 크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 요원들은 2003년 10월 리비아에서 2주 동안 무기고를 뒤진 후 12월 초 다시 리비아로 들어갔다. 무기용 우라늄 생산에 필요한 정교한 장비가 갖추어져 있었고 원심 분리기도 있다고 했다. 미 정보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앞선 리비아의 핵 능력에 놀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리비아의 핵 능력은 처음부터 한계가 뚜렷했다. 자국의 기술진이 북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능력도 훨씬 떨어지며 핵무기 추진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과 부품을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워싱턴은 북한을 다자협상의 틀로 상대하고 있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6자회담을 한 번 거치긴 했지만 워싱턴은 북한과 협상할 뜻이 없어 보인다. 북한도 협상안을 내놓고 있지만 번번이 워싱턴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런 점에서 6자회담은 워싱턴 입장에서 협상이라기보다 상대방 의사 타진의 수준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미국이 북한에 구체적인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불만이 많다.

    6자회담 중재 역할을 하는 중국은 워싱턴에 보다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북한과 마찰을 일으킬 만한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미국이 주도하는 PSI를 북한이 꽤 껄끄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북한이 미국의 대북 체제에 대한 보장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한미안보연례회의 참석차 서울에 왔을 때 “한국을 핵 우산 아래에 두고 보호한다는 미국의 군사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한국을 핵 우산으로 보호한다는 의미는 대북 핵 공격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미국은 전통적 외교 접근법인 6자회담이라는 다자협상의 틀과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 부시 독트린에 따른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이 어느 방안을 택할지는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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