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26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모교인 부산상업고등학교에서 열린 동창회 가족 한마음 체육대회에 참가해 선후배의 환영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이들 3인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신상우 동창회장(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이영로(53회), 최도술(54회), 정화삼씨(53회) 등 알려진 동창들의 활동 속에 이들은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문병욱 커넥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이들 가운데 일부 인사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K씨의 대선 행적에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그를 ‘노무현 캠프의 서정우’로 묘사하는 분위기다.
12월22일 한 언론은 “K씨가 지난 대선 전후 기업들로부터 수십억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노캠프에 전달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보도가 나간 후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보도대로라면 그는 영락없는 ‘노캠프의 서정우’였고, 대선자금 수사의 물줄기는 ‘차떼기’에서 ‘부상의 당선 축하금 모금 정국’으로 전환되기 때문. 대검측이 먼저 해명에 나섰다.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이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 사람 얘기가 많아 민정실 차원에서 확인했는데 내용이 없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K씨에 대한 관심과 의혹이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K씨가 대선 당시 국민은행에 근무하며 서울과 부산지역 인맥을 활용, 기업인 등과 접촉했다는 의혹을 풀지 않고 있다. “K씨가 노캠프의 서정우 역을 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나라당은 그를 ‘미다스의 손’으로 지목했다. 그는 과연 지난 대선 때 어떤 역할을 했을까.
K씨, 유세 때 동행하며 동창 지원 유도
이광재 전 대통령 국정상황실장(왼쪽)과 국민은행 사옥.
그는 2003년 초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시절 고문변호사로 노무현 선배를 만났다”고 말했다. K씨는 당시 노후보의 부산 유세 등에 동행하며 부상 동창들의 지원을 유도했다. 노후보의 부산 유세에 동창들을 불러모으거나 선거자금 문제 등을 측근들과 의논했다는 게 당시 노캠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동창회 인사들 가운데 웬만한 재력가치고 그의 전화를 한두 번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동창회측이 확인해준 ‘사실’이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
2002년 11월 문병욱 회장이 이광재 전 청와대 상황실장에게 돈을 건네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K씨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노후보도 함께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회장이 전달한 1억원의 최종 수령자는 노후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K씨는 몇 차례 전화 취재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에 따르면 K씨는 2002년 12월5일 노후보의 부산 유세에도 동행했다. 노후보와 문회장, 김성래 전 부회장, 이광재 전 실장 등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그는 오후 7시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신상우 동창회장과 만나 동창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문회장은 이날 신 동창회장에게 2000만원을 건넸다. 노후보와 같은 호텔에 투숙한 K씨는 다음날 아침 노후보와 30분, 이광재 전 실장과 30분 정도 미팅을 한 후 혼자 서울로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11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연무관에서 열린 민주평통자문위원과의 다과회에서 신상우 수석부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2003년 10월 재경 부산상고 정기이사회 모습.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왼쪽부터).
K씨의 이런 활동을 측면에서 지켜보거나 지원한 사람이 문회장이다. 문회장은 부상 57회 동기회 회장을 지냈다. 그때 동기였던 K씨와 가까워진 것으로 재경 부상 동창회 한 관계자는 기억한다. 한나라당은 썬앤문그룹이 농협으로부터 115억원대의 불법대출을 받은 것과 관련, “배후에 K씨가 있다”며 후견인론을 주장했다. 또 대규모 금융지원을 통해 여러 호텔을 인수한데 대해 “금융권 생리를 잘 아는 K씨가 금융지원을 받는 지름길로 문회장을 인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문회장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다.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당초 문회장이 노대통령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것은 이런 비즈니스 마인드에 투철했기 때문이라는 게 동창회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재경 부상 동창회 한 관계자는 “이 때문인지 노대통령측도 문회장에 대해 썩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 때도 노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던 2002년 7∼8월경에는 관망 내지 외면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막바지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런 그에게 정치적 마인드를 주입한 이가 K씨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미래의 비전에 대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정치적 ‘베팅술’을 가르쳐줬다는 것. 1998년 4월 문회장은 ‘㈜명수참물’을 설립, 위기에 빠진 노대통령의 생수사업 지원에 나섰다. 부상 한 동창 관계자의 설명이다.
“98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정권이 출범하면서 노대통령이 만년 야당 신세에서 탈피했다. 당시 노대통령은 국민회의 부총재로서 서울시장 선거 또는 종로 보궐선거 출마, 입각 등 세 가지 진로 가운데 하나는 확실한 상태였다.
부산상고 동창회 자숙 차원서 송년회 취소
노대통령의 ‘비전’을 보고 접근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문회장을 지켜본 한 인사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성래 전 부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를 보면 2003년 1월 초 노대통령의 명륜동 자택에서 노대통령 부부와 오찬을 함께한 문회장이 ‘K씨에게 호텔을 하나 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김 전 부회장과의 불화가 시작된 것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문회장은 그동안 김 전 부회장의 정계 인맥에 전적으로 의존했지만 K씨 등을 통해 스스로 정계 인맥을 구축했고 김 전 부회장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자 두 인사는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문회장이 만든 ㈜명수참물은 사실상 노대통령의 회사라고 할 수 있는 생수 제조회사 ‘㈜장수천’의 서울지역 판매회사였다. 노대통령의 생수 인맥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부상 출신 동창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장수천 대표이사를 지낸 홍경태씨가 주인공이다. 홍씨는 1999년 안희정씨가 설립한 또 다른 장수천 판매회사 ‘㈜오아시스 워터’의 이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홍씨의 ㈜장수천을 중심으로 안씨의 ㈜오아시스 워터와 문회장의 ㈜명수참물이 함께 연관되어 있었던 셈이다.
대선 당시 홍씨는 노무현후원회 사무국장으로 K씨와 손발을 맞추었다. 그는 1994년 자치경영연구원(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한 이후 10여년 동안 노대통령 주변에서 활동한 인물. 최도술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이 부산 동문 조직을 관리했다면 홍씨는 서울 동문 조직을 관리했다. 홍씨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뢰는 대단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2002년 5월 “선거 등으로 바빠 생수회사를 홍씨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때 노후보가 대의원들을 찾아 전국을 누빌 때 그 곁을 지킨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홍씨였다고 한다.
부상 총동창회와 재경 부상 동창회는 2003년 송년회를 모두 취소했다. 노대통령 측근 비리에 많은 동문들이 연루된 것을 자숙하는 의미에서다.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과 기쁨은 사라지고, 국민들의 눈총만 가득한 현실이 동문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재경 동창회 한 관계자는 “더 이상 부상 동문들의 비리문제가 터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갈 것 같다. 부상 동문들의 검은 커넥션은 당분간 언론과 여론의 도마를 피할 수 없는 신세다. 1월 출범하는 특검이 부상 동문들을 정면으로 겨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회장은 2003년 12월4일 “대통령 후배라는 자리가 이렇게 어려운 자리인 줄 몰랐다”라는 말을 남기고 구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