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이 올 때 오페라 보면 안 되냐”며 노무현 대통령의 오페라 관람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최낙정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장관이 9월29일 자신의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최장관 발언 파문에 대해 그를 아는 관료들 사이에선 “평소의 최장관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최장관은 관료 사이에서 대표적 ‘노무현맨’으로 통하고 노대통령도 그를 신뢰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9년 노대통령의 해수부 장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장관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이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장관 시절 경험을 담은 회고록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 최장관과의 인연을 비교적 자세히 적어놓았다.
노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 부산의 최대 현안은 원양어업 전진기지로 개발된 감천항 부두 준공검사였다.
하지만 복지회관 건립을 요청하는 원양어선원노동조합과 이를 거부하는 개발업자 간의 갈등으로 준공검사와 준공식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당시 노장관은 최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인 내가 직접 개입해 양쪽 당사자를 설득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최청장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그때까지 내가 해보고 안 되면 장관께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하더라는 것. 노대통령은 “아마 내 제안이 최청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다”고 회고했는데 실제 최청장은 일주일이라는 기한을 넘기기는 했지만 결국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했다.
이 사건 이후 그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뢰는 깊어졌고 최장관도 노대통령의 추종자가 됐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 덕에 최장관이 차관이던 시절 해수부 내에서는 “최차관이 장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 최장관은 차관회의를 사실상 주도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노대통령 개혁마인드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최장관은 공직자의 신분인데도 노대통령 팬클럽인 ‘노사모’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공·사석에서 최장관은 민주당 내 다른 후보들을 비난하면서 노대통령이 후보가 돼야 하는 당위성을 설파하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탓일까. ‘노무현의 개혁 전도사’ 최낙정 장관의 첫 행보는 일단 실수로 기록될 듯하다.
최장관은 관료 사이에서 대표적 ‘노무현맨’으로 통하고 노대통령도 그를 신뢰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9년 노대통령의 해수부 장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장관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이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장관 시절 경험을 담은 회고록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에 최장관과의 인연을 비교적 자세히 적어놓았다.
노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 부산의 최대 현안은 원양어업 전진기지로 개발된 감천항 부두 준공검사였다.
하지만 복지회관 건립을 요청하는 원양어선원노동조합과 이를 거부하는 개발업자 간의 갈등으로 준공검사와 준공식은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당시 노장관은 최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인 내가 직접 개입해 양쪽 당사자를 설득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최청장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그때까지 내가 해보고 안 되면 장관께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하더라는 것. 노대통령은 “아마 내 제안이 최청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다”고 회고했는데 실제 최청장은 일주일이라는 기한을 넘기기는 했지만 결국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했다.
이 사건 이후 그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뢰는 깊어졌고 최장관도 노대통령의 추종자가 됐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 덕에 최장관이 차관이던 시절 해수부 내에서는 “최차관이 장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노대통령 취임 이후 최장관은 차관회의를 사실상 주도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노대통령 개혁마인드의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최장관은 공직자의 신분인데도 노대통령 팬클럽인 ‘노사모’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공·사석에서 최장관은 민주당 내 다른 후보들을 비난하면서 노대통령이 후보가 돼야 하는 당위성을 설파하기도 했다는 것.
하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탓일까. ‘노무현의 개혁 전도사’ 최낙정 장관의 첫 행보는 일단 실수로 기록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