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1995. MAN & WOMAN, 1990. 거리의 결투, 2001(왼쪽부터)
돌이켜보자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80년대에는 민중미술이 부각됐고, 90년대에는 설치미술이 유행했다. 그리고 21세기 벽두에는 미디어 아트가 주목받았다. 그 와중에 회화라는 장르는 중견작가들 사이에서조차 한물 간 낡은 분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다들 ‘회화의 종말’과 ‘위기’를 거론하며 뭔가 ‘새로운 미술형식’이 기존 회화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한국 현대미술의 격변기에도 이동기는 네모난 캔버스 틀에 천을 씌워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가장 고전적인 회화방식을 고집해왔다. 물론 회화 작업을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동기의 작품을 주목할 필요는 없다. 단지 두텁지 못한 한국 현대회화의 층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회화적 형식실험이 여전히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동기의 회화작품은 언뜻 만화 캐릭터처럼 가벼운 2차원 평면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밝은 색채들이 곱게 칠해진다. 작품의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형식만으로도 이동기의 그림이 여느 회화작품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마치 하드 에이지나 팝아트 풍을 연상시키는 캔버스의 붓터치는 화가 개인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몰개성의 색면회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이런 특성들이 이동기의 회화작품에 대해 ‘한국적 팝아트’ 또는 ‘디지털 영상시대의 회화적 형식실험’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하는 것 같다.
디지털 시대의 회화적 형식 실험
꽃밭, 2002
그러나 ‘아토마우스’는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 와중에 ‘아토마우스’는 실재와 상상을 넘나드는 힘을 조금씩 길러왔다. 때로는 분신술을 익히고, 때로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학습을 하고, 때로는 사색에 빠지거나 산책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물론 성이 나서 박스 로봇과 한바탕 대결을 벌인 적도 있고, 한때는 막연한 돈과 달콤함을 좇기도 했다. 이제 성장한 ‘아토마우스’는 무턱대고 하늘을 나는 것보다 구체적인 현실생활에 좀더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아토마우스’로 대표되는 이동기의 회화가 15여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이라는 상상을 사소한 일상으로 위치시켜 일반 대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상상 또는 꿈의 중요함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기는 말한다. “미술이란 아주 더운 여름날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다. 맛을 보지 않으면 그냥 녹아 없어지고, 맛을 보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라고. (9월30일까지, 일민미술관 02-2020-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