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 신당추진모임 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원기 고문
3불 원칙 발표에 정치권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다수 정계 인사들은 “사실상 민주당 해체를 통한 신당 창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럴 거면 왜 지난 3개월 동안 이 짓(신당 창당 작업)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신주류 강경파의 반발도 이어졌다. 돌연한 3불 원칙 발표에 구주류 일각에서는 “뭔가 음모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의 목소리도 흘러 나오고 있다.
3불 원칙 공개를 전후해 신당 추진 인사들 사이에 일종의 무력감, 패배감 비슷한 정서가 퍼져가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 대목이다. 7월 초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탈당에 때맞춰 동반탈당을 결행하려 했던 한 의원의 측근은 “정말 실망스럽다.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아직 의원과 상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신주류 의원 개개인이 각개약진하는 식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주류 한편에서는 한때 신당파의 간판으로 거론됐던 김원기, 정동영 의원의 최근 행보와 관련, ‘불길한’ 소문도 나돌고 있다. 신당추진파 내에서 초강경파로 분류되던 정의원이 최근 ‘반성문’에 가까운 신당포기선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신주류 내부의 패배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 전북 출신인 두 의원의 경우 지역구 사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이러한 상황이 두 사람의 입장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로 민주당’ 정말 실망스럽다”
민주당 확대간부회의 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는 김고문(왼쪽)과 정대철 대표.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3불 원칙은 8월2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주류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신주류가 택한 전술의 일종이라는 해석이 그것. 민주당 해체가 신당 창당의 전제조건이 아님을 분명히 함으로써 ‘해체’라는 표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의원들의 여론을 신주류측으로 돌리려는 일종의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8월1일 신당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정동채 의원이 설명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회의 때 3불 원칙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전당대회 때 어떤 안건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일 것인지를 놓고 의견 개진이 있었을 뿐이다.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됐으며 침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3불 원칙이 전당대회를 위한 전술이 아니냐는 반응에 대해 이 의원은 “글쎄 신주류 핵심인사들은 그렇게 판단했을지 몰라도 회의에 참석했던 인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신당추진위원회의 3불 원칙 선언에도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은 동요하지 않고 있다.7월7일 탈당 기자회견을 하는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
바로 이 점을 의식한 듯 구주류의 박상천 최고위원은 “민주당을 해체하지 않을 거면 굳이 신당을 창당할 필요가 있느냐. 민주당 리모델링만으로 충분하다”며 역공을 가하고 나섰다.
전당대회 주도권을 둘러싼 상층부의 움직임과 별도로 물밑에서는 이상한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 L의원의 한 측근은 8월2일 신당추진모임의 결과가 발표된 직후 “뜻밖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주류 핵심의 움직임이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신당추진모임이 있던 1일까지도 의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소장파 신주류 의원들과 연락이 잦았고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의원들을 만나 뭔가 대책회의를 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표정이나 분위기로는 금방이라도 뭔가를 결행할 듯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L의원은 7월 초 탈당이 예상됐던 신주류 핵심의원이고 그와 회합한 인사들도 당시 동반 탈당이 거론됐던 의원들이다.
민주당 신주류의 한 의원은 이런 일부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신주류의 탈당설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신주류의 탈당설에 대해 들은 것만도 몇 차례 된다”고 귀띔했다.
한나라당 탈당파 덤덤한 반응
그는 “소문이 난무한다는 것은 실제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방증도 되지만, 반대로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증거도 될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 의원은 “8월24일 전당대회에서도 순조롭게 신당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당추진파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탈당을 통한 개혁신당 창당밖에 없다”며 “어쩔 수 없이 8월 안으로 신주류의 행보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만큼 탈당을 통한 신당 창당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주도적으로 탈당을 감행하지 않더라도 탈당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민주당 신주류와 조응해 신당 창당 작업중인 한나라당 탈당파 모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에게 민주당 신주류의 3불 원칙 선언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만약 신당 창당이 좌절될 경우 한나라당 탈당파는 자체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중소 정치세력으로 몰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하지만 3불 원칙에 대한 한나라당 탈당파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하다.
모임을 대표하는 이부영 의원은 8월4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내 신당 논란과 관련, “15일을 전후해 신당파 중 정말 이래선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결행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의원은 “전당대회 날짜가 잡혀도 의제가 합의 안 돼 어렵고, 불리한 쪽(구주류)에서 대회 자체가 성립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므로 이달 중순까지 논란이 계속되다 결국 파국을 맞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특히 “신주류 소장파 의원 10여명과 우리들은 신뢰를 가지고 대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의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20일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탈당파의 한 인사는 “우리의 공식 입장은 이부영 의원을 통해 밝히기로 내부 합의가 돼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와 민주당 신주류 소장파와는 상당한 신뢰를 바탕으로 논의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조만간 신주류 소장파가 몸을 움직여 신당 움직임을 재개할 것”이라며 “구체적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늦어도 다음주 말(8월16일)까지는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신당 추진 움직임을 사실상 철회하는 듯한 신당추진세력의 3불 원칙이 공개되는가 하면, 조만간 중대 결심을 하겠다는 소장파의 심상찮은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그 시한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의 대(對)국민 담화가 있을 8월15일을 그 시기로 보는 이도 있고, 한나라당 탈당파가 제안한 8월20일을 거사일로 보는 이도 있다. 또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릴 8월24일을 전후해 일이 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무튼 8월이 가기 전 민주당은 중대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