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달릴 때는 그 앞에서 사람이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램프를 흔들고 달리면서 차가 온다고 소리쳐 알려야 한다.” (19세기 말 영국의 ‘적기 조례법’)
“자동차는 확실히 호감 가는 것이지만 부유층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
“멀쩡한 말들이 저렇게 많은데 자동차가 팔리기나 하겠는가. 말처럼 쟁기질하지도 못하는데….”(포드차에 대한 투자 요청을 거절한 은행가들)
이렇게 말하던 이들이 100년 뒤의 세상에 와서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 행렬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0년 전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듯 자동차에 시원찮거나 말썽을 일으킬 물건 보듯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그처럼 찬밥 신세이던 자동차를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만든 인물이 헨리 포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포드자동차를 세운 게 바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는 포드차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개 회사의 창립 100주년 기념일일 뿐인데 언론이 이렇게 요란을 떠는 건 무엇 때문인가. 그건 포드차의 설립이 단순히 하나의 기업의 설립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현대의 풍경을 바꿔놓는 전기가 됐기 때문이다.
포드 자신이 “내가 현대를 발견했다”고 말했듯이, 포드차는 현대에 이르는 길을 닦았고, 스스로 그 길을 달렸다. 그 길을 따라 도시가 팽창하고 인간의 활동 반경이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포드의 호언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풍자적 미래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서기 대신 다른 연호를 사용하는데, 그 연호의 원년은 1908년, 즉 포드차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값싼 T자형 모델을 내놓기 시작한 해다.
자동차산업을 두고 ‘전후방 연쇄효과’가 큰 산업, 즉 다른 산업의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지 산업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가 몰고 온 총체적인 사회상과 문화의 변화를 감안할 때 그 의미는 훨씬 크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자동차 문명의 진화 과정을 담은 입체적 기록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급속히 대중화한 대공황기의 실존 갱단을 다룬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방 안의 침대에 누워 있는 주인공 보니를 깨운 것은 클라이드가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였다. 당시의 사회상을 묘사한 어느 책에서 작가는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는 아침에 사람들을 깨우는 새로운 알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는 문화적으로도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가령 이건 어떤가. 젊은이들에게는 점차 자동차를 갖는다는 것은 ‘성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과 그 또래의 10대들은 자동차를 매개로 기성세대에 반항하며 새로운 청춘문화를 표출했다. 대공황기를 사는 희망을 잃은 젊은이 보니와 클라이드에게도 자동차는 새로운 삶―비록 그것이 은행강도 행각이었을지라도―을 가능하게 할 수단이었다.
전셋집을 전전해도 차는 사야 하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자동차의 내부공간은 외부와 차단된 독립된 공간을 의미한다.
의혹과 조롱 어린 시선을 받는 초라한 신세에서 출발한 자동차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류의 내일을 그리고 있는 최근 영화들은 거의 어김없이 인류의 내일에 대한 상상력과 함께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분방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제5원소’의 택시나 ‘스타워즈 에피소드2’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자기부상 자동차, 최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매트릭스2’나 ‘터미네이터3’의 첨단 기능을 갖춘 자동차들의 모습은 100년 전 자동차를 ‘말보다 못한 기계’로 취급했던 이들에겐 참으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동차는 확실히 호감 가는 것이지만 부유층만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
“멀쩡한 말들이 저렇게 많은데 자동차가 팔리기나 하겠는가. 말처럼 쟁기질하지도 못하는데….”(포드차에 대한 투자 요청을 거절한 은행가들)
이렇게 말하던 이들이 100년 뒤의 세상에 와서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 행렬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0년 전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듯 자동차에 시원찮거나 말썽을 일으킬 물건 보듯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그처럼 찬밥 신세이던 자동차를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만든 인물이 헨리 포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포드자동차를 세운 게 바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는 포드차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일개 회사의 창립 100주년 기념일일 뿐인데 언론이 이렇게 요란을 떠는 건 무엇 때문인가. 그건 포드차의 설립이 단순히 하나의 기업의 설립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현대의 풍경을 바꿔놓는 전기가 됐기 때문이다.
포드 자신이 “내가 현대를 발견했다”고 말했듯이, 포드차는 현대에 이르는 길을 닦았고, 스스로 그 길을 달렸다. 그 길을 따라 도시가 팽창하고 인간의 활동 반경이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포드의 호언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풍자적 미래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서기 대신 다른 연호를 사용하는데, 그 연호의 원년은 1908년, 즉 포드차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값싼 T자형 모델을 내놓기 시작한 해다.
자동차산업을 두고 ‘전후방 연쇄효과’가 큰 산업, 즉 다른 산업의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지 산업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가 몰고 온 총체적인 사회상과 문화의 변화를 감안할 때 그 의미는 훨씬 크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자동차 문명의 진화 과정을 담은 입체적 기록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급속히 대중화한 대공황기의 실존 갱단을 다룬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방 안의 침대에 누워 있는 주인공 보니를 깨운 것은 클라이드가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였다. 당시의 사회상을 묘사한 어느 책에서 작가는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는 아침에 사람들을 깨우는 새로운 알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는 문화적으로도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가령 이건 어떤가. 젊은이들에게는 점차 자동차를 갖는다는 것은 ‘성인’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과 그 또래의 10대들은 자동차를 매개로 기성세대에 반항하며 새로운 청춘문화를 표출했다. 대공황기를 사는 희망을 잃은 젊은이 보니와 클라이드에게도 자동차는 새로운 삶―비록 그것이 은행강도 행각이었을지라도―을 가능하게 할 수단이었다.
전셋집을 전전해도 차는 사야 하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자동차의 내부공간은 외부와 차단된 독립된 공간을 의미한다.
의혹과 조롱 어린 시선을 받는 초라한 신세에서 출발한 자동차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류의 내일을 그리고 있는 최근 영화들은 거의 어김없이 인류의 내일에 대한 상상력과 함께 ‘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분방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제5원소’의 택시나 ‘스타워즈 에피소드2’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자기부상 자동차, 최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매트릭스2’나 ‘터미네이터3’의 첨단 기능을 갖춘 자동차들의 모습은 100년 전 자동차를 ‘말보다 못한 기계’로 취급했던 이들에겐 참으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