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전교조’를 내걸고 보수적 학부모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왼쪽)과 최근 지역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으로 다시 태어난‘서초·강남 교육시민모임’.
“교육부는 이번 위원회 구성에서 새로운 인사의 영입, 직업·성별 안배를 원칙으로 했다고 해명하지만 오랫동안 자생적으로 교육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을 배제하고 급조된 신생 단체 사람을 끼워넣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김모씨)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이하 참교육학부모회) 역시 3기 정책자문위원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참교육학부모회의 윤지희 정책위원장은 “우리에게 자리를 달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교육부 관료들이 보수적인 학부모단체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키워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 과잉 vs 개혁 과소 ‘갈등 표면화’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교육시민운동이 보-혁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 교육부를 중심으로 전교조와 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팽팽한 노선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들을 둘러싼 교육시민운동단체들의 대립과 갈등 양상도 이에 못지않다. 이 틈을 이용해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특정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 자살사건과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둘러싼 교육계의 갈등은 보수적인 교육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결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2002년 4월 발족한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의 모임(상임대표 고진광·이하 학사모)는 참여정부 들어 빠르게 몸집을 불려나가며 교육부 산하 각종 위원회와 공청회, 토론회의 단골 초청자로 자리잡았다. 학사모는 지난 10월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노조 간의 단체협약 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서교장 자살사건 진상위원회를 만들어 전교조 퇴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3월26일에는 학사모를 이끌던 김용길 목사가 학사모에서 갈라져 나와 ‘학교사랑학부모연합회’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김목사는 “학부모는 교육전문가가 아니다. 교육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학부모는 학교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며 학사모의 활동방식에 이견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김목사가 단체협약 무효확인 소송을 낸 장본인인 만큼 ‘안티 전교조’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6월14일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가 이끄는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이하 교육공동체)이 출범하면서 교육계의 보수진영이 총결집하는 양상이 됐다. 교육공동체 출범식에는 현승종 전 국무총리, 윤형섭·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박홍 전 서강대 총장, 이군현 한국교총 회장 등 교육계 명망가들이 대거 참가해 세를 과시했다. 교육공동체는 창립선언문에서 “교육체제 구성원간 반목과 갈등으로 한국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조화로운 교육공동체를 이룩하자”고 했으나 사실상 이 단체가 표방한 것은 ‘안티 전교조’. 평소 이 전 부총리는 전교조를 ‘하이에나 떼’ ‘사라져야 할 집단’이라며 맹공을 퍼부어왔다.
6월14일 열린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의 창립대회. 이 단체는 ‘조화로운 교육공동체를 이룩하자’고 주장하며 ‘반전교조’ 세력을 결집했다.
교육계 보수세력이 ‘반(反)전교조’를 앞세워 세를 결집하는 데 반해 교육민주화와 교육의 공공성 구현을 위해 ‘교육연대’로 모여들었던 진보적 교육시민단체들은 정책노선에 따라 오히려 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참교육학부모회(회장 박경양)와 함께 90년대 학부모운동의 양대 축이었던 인간교육실천학부모연대(회장 강소연·이하 학부모연대)가 교육연대를 탈퇴했다. 학부모연대는 보다 쉽고 다양한 교육을 위해 자립형 사립학교 설립과 기여입학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NEIS체제를 옹호하는 등 교육연대의 기본노선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육연대에서 전교조와 호흡을 맞춰오던 참교육학부모회도 2002년 전교조 주도로 결성된 ‘교육의 공공성 쟁취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철폐를 위한 교육행동연대’에 불참하면서 노선의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2000년 학벌 타파를 외치며 탄생한 ‘학벌 없는 사회’(대표 홍훈, 교육연대 소속)는 내부 노선 차이로 인해 ‘학벌 없는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 만들기’(대표 정영섭)로 갈라섰다. 학벌 없는 사회는 유럽식 공교육체제를 대학개혁의 모델로 삼았고, ‘학벌 없는 사회 만들기’는 국·공립대에 대한 각종 혜택의 폐지를 주장하며 미국식 모델을 채택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비판 시각 많아
민주노총은 기존 학부모운동이 지나치게 중산층 지향적이라고 판단하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새로운 학부모 모임을 꾸리고 있다. 현재 가칭 ‘공교육과 학생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노동자 학부모들의 모임’이 7월 창립대회를 준비중이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은 소위 8학군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역운동을 목표로 출범했으나 최근 ‘함께하는 교육시민 모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밖에 전교조, 문화연대, 교수노조가 중심이 되어 ‘범국민교육연대’를 결성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어 진보적 색채를 띤 교육시민단체들 사이에 본격적인 담론투쟁과 정책대결이 예상된다.
이처럼 신생 교육시민단체들이 생겨나고 ‘개혁 과잉’을 주장하는 보수세력과 ‘개혁 과소’를 주장하는 진보세력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교육운동의 방향에 혼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7월8일 교육연대, 삶과 교육을 위한 대화와 실천, 함께하는 교육시민 모임이 공동주최한 ‘새로운 교육운동단체의 등장과 올바른 교육운동의 방향’ 토론회에서 한국 교육시민운동의 현실적 고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산교대 심성보 교수는 “최근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시민단체가 ‘다원주의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절충하는 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진보세력을 겨냥해 “교육시민단체 내에는 진보적 입장과 자유주의적 입장이 매우 어렵게 연대되어 있어 노선의 차이와 갈등을 조절하지 못하면 정부의 특정 정책에 따라 교육시민단체의 연대는 쉽게 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민우회 초기부터 교육시민운동을 이끌었던 엄기형 박사(교육학)는 “교육 부문 시민사회는 다른 부문에 비해 성장이 느리고 불안정하며, 특히 시민사회와 이익집단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 문제”라며 “시민사회의 외피를 쓴, 특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이익집단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일부 교육시민단체들이 ‘민간단체지원법’을 근거로 기업체로부터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협찬을 받아 호화판 행사를 치르면서 정작 정책 제안은 뒷전이고, 대표라는 이들이 교육위원이나 교육감 자리를 노리고 얼굴 내밀기에 바쁜 경우가 많아 교육시민운동의 순수성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윤지희 정책위원장은 “교육현장에 뿌리를 두고 현장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질적 활동에 근거하지 않으면 학부모운동이든 교육운동이든 생명력을 상실한다”면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 혹은 학부모라는 들러리가 필요해 단체를 급조하는 일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시민운동이 관변화하거나 또 하나의 권력이 되는 일을 막는 것도 결국 시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