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색, 황금색, 오렌지색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임금펭귄의 모습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다.
스스로 감탄할 정도로 펭귄들은 내 손에 있는 물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한 걸음 떨어져 내 쪽을 지켜보고 있는 정태영 사육사의 표정에도 만족스러움이 비치는 듯했다. 오늘 나의 체험 목표는 수족관에서 일하는 사육사 ‘아쿠아리스트’다.
TV 화면 속에서 아쿠아리스트들은 언제나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고, 희귀한 해양생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더없이 낭만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더구나 찌는 듯한 한여름, 서늘하고 물 많은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지 않은가. 63수족관 아쿠아리스트들의 하루를 체험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펭귄과 수달, 형형색색 열대어 속에서 인어공주처럼 유영할 내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오동통한 임금펭귄 한 마리가 3000만원?
경력 11년차인 63수족관의 베테랑 사육사 정태영 대리의 하루는 오전 8시 출근해 수조를 돌아보며 ‘아이들’의 안부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된다. 밤 사이 별일은 없었는지 펭귄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배설물을 점검한 후에는 양미리와 이면수를 아침으로 챙겨준다.
6월26일 아침 수족관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내게 맡겨진 일은 63수족관의 명물 펭귄들의 아침을 챙겨주는 것이었다. 어른 팔뚝만한 이면수가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 정대리의 뒤를 따라 수조 안에 들어서자 임금펭귄들이 뒤뚱거리며 반갑게 달려들었다. 임금펭귄의 어깨와 목덜미는 은회색, 가슴과 귀 주위는 노란빛이고, 뾰족한 부리는 밝은 오렌지색이다. 이 다양하고 환한 빛깔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모습은 통통한 가슴, 매끄러운 가죽과 더불어 한번 꼭 끌어안아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놈들의 성격은 이 ‘품위 있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먹성 좋고 조금은 과격하다. 먹이를 달라고 달려드는 펭귄들의 부리에 쪼여 온통 흉터투성이인 정대리의 팔뚝이 그 증거다.
파충류관에서 뱀들에게 먹이를 주다 길이가 5m에 이르는 백사 미얀마왕뱀을 목에 감아본 기자의 모습.
정대리는 조심한다는 조건을 달아 내가 직접 펭귄에게 먹이 주는 것을 허락했다.
날지는 못하지만, 사실 펭귄은 새다. 긴 부리가 있는 대신 이가 없기 때문에 음식을 씹지 못하고 뱀처럼 한입에 삼킨다. 이면수를 목 안에 넣어주면 부리 아래편 노란 가슴털이 불끈 솟을 정도로 한 번에 넘긴 후 다시 다가와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너무 귀여워요. 키우는 방법만 알면 이놈들을 집에서 애완동물로 키워도 좋을 텐데….”
이면수통 주위로 몰려드는 임금펭귄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정대리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어이없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얘네들은 부르는 게 값이에요. 한 마리가 적어도 3000만원은 넘을걸요.”
예쁘고 사랑스러운 만큼 예민하고 섬세해 번식이 어려운 임금펭귄의 수는 세계적으로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수족관에서도 여러 차례 교미시킨 후 출산을 기다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말이 통하지 않는 생물들을 보살피면서 자연상태에서와 같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아쿠아리스트들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서늘하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남극 신사’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공격하는 부리들을 피해 조심스레 녀석을 쓰다듬어주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파충류에게 밥을 줄 시간이다. 63 수족관에는 해양생물들뿐 아니라 파충류, 구관조 등 신기한 동물들을 전시하는 부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 살아 있는 곤충을 좋아하는 이들의 먹이는 귀뚜라미. 핀셋으로 한 마리씩 집어 그린아나콘다와 줄무늬개고도마뱀 등의 혀 가까이에 놓아주자 이들은 붉은 혓바닥을 내밀어 단숨에 집어삼켰다.
펭귄과 파충류관의 식사시간이 끝나니 이제는 어류 밥 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63수족관에는 400여종, 2만여 마리의 해양생물이 산다. 이 긴 수조를 빙 돌며 각자 다른 먹이를 챙겨주는 일은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손가락 한번 넣어보실래요?” 한 수조 앞에 도착했을 때 이대한 사육사가 불쑥 말을 꺼냈다. “왜요?” 특별히 물이 따뜻한 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수조에 손을 넣으려다 이사육사를 쳐다보니 그는 아직 먹이를 넣지 않은 채로 나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알고 보니 그 수조 안에서 유유히 수영하고 있던 물고기 다섯 마리의 이름은 바로 ‘피라니아’였다. 코끼리처럼 큰 동물도 걸리기만 하면 집단으로 공격해 순식간에 뼈만 남겨놓는다는 아마존강의 식인 물고기. 방어처럼 둥글넓적한 모양과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곱게 반짝이는 비늘은 아름다웠지만 까만 눈동자 주위가 마치 피가 비치듯 붉게 물들어 있어 그놈의 악명을 실감케 했다. 이사육사는 꼭 사람 손가락만한 크기로 잘라놓은 정갱이를 던져 넣으며 눈을 흘기는 기자에게 ‘진짜로 손가락 넣으면 제가 바로 빼주려고 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피라니아들은 정갱이 덩어리가 물 위에 떨어지자마자 게 눈 감추듯 씹어 삼켰다.
스트레스 잘 받는 물고기 “난 예민한 체질”
63수족관에는 피라니아 외에도 자연상태에서는 최고 7m까지 자라는 피라루크, 산란 후 수놈이 입 속에 알을 넣어 부화시키는 은아로아나 등 아마존강의 담수어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이들이 고향에서와 같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수족관에는 아마존의 스콜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특수장치가 마련돼 있다. 평소에는 무덥고 쨍쨍한 환경을 유지하다 하루에 몇 차례 갑자기 수조 위로 먹구름이 끼면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도록 만든 것.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수족관에 들어와 사는 물고기의 수명은 자연상태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
“물고기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해요. 수질이 조금만 바뀌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색이 변하고, 금방 죽어버리거든요.”
이사육사는 물고기들이 자연상태에서와 똑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주 두세 번씩 서해 바닷물을 길어와 수조의 물을 갈아준다고 했다. 이렇게 들여오는 물의 양이 한 번에 11t을 넘는다.
63수족관의 최고 인기 동물 중 하나인 수달도 예민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게 최적 환경을 유지해주는 일이 보통 어렵지 않은 동물이다. 2000년부터 수달을 키워온 노총각 남정훈 사육사가 매일매일 수달의 성장과 특이점을 기록하는 육아일기를 쓴다.
그는 전시관에 공개돼 관람객들에게 시달리다 지금은 잠시 뒤쪽 독방에서 따로 지내고 있는 일곱 살 난 암수달 ‘달이’의 식사시간에 기자를 데려가 주었다. 작은 철문을 열자 돌 모형과 물로 채워진 달이만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둥근 꼬리와 짧은 귀, 촉촉한 암갈색 털의 달이가 까만 눈을 들어 기자를 맞았다. 수달은 조심성이 매우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달이는 조심성만큼이나 호기심도 많은 듯했다. 녀석은 내 주위를 맴돌다 내가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을라치면 재빨리 몸을 돌려 시멘트 구조물 뒤로 숨어들었다. .
기자는 ‘인어공주 쇼’를 하다가 105살 된 거북이 ‘네로’를 만났다(위). 인어공주 쇼는 63수족관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이벤트 중 하나다.
‘수달 아빠’ 남씨의 분석은 과연 정확했다. 짐짓 달이에게 무관심한 듯 시선을 돌린 채 녀석의 먹이인 정어리가 담긴 통을 헤집고 있자 달이의 단단하고 촉촉한 발이 내 손등에 살짝 닿은 것이다. 곁눈으로 살피니 녀석이 뒷발을 되도록 멀리 둔 채 앞발로 내 손등을 건드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 반응이 없자 안심한 듯 이번엔 좀더 다가온다. 허벅지에 녀석의 보드라운 등이 닿았다. 아까부터 만져보고 싶었던 그 등을 살짝 쓰다듬었지만 이번에는 급히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녀석과 나는 살짝살짝 서로를 어루만졌다
한때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있던 수달이 천연기념물이 될 만큼 거의 멸종한 이유는 바로 이 고운 털 때문이다. 사람에 의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수달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 작은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안타깝기까지 한 일이다.
달이와 만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써버린 후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인어공주 쇼’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아쿠아리움으로 인기를 끌었던 63수족관은 최근 첨단 수족관들이 속속 문을 열면서 과거의 독보적 지위를 잃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펭귄, 수달 등 ‘신기한 동물’과 다양한 쇼 이벤트로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 ‘인어공주 쇼’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템이다.
스쿠버 장비를 갖춘 여성 다이버가 둘레 42m가 넘는 대형 유수조에 들어가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며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이 쇼는, ‘인어공주’의 손에 들린 먹이를 따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 인어공주 쇼는 사실 아쿠아리스트 체험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쇼를 준비하는 사육사들과 함께 잠수복을 입고 6kg이 나가는 납 벨트를 허리에 찼다. 물 안에서 호흡을 도와줄 20kg짜리 공기통을 메고 오리발까지 신고 보니 제법 ‘스쿠버다이버’의 외양이 나오는 듯했다. 스쿠버다이버 경력 8년의 ‘인어아가씨’ 박선숙씨는 숨만 쉴 줄 알면 물에 들어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숨쉬기 연습을 시켰다.
“자, 코를 막고 호흡기만을 이용해 숨을 쉬어보세요. 코로는 절대 숨쉬면 안 돼요.”
하지만 머리를 물 속에 넣은 채 숨을 들이마시자 동시에 물안경 안에까지 물이 가득 들어찼다. 생각과 달리 코로도 동시에 숨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시작하기 전에 호흡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할수록 물은 더 많이 들어온다. 다시 또, 다시 또. 결국 다섯 번쯤 ‘입으로 숨쉬기’를 연습하는데 쇼 시간이 닥치고 말았다. 박선숙씨는 “코로 물이 들어오거든 엄지손가락을 들어요. 내가 도와줄게요”라며 기자를 물 속에 들여보내 주었다.
귀뚜라미를 즐겨 먹는 도마뱀은 굉장히 얌전해 기자가 쓰다듬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바다 속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터치풀 수조. 인어공주 쇼가 펼쳐지는 저수 용량 200t 규모의 대형 유수조에서 각종 물고기와 거북이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왼쪽부터).
참 신기한 건 이 순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습 때까지 코로 물이 들어왔고, 수영은 겨우 물에 빠지지 않을 정도밖에 못하는데도 빨리 물 속에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끝부터 머리까지 완전히 물 속에 잠기자 서늘한 물살에 감싸인 몸의 감각이 하나씩 깨어나면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느껴진 건 부드러운 바닷물의 촉감. 조금 지나자 날 스치며 서서히 유영하는 노란 별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뽀로롱 뽀로롱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는 내 숨소리가 들린 건 그 다음이다. 어느새 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물고기 떼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를 감싼 건 오직 200t의 바닷물과 수백 마리 붉바리, 줄정갱이, 별돔들뿐, 이 ‘작은 대양’은 폐로 숨쉬는 세상과 격리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문득 숨이 멎은 건 날 향해 똑바로 헤엄쳐 오고 있는 거대한 황금거북과 마주친 순간이다. 1m는 족히 될 것 같은 몸길이와 단단한 등갑, 그리고 주먹만한 까만 눈동자. 녀석과 시선이 부딪치자 갑자기 숨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숨쉴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기 때문인 것 같다. 10초도 채 되지 않았을 찰나의 환상이었지만, 그 순간 난 녀석의 등에 타고 용궁에 갈 수는 없을까를 생각했다.
낯선 내게 눈을 맞춘 채 조용히 제 갈 길로 흘러가버린 거북이의 뒤를 시선으로 쫓다 난 갑자기 들이마신 숨으로 바닷물이 코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평화로움은 마법처럼 끝이 났다. 박선숙씨에게 급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곧바로 몸은 물 위로 떠올랐고 나는 어느새 공기 속에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거북이는 ‘네로’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가 105살쯤 된 푸른바다거북이었다. 네로와 눈이 마주쳤을 때 소원을 빌면 뭐든지 이루어진다는 말이 수족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을 만큼 영물이라고 했다. 짧은 순간 내가 느꼈던 ‘신비로움’이 혼자만의 감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과연 그 눈동자를 보고 누가 세속적인 소망을 빌 수 있을까. 그냥 자기도 모르는 새 투명하게 맑아져버리지 않을까. 숨이 멈춰버렸던 그 순간의 나처럼.
짧은 ‘바다’ 속 체험을 마지막으로 수족관에서의 하루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물갈퀴’를 벗고, 다시 운동화를 신은 채 땅을 딛고 걸었다. 현실 속에서 나는 언젠가 한 번쯤은 인도에 가보고 싶다고 꿈꿀지언정 용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바다거북과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자연스레 내게 떠올랐던 용궁의 풍경만큼은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