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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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펴서 먹이 덮칠 듯 ‘흉한 기운’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입력2003-07-02 18: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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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펴서 먹이 덮칠 듯  ‘흉한 기운’

    제주 박쥐산.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인 산방산 앞의 박쥐산. 박쥐산 앞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박쥐산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세운 방사탑(왼쪽부터).

    ‘땅과 인간이 서로 닮아간다’는 지인상관론(地人相關論)은 풍수가 전제로 하는 명제다. 단순히 서로 닮아가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생기는 여러 갈등을 두고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제주도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산방산(山房山) 앞에 기괴한 산이 하나 있다.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인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단산(簞山)’ ‘박쥐오름’ ‘바금쥐오름’ ‘파군산’ 등으로 불린다. 제주도 특유의 기생 화산인 ‘오름’은 제주도에서는 산으로 통하기 때문에 박쥐오름이나 바금쥐오름은 박쥐와 닮은 형상의 산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곳에 처음 와보는 사람도 이 산을 보면 자연스럽게 박쥐를 연상한다.

    그런데 이 박쥐 모양의 산과 이 산 주변에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산은 박쥐가 날개를 활짝 펴서 먹이를 덮치고 있는 형세로 마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날 수 없다고 믿었다.

    민간에서만 이 산을 흉산(凶山)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300년 전인 1702년(숙종 28년) 당시 제주 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제작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는 이 산 이름을 ‘파군산악(破軍山岳)’으로 표기하고 있다.

    ‘파군’이란 이름이 붙은 데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옛날 이곳에서 적군을 패퇴해 ‘파군(破軍)’이라고 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풍수에서 산의 형상을 아홉 가지(‘九星’이라 한다)로 나누는데 이 산의 모양이 그 가운데 ‘파군(破軍)’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실제로 풍수에서는 이와 같은 모양의 산을 ‘파군’이라 부르며 아주 흉한 산으로 본다. ‘파군의 산이 있으면 형벌과 겁탈, 나쁜 질병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당시 제주 목사가 이 박쥐오름을 ‘파군’으로 표기한 것이 흥미롭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1900년(광무 4년) 이문사(李文仕)라는 사람이 “풍수적으로 마을 남쪽(박쥐오름 쪽)이 허하여 마을에 액운이 있으니, 탑을 쌓아서 액을 막으라”고 해 마을 사람들은 산과 마을 중간에 4개의 ‘거욱대’를 설치하였다. ‘거욱대’란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것으로 ‘방사탑(防邪塔)’이라고도 하는데, 둥근 돌탑을 쌓은 뒤 그 위에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석상을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1951년 이곳에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서면서 ‘거욱대’ 3기를 헐어 막사 신축용 자재로 써버렸다. 그 후 이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발생하는 등 불행이 잇따르자 1961년 거욱대를 원상복구하면서 인성리 마을뿐만 아니라 그 반대쪽에 있는 사계리에도 방사탑을 쌓아 이 산의 흉한 기운을 막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김정희의 추사체와 이 박쥐산의 관련설이다. 추사 김정희가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대정읍 안성리 적거(謫居)지 마당에서는 이 박쥐오름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는 단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험악하고 괴이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이곳 사람들은 “추사의 기괴한 글씨체가 바로 이 박쥐오름의 모양새를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추사의 글씨체와 이 박쥐오름(파군산)을 비교해보면 ‘땅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전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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