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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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 지성 76인 탐험기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7-03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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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최고 지성 76인 탐험기
    56명의 필자가 자동차 디자인에서 첨단 뇌과학까지 33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76명의 활력 넘치는 인물을 소개한 책. 888쪽이라는 분량에 기죽지 말자. ‘월경(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지성의 탐험기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지식의 최전선’(한길사 펴냄)이 대전환 시대에 지식과 학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면,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제목 그대로 지식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인물들에 초점을 맞췄다. 참고로 2002년 2월에 출간된 ‘지식의 최전선’은 두껍고 어렵고 부담스러운 내용의 책이지만 2만부 가까이 팔렸다. 21세기 지식의 나무가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지식의 최전선’과 짝을 이뤄 힘차게 ‘잡종의 시대’를 헤쳐나간다.

    책은 76명을 4개의 범주로 묶어 배치했다. 첫번째 ‘나는 욕망한다, 고로 창조한다’에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에 놓고 자신의 지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백남준, 하모니 코린, 데이비드 핀처, 스와 노부히로, 마샤 헌던, 주디스 윌리엄슨,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야스마사 모리무라, 신디 셔먼, 존 마에다, 조르제토 쥬지아로 등 17명의 예술가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도발’이다.

    예를 들어 일본 작가 야스마사 모리무라(52)는 자신이 직접 할리우드 여배우로 분장하여 사진의 피사체가 되거나 서양의 유명한 그림 속에 자신의 이미지를 끼워넣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마네의 유명한 그림 ‘올랭피아’에서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이 어느새 모리무라로 바뀌어 있거나, 모리무라 자신이 마릴린 먼로로 분해 사진 속 주인공이 되는 식이다. 모리무라가 스스로 싸구려 배우가 되기로 한 이유를 “미술관은 미술품의 무덤”이라는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범주의 등장인물은 인문학 분야의 모험가들이다. ‘인문학은 여전히 변혁의 원천’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문학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한탄 속에서도 그 미래는 밝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승자인 악셀 호네트, 아날 학파의 선두주자인 로제 샤르티에, 중국 전통미학을 재발견한 리쩌허우, 프랑스 철학의 부활을 가져온 알랭 바디우,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등이 이 장에 등장한다. 또 이 장에서의 “영어는 기쿠유어로 씌어진 작품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을 때 기능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다”라며 언어적 식민성을 극복하는 데 앞장선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씨옹오와의 만남도 소중하다.



    세 번째 범주 ‘사회 공동체, 열린 세계를 향하여’에는 NGO(비정부기구), 법학, 정치학, 경제학, 국제관계학, 스포츠학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골고루 선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체계이론의 완성자 니콜라스 루만, 앰네스티 역사상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최초의 아시아인 사무총장이자 최초의 무슬림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아이린 칸, 현실주의 정치 이론가 존 던·로널드 드워킨·조지프 나이, 자연과학의 카오스현상을 경제학에 접목한 윌리엄 브락 등이 이 장의 주인공이다.

    네 번째 범주에 소개된 ‘경계를 뛰어넘는 모험자들’은 우리를 과학의 세계로 이끈다. 물리학, 화학, 뇌과학, 생물학, 생태환경학, 천문학, 수학은 전문가의 영역이기 전에 현대인의 교양이다. 이 장에서는 새로운 발견 그 자체보다 과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적인 담론들에 치중했다. “나는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한다”(미셸 칼롱), “과학은 판도라의 희망인가”(브뤼노 라투르), “나는 사이보그에서 인류의 희망을 본다”(도나 해러웨이) 등 그들의 발언 자체가 지식의 나무를 뿌리째 뒤흔드는 도전이다.

    눈높이가 다른 56명의 필자가 참여했지만 텍스트는 기대 이상의 균질감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이 선정한 지식의 모험자들이 각 분야에서 창조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76명의 인물에 대해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답지를 향해 움직이는 열정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그들의 삶과 활동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극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강봉균, 박여성, 이진우 외 53명 지음/ 한길사 펴냄/ 888쪽/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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