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나라당 개혁을 주장한 ‘국민 속으로’ 발기인 가운데 일부 의원이 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꼬마민주당이란 1995년 김대중씨(DJ)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민주당에 속했던 친(親)DJ 성향의 의원들이 대거 탈당한 뒤 남은 세력 중심의 민주당을 가리킨다. 이들은 9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 확장에 나서는 한편, 장을병 홍성우씨 등이 주축이 된 개혁신당과 통합해 ‘개혁민주당’을 창당한다. 하지만 15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만다.
총선 패배 뒤 이들 통추 세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정치적 활로를 찾았다.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이미경씨 등은 국민회의로, 김원웅 김홍신 김부겸 의원과 고인이 된 제정구 전 의원 등은 한나라당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이부영 의원과 박계동 전 의원 등도 한나라당으로 옮겨 정치적 활로를 모색했다.
3김 권력의 극성기, ‘반(反)3김’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싸웠던 정치세력인 꼬마민주당 혹은 통추로 불리는 이들은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노대통령의 측근인 김원기 의원과 유인태 정무수석, 그리고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개혁국민정당(이하 개혁정당)의 대표를 맡아 노대통령을 지원했던 김원웅 의원 등이 대표적 인사들이다.
“수덕사 모임 시발로 창당 시간표 마련됐다”
하지만 절반의 꼬마민주당(통추 세력)을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부영 안영근 김부겸 의원과 이철 장기욱 박계동 전 의원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옮긴 뒤 줄곧 이회창 전 총재의 개혁이미지를 뒷받침하는 세력으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거듭된 대선 패배는 개혁파에게도 큰 재앙이었다. 한나라당 꼬마민주당 세력은 끝내 당내 소수파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 정권의 등장을 먼발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런 그들이 독자적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월16일, 충남 서천초등학교 강당에서 나소열 서천군수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군수는 민주당 당료를 지낸 인물로 여러 차례 선거에 도전한 끝에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에 당선된 4전5기의 주인공이다. 그의 늦은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꼬마민주당 출신들이 서천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바로 이날 모인 꼬마민주당 출신이 대략 20여명, 이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우의를 돈독히 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4월 서천군 축제기간에 즈음해 서천에서 다시 모임을 갖기로 했다. 4월10~11일 1박2일로 두 번째 통추(꼬마민주당) 모임을 가졌다. 두 번째 행사에는 참석자가 늘어 40여명에 달했다.
세 번째 모임은 5월 초 부산 송정 임해수련원에서 있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참석한 것도 이 무렵. 이부영 김홍신 안영근 서상섭 김부겸 의원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5월 말에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기념관에서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임을 가졌다. 이 무렵부터 모임은 급속히 정치성을 띠기 시작했다. 때마침 민주당에서 신당 논의가 시작됐고 참석자들의 관심은 온통 민주당 신당파의 움직임에 쏠려 있었다. 정계개편 조짐이 나타난 이상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수덕사 모임에 참석한 이우재, 안영근, 김영춘 의원과 이철, 장기욱 전 의원, 이부영 위원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같은 시기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탈당과 신당 창당이 모임의 구체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가능성을 타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전 탈당을 감행하기에는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울러 개별 탈당보다 신당의 밑그림을 그린 뒤 함께 움직여야 정치적 파급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던 지난 6월21일, 1박2일 일정으로 통추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예산의 수덕사로 모여들었다. 참석자도 이전보다 늘어난 60여명이었다. 이날 모임에는 지금껏 얼굴을 비추지 않던 인사도 참석했다. 한나라당 이우재 의원과 김영춘 의원이 그 주인공. 두 현역의원의 참석으로 분위기는 한껏 고양됐다. 두 사람은 민주화운동 세대이기는 하지만 통추나 민주당과는 인연이 없던 인물들이다. 이우재 의원은 민중당의 주역으로 정계에 진출한 이후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발탁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한 인물.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 의원은 일찌감치 ‘상도동 식구’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YS계 정치인이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예상 밖의 인사도 적지 않았다. 수덕사를 이들의 ‘도원결의’ 장소로 빌려준 법장 총무원장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법장 스님은 법어를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할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청학동 훈장 김봉곤씨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또 단국대 예술대학장인 이영수 교수는 행사 사회를 맡아 좌중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언이었다. 국회의원을 대표해 인사말을 한 이우재 의원은 “나를 재야의 맏형이라고 하지만 나이만 많을 뿐이다. 능력 있는 후배들을 따라가겠다. 이부영 의원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면 간다”며 이부영 의원 등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등단한 이부영 의원은 “평화생명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정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죽을 각오로 해보겠다”며 비장한 어조로 자신의 정치적 결단이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이호윤 21세기전략아카데미 회장은 “한마디로 수덕사 모임은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이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이들의 결의에 격려를 보냈다”고 말했다. 수덕사 모임을 시발로 한나라당 개혁파 중심의 신당 창당 시간표도 마련됐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늦어도 7월15일께 한나라당 개혁파의 탈당이 완료될 것이고 이때쯤 신당 창당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렬 의원을 대표로 선출한 한나라당 전당대회 직후인 지난 27일 이부영 의원도 “한나라당에 남아 생각을 펼치거나 적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사실상 탈당을 선언했다. 이의원을 비롯, 당장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김홍신 의원이 탈당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뒤를 이어 김영춘 서상섭 의원이 추가 탈당해 힘을 보태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아울러 이철 장기욱 전 의원 등이 합류해 당의 꼴을 갖추는 작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나아가 신당작업은 늦어도 9월 정기국회 이전에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한 인사는 “현재 현역의원이 포함된 신당 움직임은 크게 세 군데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김원웅 유시민 의원이 있는 개혁정당이다. 세 군데 중 민주당의 신당 움직임은 탄력을 잃었고 개혁정당의 신당 주장도 공허한 상태지만, 한나라당 개혁파의 신당 움직임은 나머지 세력의 신당론을 재가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별개의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한나라당 개혁파의 움직임도 사실상 노대통령의 신당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수덕사 모임 참석자 가운데는 노무현계라 불릴 만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 수덕사 모임의 산파역을 한 나소열 서천군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대통령의 측근. 노대통령이 민주당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을 무렵, 나군수와 고명석씨가 기조실의 실무당직자로 근무했다. 같은 시기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기조실장 보좌관으로 이들과 호흡을 같이한 바 있다.
한나라당 개혁파의 제3신당 창당 작업이 노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개혁정당 유시민 의원이 평소 주장해온 신당 방식과 일치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유의원은 민주당, 한나라당, 개혁정당의 3세력에 재야시민단체, 지역정치세력이 합세하는 ‘5자연대론’을 주장해왔다. 수덕사 모임은 유의원이 말한 5자 가운데 한나라당 개혁파의 신당 창당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정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과 민주당 신주류 간의 물밑교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태동의 조짐을 보인 한나라당 개혁파 중심의 제3신당은 과연 탄생할 것인가.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미우나 고우나 지난 몇 년 제 둥지였던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올 것인가. 새 당 대표를 뽑은 한나라당에 이래저래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