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가수의 정년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을 불러온 클론의 강원래(위 왼쪽), 구준엽씨.
그렇다면 강씨가 주장한 83억원은 어떻게 계산된 금액일까. 그는 세무신고한 소득 월 2000만원에 밤무대 800만원, 안무소득 300만원(안무 부분에 대해 여가수 박모씨의 법정 증언이 있었다) 등을 합친 월평균 3600만원을 소득으로 잡았고 60세까지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 발 양보해 클론이 당시 소속사와 계약한 기간 10년에다 10년을 더해 총 활동기간을 20년으로 잡는다 해도 배상액은 50억원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향후 치료비와 개호비(간병 비용)가 포함됐다.
그러나 보험사는 최고 인기를 누리던 1년치 소득을 모든 기한에 적용할 수 없으며 클론의 5년 월 평균소득이 78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댄스가수의 정년을 35세로 적용하면 배상액은 10억원이라는 것.
강원래씨, 정년 35세 적용 21억원?
김판사는 “가수는 언제까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10년 이상 인기를 유지한 가수가 몇 명이나 되나. 조용필,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등 소수에 불과하다. 원고측은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를 예로 들며 40대 중·후반에도 인기가 높을 수 있다고 주장하나 한국의 현실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몇 년 전 병역기피 파문이 일었던 가수가 ‘군대에서 3년을 지내고 나오면 댄스가수의 생명이 끝나는 나이 서른이 되기 때문에 재기하기 어려워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상황을 참작해 35세로 보았다”고 했다.
이번 21억원의 권고 결정은 35세까지는 원고측 주장대로 월 3600만원을 적용하고, 그 이후부터 60세까지는 문화예술인 통계소득 월 360만원으로 계산해 나온 것이다. 댄스가수의 정년과 실제소득을 둘러싼 논쟁은 일반인들에게도 자신의 ‘몸값’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7년째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여성 김모씨(40)는 “샐러리맨에게 21억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라며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배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씨의 연봉은 약 6000만원(월 500만원), 회사 규정상 정년은 58세다. 만약 1963년 2월생인 김씨가 2003년 1월1일 본인 과실이 전혀 없는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경우를 가상해 손해배상액을 계산해보면 약 5억7000만원이 나온다. 이 금액은 통상적으로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5000만원과 장례비가 포함된 액수. 만약 김씨가 사망하지 않고 장해율 90%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치료비를 1억3000만원으로 예상했을 때) 손해배상액은 약 8억8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이것이 40대 평범한 급여소득자가 최악의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몸값’이다. 물론 법원의 예상 판결금을 기초로 한 단순계산이어서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일반 샐러리맨의 몸값은? 보상금은 적지만 확실한 정년 규정 때문에 분쟁의 여지가 적다.
사회변화 따라 직업별 정년 늦춰져
교통사고나 의료사고, 산업재해 등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사망과 상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치료비, 개호비, 장례비, 차량수리비 등을 ‘적극적 손해’라 하고 치료 기간 동안 일을 할 수 없어 생기는 휴업손해와 사고 후 후유증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했을 때 생긴 소득의 손해를 합쳐 ‘소극적 손해’라고 한다.
그러나 소극적 손해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가수 강원래씨의 사례에서 보듯 소득과 소득기간(정년)이 늘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문제는 정년이 없는 직업들.
현재 70세까지 정년을 인정받는 직업은 변호사와 종교인 등 몇몇 전문직에 국한되며 대부분 60세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사회의 변화에 따라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법원이 인정하는 직업별 정년연한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의 정년을 35세로 보고 있지만 실제 40대 캐디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조만간 정년을 연장한 판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또 80년대까지만 해도 대법원이 정한 일용직 노동자의 정년이 55세였으나 90년대 들어 사회·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의 향상 등으로 60세까지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정년 다음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정확한 소득액. 꼬박꼬박 세금이 원천징수되는 급여소득자들과 달리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 자유직업인의 소득은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자의 경우 교통사고를 당해 손해배상을 산출할 때 주장하는 실소득과 신고소득이 너무 차이가 나서 도덕성을 의심받는 일도 있다. 강원래씨의 경우도 비과세소득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 피해자와 보험사의 주장이 크게 엇갈린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판사들이 피해자의 정황을 참작하다 보니 신고소득 외에 실제소득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93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게 지급하는 사망보상금은 실제소득보다 과세소득에 근거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와 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추세다.
몸이 재산인 스타들은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보험에 드는 경우가 많다. 100만 달러짜리 다리 보험의 주인공 탤런트 이혜영씨.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 대표)는 “소극적 손해를 계산할 때 신고소득이 아닌 실제소득을 반영하면 자영업자만 유리하다”며 “보상금은 소득 신고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나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극적 손해’을 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노동능력 상실 측정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일반인의 손가락 절단과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절단이 같을 수 있을까. 최변호사는 “노동능력 상실률을 1930년대에 만들어진 맥브라이드 방식에 의해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연주자나 외과의사와 같은 직업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얼굴 전체의 장애로 외부활동이 어렵게 돼 직장을 잃었다면 사실상 중대한 노동능력 상실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형수술에 따른 의료사고로 얼굴 전체에 장애를 입은 44세 주부에게 돌아간 보상은 3100만원이 전부였다. 주부 이모씨는 98년 주름살 제거 및 광대뼈 축소 수술 등을 받은 후 오른쪽 눈꺼풀이 치켜올라가 눈을 감아도 흰자가 보이고 입을 제대로 벌릴 수 없는 등 안면장애가 나타나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병원측에 이미 쓴 치료비 1800만원을 포함, 3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정도의 안면장애는 노동능력 상실과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또 97년 출산 과정에서 의료사고로 신생아를 잃고 자궁적출 수술까지 받아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여성이 받은 위로금은 1000만원. 대신 태어나자마자 죽은 신생아에게 일실소득(성인이 되는 2017년부터 60세까지 계산) 6400만원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이 스스로 책정하는 몸값은 얼마나 될까. 국내 생명보험의 최고 보장액은 20억원. 10년 사이 5억에서 12억, 15억, 20억원까지 단계별로 상승돼 자신의 몸값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경력 9년의 한 보험설계사는 “1년에 10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연예인들 중에 20억원을 보장해줄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몸값은 생활비, 교육비, 주택구입비, 자녀결혼 비용과 장례비로 구성된다. 34세의 박모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연봉 5000만원. 단순계산으로 박씨가 매년 5000만원씩 20년 동안 번다면 10억원이 된다. 보험금은 그 가치의 3분의 1 선에서 결정한다. 박씨는 매달 16만8400원의 보험료를 내며, 사망했을 때 3억2000만원을 보상받는다. 이 돈은 월 생활비 50만원과 병원비와 같은 긴급자금 120만원(연간), 주택구입 융자금 5000만원, 아들딸 교육비 1인당 1억원, 장례비 1000만원에 해당한다. 그는 자녀 1인당 3000만~5000만원씩 책정하는 결혼자금을 포함하지 않았다. 가장 평범한 몸값에 속한다. 월소득 3000만원인 치과의사 이모씨(35세)가 생각한 자신의 최소 몸값은 7억원. 만약 자신이 사망할 경우 두 자녀가 각각 2억원씩, 아내가 3억원 정도 필요로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월 300만원의 보험료를 지불하고 있다.
“직장생활에서의 정년을 몇 살로 잡고 계십니까?” 최근 헤드헌팅 전문사인 HR코리아가 회원 6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50세가 나왔다. 그러나 50세 이하라고 대답한 사람(35세, 40세, 45세 이하 포함)이 57.7%나 돼 체감 정년은 이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인정하는 물리적 정년은 날로 길어지고 있지만, 거꾸로 현실 속 정년은 ‘사오정(45세에 임원이 되지 못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최근의 분위기를 빗댄 표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내 몸값은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