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콜린우드’
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유쾌한 영화는 ‘웰컴 투 콜린우드’다. 앤서니 루소, 조이 루소 형제가 감독한 이 영화는 ‘쓰레기 인생’들의 한판 소동을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었다. 갱들이 이보다 우스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지의 테리 로슨의 순진한(?) 평 그대로다.
‘볕들 날 없는 쥐구멍’에 살고 있는 6명의 건달들이 어느 날 ‘인생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는 기막힌 정보를 입수한다. 그 정보란 콜린우드 시 체스트가의 한 벽돌집 금고 속에 자그마치 30만 달러가 들어 있다는 것. 그 돈만 손에 넣으면 모두들 이 불쌍한 건달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겠다고 각오가 대단하다.
이들의 꿈은 곧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꿈이다. 돈벼락 맞을 꿈이라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해몽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꾸고 싶어하는 돼지꿈이다. 억지로 끌어다 붙이자면,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실현된다고 어느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한두 명도 아니고 6명이 꾸는 꿈이니 기대가 클 수밖에.
‘시몬’(왼쪽) ‘8명의 여인들’
이들은 도둑질이라는 악의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무자비한 악당들이 아니다. 오히려 순박하고 어눌하기 이를 데 없어 웃음을 자아낸다. ‘거사’를 단행하기에 앞서 이들이 늘어놓는 푸념은 갱이라기보다는 노동자의 그것이다. “돈 생기면 나는 감방에 있는 마누라부터 빼내고, 아기 선물 사줄래.” “나는 이웃 눈치 안 보고 속옷 바람으로 느긋하게 책이나 읽을래.” “난 죽은 마누라 비석이나 세워줄래.”
이런 류의 인물들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태양은 없다’의 양아치 홍기와 삼류 복서 도철, ‘풀몬티’에서 멋진 스트립쇼를 보여준 실업자들, ‘광복절 특사’의 순정파 사기꾼 재필과 어눌한 절도범 무석이 이런 부류다.
콜린우드는 미국 클리블랜드 근처의 작은 도시다. 1970년대만 해도 공업지대였던 이곳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앞날이 막막한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치 영화 ‘풀몬티’에서 실업자들로 넘치는 도시 셰필드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달들은 바로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삼류 인생들인 것이다. 자신들이 자라면서 봐왔던 쇠락한 고향 노동자들의 삶을 담고 싶었다는 두 형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8명의 여인들’은 독특한 뮤지컬 코미디다. 8명의 여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집에 모였는데 큰 눈이 내려 마을이 고립됐다. 그날 밤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사위이자 정부인, 단 한 명의 남자 마르셀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여인들은 의심과 질투, 모함에 휩싸인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뉘엘 베아르 등 프랑스 일류 배우들의 망가지는 연기도 볼거리.
‘트루먼 쇼’로 잘 알려진 앤드류 니콜 감독의 ‘시몬’은 실재와 이미지가 도치된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무명 감독 빅터 타란스키 역은 알 파치노가 맡아 열연한다. 빅터는 사활을 걸고 영화를 찍지만 출연중이던 스타급 여배우가 중도하차하고 만다. 절망에 빠진 그는 우연히 어느 과학자가 건네준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이버 여배우 ‘시몬(simulation+one)’을 만든다. 시몬은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르고 급기야 빅터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