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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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불륜, 아내의 로맨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2-11-07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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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불륜, 아내의 로맨스
    소설가 전경린씨는 ‘새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란 작품에서 삶을 이렇게 정의했다. ‘생이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단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 삶에 불륜은 없다. 모든 사랑은 욕망의 실천이므로 그것에 몰입하면 할수록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게 된다.

    지독한 사랑을 다룬 영화 ‘밀애’ 역시 이 같은 논리가 관통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전경린씨의 장편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밀애’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이 매혹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시쳇말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의 도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남편의 불륜은 용서할 수 없는 패륜이고, 아내인 나의 불륜은 아름다운 ‘로맨스’로 그려진다. “개인은 자신의 윤리 도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전경린)는 측면에서 보면 카메라가 남편에 대해서도 애정을 갖고 찬찬히 비춰야 하겠지만, 영화는 원작과 달리 남편에 대해 지나치게 소홀하다.

    변영주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숨결’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여성 감독이다. 사회의 모순이나 여성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적인 시네마 베리테 방식을 보여줬던 변감독이 ‘밀애’ 같은 격정을 다룬 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이 의외다. 그러나 영화는 변감독의 작품답게 단순한 멜로물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정체성 추구로 확대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밀애’는 요즘의 흔한 멜로 드라마와 구별된다. 이 영화 역시 ‘중독’ ‘정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과 같이 불륜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지만, 주인공 미흔(김윤진)은 아픈 상처를 딛고 자아 찾기에 성공한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오후 낯선 여자 영우(김민경)가 집으로 찾아온다. 젊고 예쁘다. 그런데 그녀가 미흔의 남편 효경(계성용)을 ‘오빠’라고 부른다. 그것은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미흔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는 끔찍한 테러였다. 그 예쁜 여자가 술에 취해 말한다.

    “내가 오빨 통째로 빨아당긴대. 오빠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했어.”

    이후 미흔 부부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딸과 함께 시골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달라진 건 없다. 미흔은 그때의 충격으로 더 이상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두통에 시달리던 미흔은 약을 구하러 병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의사 인규(이종원)를 만난다. 인규는 미흔의 윗집에 혼자 살고 있는 바람둥이다. 아내와 별거중인 그는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생활하고 있다. 몇 번의 우연한 만남 이후 인규가 미흔에게 제안한다.

    “나하고 게임이나 할까요?”

    게임이란 사랑놀음의 다른 이름이다. 단, 조건이 있다.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게임에서 지게 된다. 섹스만 즐길 뿐, 절대 사랑은 하지 말 것! 미흔은 이 난데없는 게임에 ‘온몸이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처럼 큰 만족감과 함께 위기도 찾아온다. 남편이 인규와의 관계를 알아버린 것이다. 이 게임을 지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그러나 너무 멀리 왔다. 돌아가기에는 마음이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인규는 죽고, 미흔은 혼자 남았다. 그러나 그의 앞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미흔은 영우의 출현으로 잃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풍성하다. 사랑도 깊고 넘치지만 남해 바닷가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도 매혹적이다. 영화 ‘접속’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조영욱씨가 이 영화에서도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영화 전편에 걸쳐 흐르는 존 바에즈의 ‘도나 도나(Donna Donna)’는 격정에 휘말린 미흔의 복잡한 감정과 놀라우리만치 잘 어울린다.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나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등의 명곡들도 서정성을 더한다. ‘밀애’는 개봉 전부터 도쿄국제영화제와 11월14일부터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변영주 감독에 대한 국내외 영화인들의 관심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가을, 보고자 하는 욕망에 몸을 맡겨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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