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 손님 두 분이 찾아와 밭에서 캔 고구마를 한 바구니씩 비닐봉지에 담아드렸다. 밭에는 아직도 미처 캐지 못한 고구마가 한 두둑 남아 있다. 올해 고구마 농사는 성공이다. 멧돼지 피해도 없었고, 창고에는 이미 두 가마나 저장되어 있다.
농사꾼 일년차였던 작년에는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다. 작년 이맘때쯤의 일이다. 고구마 줄기와 잎이 무성하여 크게 기대하고 삽질을 했는데,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구마는 실망 그 자체였다. 힘들여 두둑을 파헤쳐보지만 못생기고 부실한 고구마만 나올 뿐이었다.
고구마는 말 그대로 허장성세(虛張聲勢)였다. 미덥지 않은 지금의 우리 기업과 비슷했다. 겉모습은 근사한데 보이지 않는 부분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이 번지르르하면 대개는 속이 비어 있다. 된서리를 이겨내는 가을배추 속처럼 꽉 차 있지 않다.
‘자신은 없고 남의 삶 기웃’ 우습고 어리석은 일
작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올해는 고구마 잎과 줄기를 자주 쳐주었다. 어머니 친구분을 산중으로 초대하여 반찬거리로 줄기를 한 보따리씩 끊어 가시게도 했다. 잎들은 퇴비로 쓰려고 모아두고, 줄기는 껍질을 벗긴 뒤 약간 데쳐 된장에 버무려 반찬으로 먹었다. 이처럼 잎과 줄기를 잘 단속해주니 올해 고구마는 참했다.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먹을 때면 나도 영락없이 중국의 나찬(懶讚) 선사처럼 꾀죄죄한 몰골이 되고 만다. 몰골만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찬은 당 현종 때의 선승이었다. 그는 남악 형산(衡山)의 초막에서 살았다. 현종은 그의 깊은 도력을 흠모하여 장안으로 들어와 설법해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남악 형산으로 칙사를 보냈다. 칙사가 나찬의 초암을 찾았는데, 그때 나찬은 마당가에서 쇠똥으로 지핀 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있었다. 칙사가 옆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입가에 침을 흘리며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었다. 장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권승(權僧)만 보아왔던 칙사는 나찬의 천진한 모습에 감격하여 말했다.
“선사시여,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황제께 말씀드려 모두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나찬은 그제야 칙사의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좀 비켜주시겠소. 그대가 햇볕을 막고 서 계시니 나는 그늘 속에 있소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낡은 램프를 들고 다니던 철인(哲人)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을 때 디오게네스가 햇볕을 쬐게 비켜달라고 했던 고사와 너무도 흡사하다. 당 현종의 칙사나 알렉산더 대왕은 온몸으로 사는 그들의 삶 속에 동참할 수 없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던 것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 고구마를 구워 먹곤 했다. 고구마는 활활 타는 불 속보다는 숯이 되기 전의 잉걸불 속에 묻어야 고소하게 구워진다. 잉걸불에 등짝과 사타구니를 바꿔가며 쬐는 동작에도 나는 정신을 판다. 등짝은 따습고 사타구니는 얼얼하다.
물론 배가 고파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은 아니다. 잉걸불에 몸을 쬐는 것도 드러누울 방이 없어 그런 게 아니다. 누구에게 이끌려가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조촐한 시간을 누리는 게 좋다. 국가와 민족만을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보잘것없는 산중의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온전한 자신의 시간이기에 소중하다.
나찬 선사는 ‘기래끽반(饑來喫飯) 곤래즉면(困來卽眠)’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는 뜻이다. 내 식대로 풀자면 밥 먹을 때는 온전히 밥만 먹고, 잠이 올 때는 온전히 잠만 잔다는 말이다. 이게 어디 쉬운 경지인가. 밥 먹을 때도 온갖 계산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잠잘 때도 이런저런 잡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체험하지 못하고,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이가 우리들인 것이다.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일인가. 산중에서 고구마 하나를 가지고 나까지 나서서 소란스러운 세상에 말을 보태고 말았다. 입다물고 있어야 할, 억새꽃이 눈부신 가을날 오후다.
농사꾼 일년차였던 작년에는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다. 작년 이맘때쯤의 일이다. 고구마 줄기와 잎이 무성하여 크게 기대하고 삽질을 했는데,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구마는 실망 그 자체였다. 힘들여 두둑을 파헤쳐보지만 못생기고 부실한 고구마만 나올 뿐이었다.
고구마는 말 그대로 허장성세(虛張聲勢)였다. 미덥지 않은 지금의 우리 기업과 비슷했다. 겉모습은 근사한데 보이지 않는 부분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이 번지르르하면 대개는 속이 비어 있다. 된서리를 이겨내는 가을배추 속처럼 꽉 차 있지 않다.
‘자신은 없고 남의 삶 기웃’ 우습고 어리석은 일
작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올해는 고구마 잎과 줄기를 자주 쳐주었다. 어머니 친구분을 산중으로 초대하여 반찬거리로 줄기를 한 보따리씩 끊어 가시게도 했다. 잎들은 퇴비로 쓰려고 모아두고, 줄기는 껍질을 벗긴 뒤 약간 데쳐 된장에 버무려 반찬으로 먹었다. 이처럼 잎과 줄기를 잘 단속해주니 올해 고구마는 참했다.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먹을 때면 나도 영락없이 중국의 나찬(懶讚) 선사처럼 꾀죄죄한 몰골이 되고 만다. 몰골만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나찬은 당 현종 때의 선승이었다. 그는 남악 형산(衡山)의 초막에서 살았다. 현종은 그의 깊은 도력을 흠모하여 장안으로 들어와 설법해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남악 형산으로 칙사를 보냈다. 칙사가 나찬의 초암을 찾았는데, 그때 나찬은 마당가에서 쇠똥으로 지핀 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있었다. 칙사가 옆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입가에 침을 흘리며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었다. 장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권승(權僧)만 보아왔던 칙사는 나찬의 천진한 모습에 감격하여 말했다.
“선사시여,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황제께 말씀드려 모두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나찬은 그제야 칙사의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좀 비켜주시겠소. 그대가 햇볕을 막고 서 계시니 나는 그늘 속에 있소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낡은 램프를 들고 다니던 철인(哲人)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을 때 디오게네스가 햇볕을 쬐게 비켜달라고 했던 고사와 너무도 흡사하다. 당 현종의 칙사나 알렉산더 대왕은 온몸으로 사는 그들의 삶 속에 동참할 수 없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던 것이다.
나는 며칠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 고구마를 구워 먹곤 했다. 고구마는 활활 타는 불 속보다는 숯이 되기 전의 잉걸불 속에 묻어야 고소하게 구워진다. 잉걸불에 등짝과 사타구니를 바꿔가며 쬐는 동작에도 나는 정신을 판다. 등짝은 따습고 사타구니는 얼얼하다.
물론 배가 고파서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은 아니다. 잉걸불에 몸을 쬐는 것도 드러누울 방이 없어 그런 게 아니다. 누구에게 이끌려가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조촐한 시간을 누리는 게 좋다. 국가와 민족만을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보잘것없는 산중의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온전한 자신의 시간이기에 소중하다.
나찬 선사는 ‘기래끽반(饑來喫飯) 곤래즉면(困來卽眠)’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는 뜻이다. 내 식대로 풀자면 밥 먹을 때는 온전히 밥만 먹고, 잠이 올 때는 온전히 잠만 잔다는 말이다. 이게 어디 쉬운 경지인가. 밥 먹을 때도 온갖 계산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잠잘 때도 이런저런 잡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체험하지 못하고,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이가 우리들인 것이다.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일인가. 산중에서 고구마 하나를 가지고 나까지 나서서 소란스러운 세상에 말을 보태고 말았다. 입다물고 있어야 할, 억새꽃이 눈부신 가을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