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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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때문(?)에 아르헨이 몰락했나

  • 이명재/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mjlee@donga.com

    입력2002-10-07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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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즘 때문(?)에 아르헨이 몰락했나
    요즘 한국인들에게 가장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나라가 있다면 아마 아르헨티나일 듯하다. 이 나라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IMF와 지원협상을 벌이고 있어, 5년 전 악몽을 기억하는 한국인들에겐 먼 나라 일로만 비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같은 연민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대해 갖는 오해가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오해는 아르헨티나 하면 축구만 잘하지, 본래 가난한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읽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동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년 마르코가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온갖 고생을 한다는 이 얘기의 배경은 19세기 이탈리아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자 나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마르코의 엄마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마르코의 엄마가 찾아간 부자 나라가 다름아닌 아르헨티나였다. 당시 유럽에선 ‘아메리칸 드림’과 함께 ‘아르헨티나 드림’이 거셌을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세계적 부국이었다.

    그런 영광의 아르헨티나가 왜 지금의 처지에 몰렸을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아르헨티나도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 분수령의 정점을 클로즈업한 영화가 바로 ‘에비타’다. 무명댄서 출신으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삶에 초점을 맞췄지만 또한 아르헨티나 몰락의 단서를 보여준다.



    흔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포퓰리즘(인기 영합정책) 탓으로만 돌리려 하는데 그것도 아르헨티나에 대한 오해 내지는 단견이다. 포퓰리즘이 하나의 원인이 됐던 건 분명하지만 그게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포퓰리즘은 원인일 뿐 아니라 수십년을 두고 진행된 경제위기의 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부국이었지만 취약한 경제구조를 안고 있었다. 산업이 곡물 원유 등 1차산업에 집중돼 세계경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미국 영국 등이 외국 농축산물 수입을 제한하면서 이 나라의 농축산업은 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문제가 극심한 빈부격차였다. 이는 내수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중산층 기반의 결핍으로 이어져 경제의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경제에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때 등장한 이가 에비타의 남편 페론 대령이었다. 1945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공업발전계획은 그런 취약한 경제체질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그는 외국자본을 내쫓고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노동자의 처우 개선 정책을 추진한다. 그가 노동자들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노동입법을 추진한 것을 두고 흔히 포퓰리즘으로 비판하지만 페론의 정책은 단순히 그런 차원만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 계급의 소득을 향상시켜 내수를 진작해 국내공업 발전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물론 페론주의는 거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에비타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감정 탓에 왜곡된 면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대다수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페론시대-혹은 에비타-를 못 잊는 건 페론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에 대한 수술을 과감히 시도했던 정책 때문일 것이다.

    페론주의 망령 운운하며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설명하려는 외부의 시각이 논리적으론 옳을지 몰라도 현실성을 잃을 수 있는 건 에비타시대에 대한 아르헨티나인들의 향수의 본질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르헨티나가 마라도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도 포퓰리즘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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