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1999)이 마침내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작품을 아주 신선하게 보았던 터라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다케시 감독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감독을 이중인격자로 매도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표현이 이 감독의 특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수사임은 분명하다.
다케시 감독은 현대 일본영화를 이끄는 이 시대의 거장이다. 아시아 변방의 일본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전성기 때의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삼인방에야 못 미치겠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일본영화가 도달한 성과를 대변해 준다. 그래서 다케시는 일본 영화계의 보배다.
한편 그는 일본 코미디계의 대부라는 또 다른 명성도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와 코미디라는 두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2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쥔 ‘챔프’라고 할까. 그러니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가 아닌가.
우리의 관심사는 영화이므로 영화 쪽으로만 한정한다 해도 그의 ‘헐크’로서의 면모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일본영화의 큰 흐름이랄 수 있는 야쿠자 영화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마니아층의 열광적 환호를 받았던 ‘소나티네’(1993)와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비’(1997)는 그쪽 장르의 정점에 선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소재가 소재인 만큼 거침없는 폭력의 묘사에 있다. 폭력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휴지기로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시뻘건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처럼 그려진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지나친 폭력성을 비하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의식 속에 폭력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케시의 영화들을 두고 ‘폭력의 미학’이라는 수사학적 표현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렇지 않다면 극한적 폭력을 다룬 ‘하나비’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폭력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감독은 다른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추구하는, 이른바 ‘착한 영화’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바로 착한 영화의 정점에 선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전직 야쿠자로 보이는 한 흉포한 아저씨가 어느 날 엄마를 찾아 나선 한 꼬마의 보호자가 되어 동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언뜻 구성이 단순해 보이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영화에는 코미디의 제왕다운 다케시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케시 감독의 영화들 가운데, 대부분 좋게 보았지만, 특히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 한 편 있다. 그가 1991년에 만든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라는 다소 긴 제목의 영화다. 나는 그 보석 같은 영화를 지금은 명맥이 끊긴 한·일청소년영화제(1999)에서 볼 수 있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쓸쓸한 영화였다. 한 농아 청년이 윈드서핑을 하는 선수들을 보고 부러워하다가 자기도 힘겹게 배운 끝에 망망대해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원 속으로의 여행이랄까. 대사도 별로 없고 로맨스도 없었지만, 시종일관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여운이 더 깊은지 모르겠다.
나는 ‘기쿠지로의 여름’이 ‘그 해 여름…’과 내용과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속편 격인 영화라고 보고 싶다. 두 영화는 사람들이 보통 여름이라는 계절에 갖게 되는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일상에만 갇혀 있지 말고 어디론가 떠나도록 부추기는 계절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주된 색조는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래서 일단 싱그럽다는 인상을 준다. 짙푸른 영상을 통해 대자연의 생생한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 사는 부대낌이 없다면, 녹색의 상큼함은 이내 황량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에는 사람 사는 부대낌이 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유머도 만발한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가는 꼬마의 기약 없는 여정이 결코 서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휴가철도 다 지나갔다. 한달 내내 간헐적으로 빗줄기가 뿌린 탓에 황금 휴가철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휴가 방법으로 기쿠지로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다케시 감독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감독을 이중인격자로 매도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표현이 이 감독의 특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수사임은 분명하다.
다케시 감독은 현대 일본영화를 이끄는 이 시대의 거장이다. 아시아 변방의 일본영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전성기 때의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 오즈 야스지로 삼인방에야 못 미치겠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일본영화가 도달한 성과를 대변해 준다. 그래서 다케시는 일본 영화계의 보배다.
한편 그는 일본 코미디계의 대부라는 또 다른 명성도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영화와 코미디라는 두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2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쥔 ‘챔프’라고 할까. 그러니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가 아닌가.
우리의 관심사는 영화이므로 영화 쪽으로만 한정한다 해도 그의 ‘헐크’로서의 면모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일본영화의 큰 흐름이랄 수 있는 야쿠자 영화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마니아층의 열광적 환호를 받았던 ‘소나티네’(1993)와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비’(1997)는 그쪽 장르의 정점에 선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소재가 소재인 만큼 거침없는 폭력의 묘사에 있다. 폭력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휴지기로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시뻘건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처럼 그려진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지나친 폭력성을 비하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의식 속에 폭력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케시의 영화들을 두고 ‘폭력의 미학’이라는 수사학적 표현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렇지 않다면 극한적 폭력을 다룬 ‘하나비’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폭력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감독은 다른 한편으로 잔잔한 감동을 추구하는, 이른바 ‘착한 영화’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바로 착한 영화의 정점에 선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전직 야쿠자로 보이는 한 흉포한 아저씨가 어느 날 엄마를 찾아 나선 한 꼬마의 보호자가 되어 동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언뜻 구성이 단순해 보이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영화에는 코미디의 제왕다운 다케시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케시 감독의 영화들 가운데, 대부분 좋게 보았지만, 특히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 한 편 있다. 그가 1991년에 만든 ‘그 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라는 다소 긴 제목의 영화다. 나는 그 보석 같은 영화를 지금은 명맥이 끊긴 한·일청소년영화제(1999)에서 볼 수 있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쓸쓸한 영화였다. 한 농아 청년이 윈드서핑을 하는 선수들을 보고 부러워하다가 자기도 힘겹게 배운 끝에 망망대해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원 속으로의 여행이랄까. 대사도 별로 없고 로맨스도 없었지만, 시종일관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여운이 더 깊은지 모르겠다.
나는 ‘기쿠지로의 여름’이 ‘그 해 여름…’과 내용과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속편 격인 영화라고 보고 싶다. 두 영화는 사람들이 보통 여름이라는 계절에 갖게 되는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일상에만 갇혀 있지 말고 어디론가 떠나도록 부추기는 계절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주된 색조는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래서 일단 싱그럽다는 인상을 준다. 짙푸른 영상을 통해 대자연의 생생한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 사는 부대낌이 없다면, 녹색의 상큼함은 이내 황량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쿠지로의 여름’에는 사람 사는 부대낌이 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유머도 만발한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가는 꼬마의 기약 없는 여정이 결코 서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휴가철도 다 지나갔다. 한달 내내 간헐적으로 빗줄기가 뿌린 탓에 황금 휴가철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휴가 방법으로 기쿠지로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