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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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방이에 짚신 신고 맨손 수비

  • < 김성원/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 rough@sportstoday.co.kr

    입력2004-10-08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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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방이에 짚신 신고 맨손 수비
    국내에 야구가 도입된 초창기인 구한말의 시대상을 그려낸 YMCA야구단 이야기가 곧 영화로 나온다. 송강호가 몽둥이에 가까운 배트를 들고 한복 저고리를 입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TV 예고편에도 몇 차례 나왔다. YMCA야구단 출연진은 8월14일 잠실구장에서 선수단과 약식 경기를 치르는 이벤트도 펼친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우리나라 야구는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에 의해 보급됐다. 질레트는 1907년 YMCA회관 완공 전,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는 미국 병사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한국인들을 보고, 야구가 선교에 좋은 매개수단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소개하게 됐다고 한다.

    질레트가 도입한 장비를 접한 황성 YMCA 회원들은 곧 야구에 빠져들었다. 1905년 봄부터 회관 앞마당을 무대 삼아 본격적으로 팀을 일궈나갔다.

    영화에도 자세히 그려지겠지만 당시 야구규칙과 플레이는 지금과 딴판이었다. 유니폼도 따로 없어 잠방이에다 짚신 차림이었다. 구장도 요즘의 정식구장에 비하면 동네 놀이터에 지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포수가 투수의 공을 일일이 받지 않은 점. 당시에는 포수 미트가 없어 투구를 받는 데 불편했다. 따라서 포수는 공을 받지 않고 공이 뒷그물에 걸리도록 했던 것.

    변화구란 게 있을 턱도 없다. 당시 좋은 투수는 정교한 컨트롤은 제쳐두고 누가 더 빠르게 던지느냐에 달려 있었다. 타자의 관심도 멀리 치는 대신에 높이 쳐 올리는 것이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그래야 주위의 환성과 박수가 나왔다.



    그러나 높이 올리는 게 나쁜 작전은 아니다. 투수와 포수 이외엔 대부분 맨손으로 수비에 나섰고, 간혹 방한용 장갑 정도를 끼고 공을 받기도 했다. 정식 글러브가 없으니 높이 뜬 공은 필연적으로 에러를 유발하게 마련.

    한국 야구사에 따르면 조선의 1호 심판은 김영제씨. 구한말 군인 출신으로서 군대식 구령을 붙이던 솜씨를 발휘하면서 누구보다도 낭랑한 목소리로 판정을 내리곤 했다고 한다. 목청이 우렁찬 게 가장 중요했다.

    경기 도중 양팀이 규칙을 두고 옥신각신할 경우엔 어떻게 했을까. 그러면 무조건 게임이 중단됐다. 그리고 심판과 선수, 감독 등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규칙서를 뒤적였다. 당시는 선수단이나 심판을 불문하고 야구 규칙을 완전히 마스터한 이가 없었던 것. 한쪽에서 어필을 하면 양쪽이 납득할 때까지 설전을 벌이는 게 당시의 풍경이었다. 지금의 야구와는 너무나 다른 당시의 진풍경을 스크린으로나마 곧 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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