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수궁가’를 꼬마들이 손뼉 치며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잘 안 되는 장면이다. 탑블레이드 팽이와 디지몬 같은 장난감, 각종 만화영화 비디오에 익숙한 아이들이 수궁가 같은 ‘고리타분한’ 판소리를 알아듣기나 할까?
그러나 무대에서는 가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국립창극단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어린이 창극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판소리 ‘수궁가’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 공연에 어린 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지만 입소문만으로 공연 시작 전에 3500장이 넘는 티켓이 팔려 나갔다. ‘제11회 서울어린이연극상’에서 최고인기상과 제작·기획상을 받은 이 작품은 처음 공연된 지난 연말에도 매진사례를 기록해 신년까지 연장 공연을 한 바 있다.
무엇이 아이들로 하여금 창극에 열광하게 할까? 앙코르 공연의 첫날인 7월3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로비는 이미 아이들과 엄마들로 와글와글한 상태였다. 잉어 곰 호랑이 등 알록달록한 동물 분장을 한 배우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공연장이 아니라 ‘롯데월드’ 같은 놀이마당에 온 분위기였다.
이 신기하고도 떠들썩한 분위기는 공연장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여느 창극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국악 관현악단이 자리잡고 있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관현악단 대신 출연인물들의 등·퇴장로가 놓여 있었다. 이 길을 통해 산짐승들이 무대로 등장하거나 별주부가 토끼를 데리고 용궁으로 헤엄쳐 간다. 고전적인 판소리 마당처럼 무대와 객석이 하나인 셈이다. 객석 뒤편에서부터 와그르르 토끼, 자라, 여우, 호랑이 등이 달려나올 때마다 객석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원판 ‘수궁가’는 5시간이 넘는 긴 판소리다. 그러나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1시간 15분 정도의 길이로 수궁가를 압축해 각색했다. 원작의 무대는 중국이지만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에 등장하는 토끼는 금강산에 산다. 대본을 직접 쓴 연출자 류기형씨는 “수궁가는 정치상황에 대한 풍자극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는 사실 어려운 극이다”면서 “스토리만 수궁가에서 따왔을 뿐, 많은 부분은 창작하거나 개작했다”고 말했다.
원작을 개작하면서 원래는 없던 재미난 부분들도 생겨났다. 토끼가 수궁을 동경해 별주부를 따라갔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에서는 ‘외국 가서 천대받지 말자’면서 은근 슬쩍 요즈음의 조기유학 열풍을 꼬집는다. 산짐승들의 회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연극이라 해도 아이들이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때문에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에 나오는 노래들은 대부분 짧고 빠른 템포였다. 판소리가 불려질 때마다 무대 왼편에는 가사 자막이 떠서 이해를 도왔다.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는 이 밖에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객석의 불은 무대가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공포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를 비롯해 용왕 잉어 조개 다람쥐 등 등장인물들의 분장은 유치원 재롱잔치를 연상시킬 만큼 귀엽고 환상적이었다. “난 그냥 토끼가 아니라 엽기토끼야” 하고 반항하는 토끼에게 “네가 엽기토끼면 난 졸라맨이다!” 하고 외치면서 토끼를 잡아가는 수궁 문지기, 토끼의 간 대신 산삼을 먹고 힘이 났다는 표시로 ‘히딩크 어퍼컷’을 올려치는 용왕 등 재치 있는 장면들도 돋보였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의 일등 공신으로 아역 출연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의 캐스팅에는 아홉 명의 아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 역에는 어른 토끼와 아역 자라, 그리고 아역 토끼와 어른 자라가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역들은 판소리 실력만큼은 국립창극단 단원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토끼 역의 오현과 자라 역의 장서윤은 각기 청소년 문화대축제 대상, 서울 전국명창대회 초등부 최우수상 등 만만찮은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연출자 류씨도 “어린이들이 판소리에는 익숙한데 연기를 지도하느라 애먹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린이들의 눈은 성인 관객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공평하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은 결국 ‘눈높이 맞추기’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판소리의 힘과 매력을 발견한 것은 어린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이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부모들은 입을 모아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판소리에 숨어 있는 대중성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 초입에는 삼신할머니가 나온다. 아이들이 “삼신할머니~” 하고 부르자 무대에 나타난 할머니가 “옛날 옛날에~”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극이 시작된다. 극의 마지막도 “별주부는 토끼의 간 대신 천년 묵은 산삼을 발견해 용왕님의 병을 고쳤단다”는 삼신할머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어린이창극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할머니의 정겨운 이야기 보따리였다.
그러나 무대에서는 가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가능해진다. 국립창극단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어린이 창극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판소리 ‘수궁가’를 각색한 작품이다. 이 공연에 어린 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지만 입소문만으로 공연 시작 전에 3500장이 넘는 티켓이 팔려 나갔다. ‘제11회 서울어린이연극상’에서 최고인기상과 제작·기획상을 받은 이 작품은 처음 공연된 지난 연말에도 매진사례를 기록해 신년까지 연장 공연을 한 바 있다.
무엇이 아이들로 하여금 창극에 열광하게 할까? 앙코르 공연의 첫날인 7월3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로비는 이미 아이들과 엄마들로 와글와글한 상태였다. 잉어 곰 호랑이 등 알록달록한 동물 분장을 한 배우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다. 공연장이 아니라 ‘롯데월드’ 같은 놀이마당에 온 분위기였다.
이 신기하고도 떠들썩한 분위기는 공연장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여느 창극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국악 관현악단이 자리잡고 있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관현악단 대신 출연인물들의 등·퇴장로가 놓여 있었다. 이 길을 통해 산짐승들이 무대로 등장하거나 별주부가 토끼를 데리고 용궁으로 헤엄쳐 간다. 고전적인 판소리 마당처럼 무대와 객석이 하나인 셈이다. 객석 뒤편에서부터 와그르르 토끼, 자라, 여우, 호랑이 등이 달려나올 때마다 객석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원판 ‘수궁가’는 5시간이 넘는 긴 판소리다. 그러나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1시간 15분 정도의 길이로 수궁가를 압축해 각색했다. 원작의 무대는 중국이지만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에 등장하는 토끼는 금강산에 산다. 대본을 직접 쓴 연출자 류기형씨는 “수궁가는 정치상황에 대한 풍자극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는 사실 어려운 극이다”면서 “스토리만 수궁가에서 따왔을 뿐, 많은 부분은 창작하거나 개작했다”고 말했다.
원작을 개작하면서 원래는 없던 재미난 부분들도 생겨났다. 토끼가 수궁을 동경해 별주부를 따라갔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에서는 ‘외국 가서 천대받지 말자’면서 은근 슬쩍 요즈음의 조기유학 열풍을 꼬집는다. 산짐승들의 회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연극이라 해도 아이들이 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 때문에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에 나오는 노래들은 대부분 짧고 빠른 템포였다. 판소리가 불려질 때마다 무대 왼편에는 가사 자막이 떠서 이해를 도왔다.
제작진의 세심한 배려는 이 밖에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객석의 불은 무대가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공포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를 비롯해 용왕 잉어 조개 다람쥐 등 등장인물들의 분장은 유치원 재롱잔치를 연상시킬 만큼 귀엽고 환상적이었다. “난 그냥 토끼가 아니라 엽기토끼야” 하고 반항하는 토끼에게 “네가 엽기토끼면 난 졸라맨이다!” 하고 외치면서 토끼를 잡아가는 수궁 문지기, 토끼의 간 대신 산삼을 먹고 힘이 났다는 표시로 ‘히딩크 어퍼컷’을 올려치는 용왕 등 재치 있는 장면들도 돋보였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의 일등 공신으로 아역 출연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의 캐스팅에는 아홉 명의 아역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 역에는 어른 토끼와 아역 자라, 그리고 아역 토끼와 어른 자라가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역들은 판소리 실력만큼은 국립창극단 단원들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다. 토끼 역의 오현과 자라 역의 장서윤은 각기 청소년 문화대축제 대상, 서울 전국명창대회 초등부 최우수상 등 만만찮은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연출자 류씨도 “어린이들이 판소리에는 익숙한데 연기를 지도하느라 애먹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린이들의 눈은 성인 관객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공평하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은 결국 ‘눈높이 맞추기’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판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판소리의 힘과 매력을 발견한 것은 어린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이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부모들은 입을 모아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판소리에 숨어 있는 대중성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 초입에는 삼신할머니가 나온다. 아이들이 “삼신할머니~” 하고 부르자 무대에 나타난 할머니가 “옛날 옛날에~”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극이 시작된다. 극의 마지막도 “별주부는 토끼의 간 대신 천년 묵은 산삼을 발견해 용왕님의 병을 고쳤단다”는 삼신할머니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어린이창극 ‘토끼와 자라의 용궁 여행’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할머니의 정겨운 이야기 보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