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자리에 앉아 손뜨개나 십자수를 하는 여자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양손에 실과 바늘을 쥔 채 무언가를 쉬지 않고 떠 가는 여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심하고도 담담하다. 그 느낌을 아마 ‘평온’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실과 바늘이 주는 치유의 힘. 현역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91)가 한 세기 가까운 여정 끝에 발견한 것은 바로 그 힘이었다.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중인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얼핏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거칠게 말하자면 ‘헌 소파나 수건 조각으로 만든 인형’이랄까?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타월 소파 커튼 등 집에서 사용하던 낡은 천(Fabric) 소재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것들이다. 작품의 재료는 모두 루이즈 부르주아가 집에서 직접 쓰던 물건들이다. 이제 91세인 작가는 곧 자신의 유품이 될 물건들을 하나하나 작품으로 만들면서 세상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인 ‘루이즈 부르주아: 기억의 공간’이 열리면서 비로소 알려졌지만 부르주아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조각가로 첫손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가졌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전시를 연 최초의 생존 작가다. 지난 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처럼 화려한 경력보다는 그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파리 태생인 부르주아의 집은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일을 가업으로 삼고 있었다. 집안의 영향으로 부르주아는 어릴 때부터 바느질에 익숙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바늘을 사용했다. 나는 항상 바늘이 만들어내는 마법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부르주아 자신의 회고다.
하지만 아버지가 불륜관계의 정부(情婦)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부르주아의 삶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부장제에 익숙해 있던 어머니는 자신의 집에 들어온 남편의 정부를 수수방관했다. 그 당시 가슴에 맺혔던 남성에 대한 거부감은 작가의 일생을 지배하는 그늘로 남았다. 소르본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부르주아는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국 프랑스를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판화와 조각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60년이 넘는 작품활동 기간 중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의 성기, 신체의 이미지에 집착했다.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된 남성 성기는 분명 아버지와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상징하고 있었다. 90년대 이후로는 거대한 규모의 청동거미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 개관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9m 높이의 거미 조각을 개관기념전에 전시했다
작가의 이 같은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면 ‘헝겊조각’으로의 변화는 대단히 극적이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바늘은 훼손된 것을 치유하는 데 쓰인다. 이는 곧 용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차가운 청동과 대리석 속에서 폭력적인 남성성과 그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해 온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용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손에 익어온 바느질이었다. 듬성듬성한 손바느질 자국 사이로 실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에서는 과거의 부르주아가 보여주던 그로테스크한 경향의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손때 묻은 천의 느낌은 따스하고 푸근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14점의 조각 중 가장 눈길 끄는 것은 여러 가지 표정의 두상들이다. 타월로 만든 두상들은 웃는 듯 찡그리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절규하는 세 개의 붉은 머리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밀실 XIV’에서는 3년 전부터 우울증 때문에 브루클린의 스튜디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작가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국제갤러리의 박유진 큐레이터는 “두상의 얼굴 표정은 곧 작가의 심리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1층 전시장 한구석에 있는 ‘모자상’은 서늘한 충격을 준다. 팔다리가 하나씩밖에 없는 어머니는 나무로 된 의족을 단 채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 만으로도 힘겨운지 어린아이에게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작은 아이는 어머니의 성한 다리를 꼭 잡은 채 무언가를 애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로 대표되는 자애로운 모자상의 느낌은 전혀 없다. 처참한 상처를 받은 여성은 이미 모성을 상실해 버린 것일까. 부르주아가 일생 동안 두려워했던 고독과 상실감이 거기 머물러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또 다른 최근작 ‘부부’는 극적인 대반전을 보여준다. 마치 한 몸처럼 꼭 끌어안고 있는 부부. 얼른 보아서는 누가 남자인지 누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다. 그 깊고 영원한 포옹 속에서 따스한 가족을 향한 작가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로소 삶과 화해를 나누고 있었다(6월30일까지. 문의: 02-735-8449).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중인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얼핏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거칠게 말하자면 ‘헌 소파나 수건 조각으로 만든 인형’이랄까?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타월 소파 커튼 등 집에서 사용하던 낡은 천(Fabric) 소재를 손바느질로 이어 만든 것들이다. 작품의 재료는 모두 루이즈 부르주아가 집에서 직접 쓰던 물건들이다. 이제 91세인 작가는 곧 자신의 유품이 될 물건들을 하나하나 작품으로 만들면서 세상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2000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인 ‘루이즈 부르주아: 기억의 공간’이 열리면서 비로소 알려졌지만 부르주아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조각가로 첫손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가졌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전시를 연 최초의 생존 작가다. 지난 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처럼 화려한 경력보다는 그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파리 태생인 부르주아의 집은 태피스트리를 복원하는 일을 가업으로 삼고 있었다. 집안의 영향으로 부르주아는 어릴 때부터 바느질에 익숙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여자들은 모두 바늘을 사용했다. 나는 항상 바늘이 만들어내는 마법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부르주아 자신의 회고다.
하지만 아버지가 불륜관계의 정부(情婦)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부르주아의 삶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가부장제에 익숙해 있던 어머니는 자신의 집에 들어온 남편의 정부를 수수방관했다. 그 당시 가슴에 맺혔던 남성에 대한 거부감은 작가의 일생을 지배하는 그늘로 남았다. 소르본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부르주아는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국 프랑스를 떠나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판화와 조각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60년이 넘는 작품활동 기간 중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의 성기, 신체의 이미지에 집착했다.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된 남성 성기는 분명 아버지와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상징하고 있었다. 90년대 이후로는 거대한 규모의 청동거미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0년 개관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9m 높이의 거미 조각을 개관기념전에 전시했다
작가의 이 같은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면 ‘헝겊조각’으로의 변화는 대단히 극적이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바늘은 훼손된 것을 치유하는 데 쓰인다. 이는 곧 용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차가운 청동과 대리석 속에서 폭력적인 남성성과 그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해 온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용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부터 손에 익어온 바느질이었다. 듬성듬성한 손바느질 자국 사이로 실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에서는 과거의 부르주아가 보여주던 그로테스크한 경향의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손때 묻은 천의 느낌은 따스하고 푸근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14점의 조각 중 가장 눈길 끄는 것은 여러 가지 표정의 두상들이다. 타월로 만든 두상들은 웃는 듯 찡그리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절규하는 세 개의 붉은 머리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밀실 XIV’에서는 3년 전부터 우울증 때문에 브루클린의 스튜디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작가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국제갤러리의 박유진 큐레이터는 “두상의 얼굴 표정은 곧 작가의 심리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1층 전시장 한구석에 있는 ‘모자상’은 서늘한 충격을 준다. 팔다리가 하나씩밖에 없는 어머니는 나무로 된 의족을 단 채 목발에 의지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 만으로도 힘겨운지 어린아이에게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작은 아이는 어머니의 성한 다리를 꼭 잡은 채 무언가를 애원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로 대표되는 자애로운 모자상의 느낌은 전혀 없다. 처참한 상처를 받은 여성은 이미 모성을 상실해 버린 것일까. 부르주아가 일생 동안 두려워했던 고독과 상실감이 거기 머물러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또 다른 최근작 ‘부부’는 극적인 대반전을 보여준다. 마치 한 몸처럼 꼭 끌어안고 있는 부부. 얼른 보아서는 누가 남자인지 누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다. 그 깊고 영원한 포옹 속에서 따스한 가족을 향한 작가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로소 삶과 화해를 나누고 있었다(6월30일까지. 문의: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