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1일, 미국 언론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 직전 출연을 취소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유는 감기. 파바로티를 보기 위해 최고 1875달러(약 23만원)에 달하는 공연 티켓을 산 4000여명의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뉴욕포스트’를 비롯한 뉴욕 언론들 역시 ‘뚱뚱보가 노래하지 않겠단다’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파바로티는 ‘토스카’에 이어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도 취소했다.
몸이 곧 악기인 성악가가 공연을 취소하는 일은 비일비재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파바로티가 ‘토스카’ 출연을 포기한 것이 이토록 맹렬하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뉴욕 언론이 퍼부은 비난의 이면에는 이번 공연이 파바로티가 출연한 오페라를 볼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실망감이 깔려 있다. 올해 67세인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일간지인 ‘코레에레 델라 세라’지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비단 파바로티뿐만이 아니다. 지난 90년 이래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화제로 떠올랐던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3테너’는 일제히 하강세를 맞고 있는 분위기다. 파바로티와 카레라스는 간간이 오페라 무대에 서고 있지만 본격적인 성악 연주보다는 자선음악회에 주력한다. 셋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5년 안에 오페라 무대에서 물러나겠다고 최근 공언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나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의 성대는 50대 후반부터 늘어지면서 제 소리를 잃는다. 성악가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이비인후과 의사 조너선 아이리시 교수(토론토대학)는 “성대가 늘어지면 특히 고음을 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소리 자체의 힘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성악가는 60세 전후에 은퇴한다. 세 사람 중에는 파바로티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나머지 두 사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60세를 넘고 있다.
라이벌 의식 때문에 좀처럼 한 무대에 서지 않던 세 명의 테너를 묶어준 것은 축구였다. 각기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라는 전통의 축구강국 출신인 세 테너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 카라칼라 욕장의 유적에서 최초로 합동 콘서트를 열었다. 세 테너가 번갈아가며 무대에 등장해 오페라 아리아와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 애창곡들을 부른 카라칼라 욕장의 콘서트는 6500명의 관중과 1000만명의 시청자를 열광시켰다.
일회성이었던 월드컵 3테너 콘서트는 94년 미국 월드컵 콘서트가 5만 6000명의 관중과 13억명의 시청자, 실황음반 판매 1000만장을 돌파하자 98년 프랑스 월드컵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6월27일 일본 요코하마 축구경기장에서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월드컵 기념 3테너 콘서트’가 열린다. 다음 월드컵이 열리는 2006년에는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각기 71세, 66세, 60세가 되므로 다섯 번째 콘서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3테너의 뒤를 이을 만한 ‘떠오르는 별’에는 누가 있을까. 일단 6월12일 한국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인 알라냐는 자로 잰 듯 정교한 표현력과 부드러운 미성으로 ‘제4의 테너’로 불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부르다 발탁되었다는 드라마 같은 성공 스토리와 아내이자 정상급 소프라노인 안젤라 게오르규가 주는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호세 쿠라도 알라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목으로 손꼽힌다. 쿠라의 특징은 3테너가 소화해내지 못했던 ‘무거운’ 배역에 능하다는 점. 그는 ‘오셀로’ ‘일 트로바토레’ ‘운명의 힘’ 등 드라마틱 테너를 필요로 하는 오페라에서 장기를 발휘한다. 오페라 칼럼니스트 박종호씨는 쿠라에 대해 ‘풍부한 성량이 60년대 오페라 무대를 풍미하던 마리오 델 모나코를 연상케 하는 테너’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3테너에 비하면 아직은 소화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적다는 것이 단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파바로티를 대신해 ‘토스카’를 부른 이탈리아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에 대해서는 당분간 평가가 유보돼야 할 듯싶다. 아직 제대로 된 음반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리치트라에 대해 ‘유연한 음성과 자신감에 찬 매너의 소유자’라는 찬사를 퍼부었다. 그의 소속사인 소니는 발 빠르게 리치트라의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밖에 라몬 베르가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주세페 사바티니, 닐 쉬코프 등이 차세대 테너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은 아무래도 알라냐와 쿠라 정도의 스타성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라냐와 쿠라까지도 3테너가 보여주었던 탁월한 음악성과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겸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는 “3테너는 성악가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갖고 있는 실로 예외적인 존재들”이라면서 “최근 기교적으로 잘 다듬어진 테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3테너를 대신할 만한 재목들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재준씨는 “3테너의 공연이 열리기 전까지는 상업성이 판치는 콘서트라는 식의 부정적 평가가 많았지만 일단 콘서트가 열리면 이들이 보여주는 막강한 실력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곤 했다”며 이번 요코하마 콘서트 역시 어떤 무대가 될지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3테너가 일본 무대에서 멋진 황혼의 낙조를 보여주며 마지막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할지 궁금해진다.
몸이 곧 악기인 성악가가 공연을 취소하는 일은 비일비재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파바로티가 ‘토스카’ 출연을 포기한 것이 이토록 맹렬하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뉴욕 언론이 퍼부은 비난의 이면에는 이번 공연이 파바로티가 출연한 오페라를 볼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실망감이 깔려 있다. 올해 67세인 파바로티는 이탈리아 일간지인 ‘코레에레 델라 세라’지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비단 파바로티뿐만이 아니다. 지난 90년 이래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화제로 떠올랐던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3테너’는 일제히 하강세를 맞고 있는 분위기다. 파바로티와 카레라스는 간간이 오페라 무대에 서고 있지만 본격적인 성악 연주보다는 자선음악회에 주력한다. 셋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5년 안에 오페라 무대에서 물러나겠다고 최근 공언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나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의 성대는 50대 후반부터 늘어지면서 제 소리를 잃는다. 성악가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이비인후과 의사 조너선 아이리시 교수(토론토대학)는 “성대가 늘어지면 특히 고음을 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소리 자체의 힘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성악가는 60세 전후에 은퇴한다. 세 사람 중에는 파바로티가 가장 나이가 많지만 나머지 두 사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60세를 넘고 있다.
라이벌 의식 때문에 좀처럼 한 무대에 서지 않던 세 명의 테너를 묶어준 것은 축구였다. 각기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라는 전통의 축구강국 출신인 세 테너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 카라칼라 욕장의 유적에서 최초로 합동 콘서트를 열었다. 세 테너가 번갈아가며 무대에 등장해 오페라 아리아와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 애창곡들을 부른 카라칼라 욕장의 콘서트는 6500명의 관중과 1000만명의 시청자를 열광시켰다.
일회성이었던 월드컵 3테너 콘서트는 94년 미국 월드컵 콘서트가 5만 6000명의 관중과 13억명의 시청자, 실황음반 판매 1000만장을 돌파하자 98년 프랑스 월드컵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6월27일 일본 요코하마 축구경기장에서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월드컵 기념 3테너 콘서트’가 열린다. 다음 월드컵이 열리는 2006년에는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가 각기 71세, 66세, 60세가 되므로 다섯 번째 콘서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3테너의 뒤를 이을 만한 ‘떠오르는 별’에는 누가 있을까. 일단 6월12일 한국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를 들 수 있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인 알라냐는 자로 잰 듯 정교한 표현력과 부드러운 미성으로 ‘제4의 테너’로 불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부르다 발탁되었다는 드라마 같은 성공 스토리와 아내이자 정상급 소프라노인 안젤라 게오르규가 주는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호세 쿠라도 알라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목으로 손꼽힌다. 쿠라의 특징은 3테너가 소화해내지 못했던 ‘무거운’ 배역에 능하다는 점. 그는 ‘오셀로’ ‘일 트로바토레’ ‘운명의 힘’ 등 드라마틱 테너를 필요로 하는 오페라에서 장기를 발휘한다. 오페라 칼럼니스트 박종호씨는 쿠라에 대해 ‘풍부한 성량이 60년대 오페라 무대를 풍미하던 마리오 델 모나코를 연상케 하는 테너’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3테너에 비하면 아직은 소화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적다는 것이 단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파바로티를 대신해 ‘토스카’를 부른 이탈리아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에 대해서는 당분간 평가가 유보돼야 할 듯싶다. 아직 제대로 된 음반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리치트라에 대해 ‘유연한 음성과 자신감에 찬 매너의 소유자’라는 찬사를 퍼부었다. 그의 소속사인 소니는 발 빠르게 리치트라의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밖에 라몬 베르가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주세페 사바티니, 닐 쉬코프 등이 차세대 테너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은 아무래도 알라냐와 쿠라 정도의 스타성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알라냐와 쿠라까지도 3테너가 보여주었던 탁월한 음악성과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겸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형종씨는 “3테너는 성악가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갖고 있는 실로 예외적인 존재들”이라면서 “최근 기교적으로 잘 다듬어진 테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3테너를 대신할 만한 재목들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재준씨는 “3테너의 공연이 열리기 전까지는 상업성이 판치는 콘서트라는 식의 부정적 평가가 많았지만 일단 콘서트가 열리면 이들이 보여주는 막강한 실력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곤 했다”며 이번 요코하마 콘서트 역시 어떤 무대가 될지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3테너가 일본 무대에서 멋진 황혼의 낙조를 보여주며 마지막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