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뒤(4월13∼15일) 열린 제15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전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7명의 ‘후지쓰 원정대’ 중 4명이 8강에 진출한 반면 주최국 일본은 2명, 중국은 1명만이 간신히 턱걸이했다. 이 가운데 왕리청(王立誠) 9단과 유창혁 9단의 대결은 한·일 간 현 바둑판도를 그대로 드러낸 한판이었다.
대만 출신 왕 9단은 일본 랭킹 1위 기성(棋聖) 타이틀을 보유한 최강자다. 유 9단과는 98년 LG배 결승에서 만나 3대 2로 이기며 세계대회에서 처녀우승한 바 있다. 그때의 기세를 타고 일본 바둑 지존으로 군림하던 조치훈 9단을 꺾으며 단숨에 일본 바둑의 일인자로 떠올랐으나 지금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한국의 빅3(이창호-조훈현-유창혁)에겐 잽이 되지 않는다.
초반 우하귀에서 일찌감치 점수를 잃은 왕 9단은 흑1로 우중앙을 크게 경영하려 했으나 백2가 절묘한 감각이다. 이에 흑1은 백도 2로 좌중앙을 건설해 밑질 것이 없다. 결국 왕 9단은 흑3 이하로 작전 변경을 했으나 이것은 누가 봐도 백12까지 돌파당한 흑진의 손실이 더 커보인다. 게다가 백14로 하변마저 지키고 있으니…. 흑의 완패. 176수 끝, 백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