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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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으로 금메달 딴다

특정 근육만 키운 ‘맞춤선수’ 얼마든지 가능 … ‘약물’과 달라 사실상 적발 불가능

  • < 이 식/ 과학칼럼니스트·이학박사 > honeysik@yahoo.com

    입력2004-10-1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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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 조작으로 금메달 딴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진 미국의 텃세와 심판들의 편파 판정이 구설수에 올랐다. 승부보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는 아마추어 정신은 올림픽 무대에서 이미 실종된 지 오래인 듯싶다. 그만큼 선수와 관중이 승리의 금메달을 열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승리에 대한 열망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금메달을 차지하려는 몸부림으로 이어진다. 이미 과학은 스포츠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 때마다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은 새로운 장비와 유니폼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과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약물로 선수의 능력을 조절하는 데 있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남자 100m 육상에서 1위로 골인한 벤 존슨이 도핑테스트에서 실격, 칼 루이스가 금메달을 거머쥐던 장면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쥐’ 이미 성공

    그렇다면 운동 선수들은 약물의 유혹에 왜 이렇게 약한 것일까. 올림픽과 같은 큰 경기에서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메달 획득은 선수와 코치에게 평생의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지만 승패는 불과 0.01초 같은 간발의 차로 결정된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은 몇 년, 길게는 10여년에 걸쳐 힘든 웨이트 트레이닝을 견뎌야 한다. 약물은 이 웨이트 트레이닝의 효과를 단시간에 얻게 해준다.

    도핑테스트는 모든 약물을 다 찾아내는 ‘마이다스의 손’은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약물, 그리고 점점 더 지능화되는 약물 복용과 싸우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싸움이 더욱더 힘들어질 것 같다. 바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킨 운동 선수(GM 운동 선수)들이 등장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금메달 딴다
    운동 선수들의 유전자 조작 가능성을 몇 가지 가정해 보자. 선수의 몸에 근육섬유를 생성하는 유전자를 국소적으로 삽입하면 특정한 근육만 키울 수 있다. 이 같은 유전자 조작법으로 고통스런 웨이트 트레이닝 없이 1개월 안에 60%의 근육섬유를 늘릴 수 있다. 하버드 대학 연구진은 유전자 조작실험을 통해 ‘아널드 슈워제네거 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면 경기중 근육 구석구석으로 많은 양의 혈액과 산소가 공급되어야 한다. 혈액과 산소 공급에 도움이 되는 약물을 미리 복용하면 크게 도움이 되지만 이는 바로 도핑테스트에 적발된다. 그렇다면 아예 생체에서 동일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물질을 합성하면 어떨까? 특별한 유전자를 선수의 몸에 삽입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 경우 유전자가 삽입된 부위는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합성하는 공장으로 바뀐다.

    예를 들어 조혈촉진 인자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삽입하면 적혈구의 생산이 늘어, 결과적으로 경기중 근육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이 늘어난다. 의학자들은 혈관이 계속 수축해 결국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병인 아테로마성 동맥경화증을 치료하기 위해 혈관성장 인자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을 분리해냈다. 이 유전자를 선수들에게 사용한다면 혈관이 확장되어 근육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이 늘어날 것이다.

    더구나 유전자 조작은 약물복용과 달리 들킬 가능성도 거의 없다. 원래부터 인체에 존재하는 유전물질인 DNA로 이루어진 유전자를 체내에 집어넣기 때문에 실제로 유전자 조작이 일어난다 해도 이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굳이 유전자 조작 여부를 검출하려 한다면 유전자가 삽입된 부위의 살아 있는 조직을 직접 검사해야만 한다. GM 운동 선수를 찾아내기 위해 육상 선수의 다리를 째고 근육섬유를 채취할 수 있을까?

    유전자 조작의 일차적 대상은 시급한 불치병 환자보다 운동 선수들이 될지도 모른다. 두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케냐의 육상 선수들은 올림픽의 중장거리 종목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이 점은 생명공학 연구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케냐 선수들은 산소섭취 능력-에너지를 태우는 능력-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근소한 우수성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경기력 차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유전적 조작을 조금만 가하면 경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지난해 말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스포츠에서의 유전자’ 학회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다시금 환기시켜 주었다. 학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일관된 목소리로 스포츠 분야에서 유전학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중국은 불법적인 약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국가다)의 국내대회에서 10대 초반 선수들이 쏟아내고 있는 엄청난 기록을 예로 들면서, 이미 유전자 조작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기록들이 21세기에는 유전공학의 도움으로 달성될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전문가들은 이르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유전자 조작 선수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유전자조작을 거친 선수 수십명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참여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전문가들 역시 유전자 조작 운동 선수들을 색출하는 작업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수만 가지에 이르는 약물이 사용되고 있지만 도핑테스트를 통해 약물 복용이 발각되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물며 유전자 조작의 경우는 그 색출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닌 동물에 대해서는 윤리적 거부감 없이 유전자 조작이 더 쉽게 행해질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에서 활약중인 경주마 50만 마리의 조상은 18세기 중엽에 살았던 네 마리의 종마다. 지금 경마장에서 보이는 말들은 기록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250년간 선택적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말들이다.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작업이 단 몇 년 안에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답은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이왕 상상하는 김에 한발 더 나아가 보자. 경기력 향상에 유리한 유전자만을 조합한 운동 선수를 ‘생산’해 내는 것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배아상태에서부터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각 종목별 운동 선수를 만들면 된다. 이러한 유전자 조작에는 막대한 비용과 첨단 생명공학 및 의료기술이 요구된다. 21세기의 올림픽에서는 각국의 생물공학 발달 수준에 따라 메달의 색깔과 숫자가 달라질까? 으스스한 상상이지만 올림픽은 운동경기가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의 눈부신 경연장으로 변모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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