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좀 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 “어떻게 공부하셨나요?”다. 그러면 나름대로 영어의 산을 정복한 방법을 알려준다. “영어사전을 한 장 한 장 씹어 먹었다”는 식의 전설적인 이야기부터 “외국인을 보면 무조건 붙잡고 되든 안 되든 영어로 지껄이라”는 충고까지 영어 정복법은 100인 100색이다. 2년 전 정찬용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이하 영절하)가 영어학습서 시장에 돌풍을 몰고 온 후, 개인의 체험담을 토대로 한 영어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이재룡 할아버지 297시간 만에 귀를 뚫다’다. 매일 10분, 20분씩 영어뉴스를 듣는 것만으로도 귀를 뚫는 데 성공했다는 학습체험담으로, 듣기를 강조한 정찬용씨의 ‘영절하’와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E-쇼크’의 저자 김영수씨는 “영어학습법을 말하면서 개인의 경험을 지나치게 앞세운 것은 피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그런 책은 대부분 영어에 미친 사람들의 무용담일 경우가 많다. 여러분이 영어에 미치지 않고 오히려 영어 때문에 미치겠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고 이재룡 할아버지의 공부법이 엉터리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방식은 문법 중심으로 배웠기 때문에 듣기훈련이 부족한 기성세대에게 좋은 학습법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 입에 맞는 음식이 다르듯, 영어학습법도 맞는 게 따로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는지에 달렸다.
발음을 잡아라
‘주간동아’ 312호(2001년 12월6일자)는 ‘영어가 아이 잡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영어발음 때문에 혀 늘리기 수술(설소대 성형술)을 하는, 도를 넘어선 영어교육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인의 영어발음 콤플렉스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발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발성훈련법’이다. 대표적인 발성훈련 전도사가 ‘영어 한풀이’ ‘영어의 모가지를 비틀어라! 소리치면 들린다’의 저자 정인석씨다.
“영어식 호흡, 즉 영어의 소리를 몸으로 받아들이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여 영어를 듣고 말하도록 조절한다. 영어는 머리로 암기해 얻는 지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발성법과 유·무성음 변환은 그동안 영어학습에서 지나쳤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씨에 따르면 우리말은 목이나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는 소리지만 영어는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온 소리가 입천장에 부딪혀 나오는 굴절음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 자체를 굴절음에 맞게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호흡법이 자리잡으면 단어 하나하나를 영어식 발음으로 교정한다. 예를 들어 Milk를 영어식으로 제대로 발음하면 ‘므-이일-ㅋ’가 된다. 한국식으로 ‘왓츠 유얼 네임?(What’s your name?)’으로 표기되는 것도 제대로 들어보면 ‘우왓츠 이우어얼 느에이임?’이다.
실제로 이런 발성훈련을 통해 그동안 뭉개져 들리지 않던 영어뉴스나 스크린영어가 들리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아랫배에서 호흡을 끌어올리며 ‘하하하, 허허허’ 하는 식으로 6개월의 발성훈련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다. 게다가 아무리 문장이 들린다 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이 학습법으로 어휘 수준을 높이거나 문장 이해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영어로 입을 열긴 열었는데 발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스크린영어 수준의 빠른 대화를 알아듣는 데 한계를 느끼는 사람에게 적합한 학습법이다.
비슷한 유형의 소리학습법으로 중국에서 건너온 리양의 ‘미친 영어’(크레이지 잉글리시)를 들 수 있다. 리양 역시 “영어를 잘하려면 입과 혀의 근육을 영어 사용에 적합한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씨의 이론을 지지했다. 리양은 4개월 만에 영어를 정복한 자신의 학습법을 ‘크레이지 잉글리시’라고 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 학습법의 핵심은 미친 듯이 크게 외치는 것. 영어문장을 큰 소리로 빠르게 반복해서 읽다 보면(영어식 제스처까지 섞어) 자연스럽게 영어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이 학습법은 동양인이 영어를 배울 때 걸림돌인 ‘수줍음’ ‘체면’ 등 심리적 요인까지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보다 몇 년 앞서 영어를 배우는 데 발음과 리듬을 강조한 것이 헨리 홍의 ‘영어발음 구구단’이다. 그는 LA의 한국 교민들이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가 안 되는 이유를 ‘발음’ 탓이라고 설명했다. ‘Bus’를 헨리 홍식으로 한글표기 하면 ‘브아스’가 된다. 그런 것을 한국식으로 ‘뻐스 뻐스’ 하니까 미국인들은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홍씨는 R로 시작하는 발음을 할 때는 먼저 ‘우’ 발음을 하라(로버트가 아니라 우라벗이고, 이것을 빨리 발음해서 롸벗이 된다) 식의 독특한 공식을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기적의 학습법을 좇던 사람들은 아무리 Milk를 미국인처럼 발음한다 해도 영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문장을 통째로 외울까. 임삼진·김운형씨의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3가지 처방전’을 보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문장을 통째로 외우라고 조언한다(절대 단어 하나씩 끊어 생각하지 말고 물 흐르듯 문장 전체를 외운다). 더욱 좋은 방법은 테이프로 듣고 따라하는 것이다. 우리말 해설이 없는 테이프라면 10분이면 간단한 문장 25개가 넘는 분량이고, 단어 수도 500여개 가까이 된다. 매일 10분씩 같은 문장을 30~40번 듣고 외우면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된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통암기식 영어학습 순서를 제안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비기너용’ ‘영어는 통암기가 최고다2’, 어휘책 ‘영어실력 7배 기르기’ 및 영문법책, ‘영어는 통암기가 최고다1’ ‘꼭 외워야 할 영어 명문 베스트29’.
최근 각 서점마다 외국어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샘 박의 ‘50 English’도 결국 문장 암기식 영어 터득법이다. 즉 영어는 일차적으로 습관이며, 습관을 만들기 위해 먼저 암기하라는 설명이다. “50문장만 죽어라고 외워라”는 메시지는 단순 명쾌하면서,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수상쩍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점이 샘 박의 성공비결이다.
그러나 암기에도 요령이 있다. 샘 박은 50개의 문장을 0~49까지 번호를 매기고 순서대로 외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을 위해 각각 10개씩 번호가 매겨진 5장의 그림 카드를 제시하고 그림과 문장을 연관시켜 외운다.
그냥 문장을 외우는 것과 그림주소를 가지고 외우는 것은 머릿속에서 다시 문장을 꺼내 쓸 때 차이가 있다. 이렇게 50문장을 암기한 뒤 거꾸로 통역연습을 한다. 다음 단계는 기본 50문장을 응용한 150문장 익히기. 샘 박의 DACE(Divide and Conquer) 학습법은 독특한 암기방법을 제시해 요즘 영어학습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박기혁씨는 ‘소리파일’에서 색다른 방식의 암기법을 제시했다. 외우기는 하되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 편하게 외울 수 있다는 것인데, 소리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함께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덩어리째 저장된 소리파일을 쓰고 싶을 때 언제라도 열어서 쓸 수 있다면 영어에 능숙해졌다는 의미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E-쇼크’의 저자 김영수씨는 자신의 직업을 ‘영어요리사’라고 소개한다. 영어에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많은 영어요리사(전문가)와 요리(교재)가 나왔는데도 손님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김영수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저 배가 고프다는데 자꾸 요리법만 알려주는 요리사들이 있다. 교재로 치면 영어를 이렇게 쓰면 틀리고 저렇게 말하면 콩글리시고, 이런 표현은 실례고, 저런 표현은 어색하다고 죽 늘어놓아 그것을 읽고 나면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드는 책들이다. 다음은 표현중심으로 공부해라, 직독직해가 좋다, 무조건 외워라 등등 비법만 잔뜩 늘어놓는다. 요리법만 알려주고 요리는 안 주는 요리사도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재료만 쌓아놓고 알아서 해먹으라고 한다. 문법 따로, 숙어 따로, 독해 따로, 듣기 따로, 영작 따로, 회화 따로 엄청난 교재가 쌓이지만 영양가가 없다.
더 나쁜 것은 설익은 요리를 가져다 주는 경우다. 전화영어, 여행영어, 비즈니스영어 등 테이프 딸린 회화교재들 중에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도 없는 어설픈 표현들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음식은 나왔는데 숟가락이 없는 경우. CNN 뉴스나 스크린영어 교재들은 영어의 소리, 문자, 의미, 상황까지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 양이 너무 많아 수박 겉핥기 식이 된다.
왕도를 좇던 영어학습법은 다시 정도로 돌아오고 있다. ‘잉글리시 익스프레션 딕셔너리’ ‘워드 스마트’ 등 지난해 히트작을 펴낸 넥서스 김민기 주간은 “자극적인 제목보다 정직한 제목의 책들이 늘고 있고, 어설픈 비법보다 기초를 중시하는 책들이 다시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조은의 ‘기본구문 테이프로 영어듣기’나 ‘영어공부 제대로 하자’의 저자 이정훈씨가 워크북 형태로 만든 ‘이제는 프레젠테이션이다’ ‘영어공부, 영어로 가르친다’ 등이 정직한 제목으로 승부한 사례다.
김민기 주간은 “영어학습서 시장은 토플, 토익 등 시험영어 시장을 포함해 3000억원 가량 된다. 사람들은 이제 영어학습에 비법이 있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필요성에서 보면 마땅한 교재를 찾기 어렵다. 최근 몇 년간 토종 학습서들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체계적인 훈련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다시 외국 학습서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교적 체계적인 훈련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이정훈씨의 ‘소리클럽’ 시리즈와 김영수씨의 ‘E-쇼크’ 시리즈다. 이씨는 영어를 크게 표현영어, 수용영어, 소리영어, 문자영어로 나눈다. 표현영어는 말 그대로 자기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영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말하며 수용영어는 남의 글과 말을 이해하는 영어로 읽기와 듣기다. 소리영어는 말소리로 진행되는 모든 영어를, 문자영어는 글로 씌어지거나 진행되는 영어를 말한다.
이씨가 ‘표현영어’와 ‘소리영어’ 학습법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런던 유학시절 “리스닝이 되면 스피킹은 저절로 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영어방송도 웬만큼 들리는데 입은 여전히 붙은 채였다. 노래를 듣는 것과 부르는 것만큼 리스닝과 스피킹은 별개였던 것. 그래서 그가 제안한 학습법은 ‘말하기 중심’이다. 먼저 ‘액센트 잉글리시 시리즈’(총5권)를 통해 필수문장 860개를 암기한다. 이 시리즈는 책 1권당 2개의 테이프를 가지고 한 달 동안 학습하는 것으로 860문장을 완전 암기하는 데 5개월을 잡는다. 다음 단계 ‘프레젠테이션 영어’는 발표자가 되어 자신을 소개하고 주제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씨는 프레젠테이션이야말로 종합적인 영어교육이라고 말한다.
김영수씨의 ‘E-쇼크’(총6권)는 각 권마다 2개월씩 1년을 공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언뜻 보면 테이프가 들려주는 영어문장을 들으면서 빈칸을 채워넣는 듣기용 워크북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를 함께 훈련할 수 있다. 문장에서 강하게 소리나는 부분(Strong Sound)과 약한 부분(Weak Sound)을 빈칸 채우기로 확인하고,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하나로 묶어 파도타기 하듯 연습한다. 다시 테이프를 들으며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면서 암기하는 것(Shadowing), 마지막으로 텍스트만 보면서 직독직해 훈련을 한다. 여기까지가 1단계고 2단계는 완전히 익힐 때까지 반복, 3단계는 받아쓰기, 4단계는 한글문장만 보면서 영어문장을 완성하는 쓰기 훈련이다.
이처럼 최근 개발된 교재들은 저자가 학습자에게 숟가락을 쥐어줄 뿐만 아니라 아예 음식을 입에 떠서 넣어줄 정도로 친절하다. 그러나 새로운 학습법이 등장했다고 기존 학습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한 해 베스트셀러는 신재용의 ‘잉글리시 익스프레션 딕셔너리’다. 이 책은 영어회화를 상황별(인사, 먹고 마시기, 입고 꾸미기, 일상생활 등)로 묶어놓아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 말을 찾을 때 활용하는 일종의 사전이다. 또 지난해 영어학습서 시장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김대균의 ‘토익 답이 보인다’였다. 이 책은 토익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문제유형을 분석해 점수 올리기 비법을 가르쳐준다. 학원가에서 손꼽히는 토익강사 김대균씨가 자신의 강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것으로 입시, 취직, 승진시험 등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어쨌든 ‘영절하’ 이후 영어학습서 시장에서 절대 강자란 없다. 한 권의 책이 독식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훨씬 다양한 학습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중에서 한 가지만 골라라. 영어도사들이 강조하는 점은 일단 한 번 선택하면 끝까지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영어, 한방에 터지는 비법은 절대 없다.
그러나 ‘E-쇼크’의 저자 김영수씨는 “영어학습법을 말하면서 개인의 경험을 지나치게 앞세운 것은 피하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그런 책은 대부분 영어에 미친 사람들의 무용담일 경우가 많다. 여러분이 영어에 미치지 않고 오히려 영어 때문에 미치겠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고 이재룡 할아버지의 공부법이 엉터리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방식은 문법 중심으로 배웠기 때문에 듣기훈련이 부족한 기성세대에게 좋은 학습법이다. 다만 사람에 따라 입에 맞는 음식이 다르듯, 영어학습법도 맞는 게 따로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는지에 달렸다.
발음을 잡아라
‘주간동아’ 312호(2001년 12월6일자)는 ‘영어가 아이 잡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영어발음 때문에 혀 늘리기 수술(설소대 성형술)을 하는, 도를 넘어선 영어교육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인의 영어발음 콤플렉스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발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발성훈련법’이다. 대표적인 발성훈련 전도사가 ‘영어 한풀이’ ‘영어의 모가지를 비틀어라! 소리치면 들린다’의 저자 정인석씨다.
“영어식 호흡, 즉 영어의 소리를 몸으로 받아들이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여 영어를 듣고 말하도록 조절한다. 영어는 머리로 암기해 얻는 지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발성법과 유·무성음 변환은 그동안 영어학습에서 지나쳤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씨에 따르면 우리말은 목이나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는 소리지만 영어는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온 소리가 입천장에 부딪혀 나오는 굴절음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 자체를 굴절음에 맞게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호흡법이 자리잡으면 단어 하나하나를 영어식 발음으로 교정한다. 예를 들어 Milk를 영어식으로 제대로 발음하면 ‘므-이일-ㅋ’가 된다. 한국식으로 ‘왓츠 유얼 네임?(What’s your name?)’으로 표기되는 것도 제대로 들어보면 ‘우왓츠 이우어얼 느에이임?’이다.
실제로 이런 발성훈련을 통해 그동안 뭉개져 들리지 않던 영어뉴스나 스크린영어가 들리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아랫배에서 호흡을 끌어올리며 ‘하하하, 허허허’ 하는 식으로 6개월의 발성훈련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다. 게다가 아무리 문장이 들린다 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이 학습법으로 어휘 수준을 높이거나 문장 이해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영어로 입을 열긴 열었는데 발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 스크린영어 수준의 빠른 대화를 알아듣는 데 한계를 느끼는 사람에게 적합한 학습법이다.
비슷한 유형의 소리학습법으로 중국에서 건너온 리양의 ‘미친 영어’(크레이지 잉글리시)를 들 수 있다. 리양 역시 “영어를 잘하려면 입과 혀의 근육을 영어 사용에 적합한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씨의 이론을 지지했다. 리양은 4개월 만에 영어를 정복한 자신의 학습법을 ‘크레이지 잉글리시’라고 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이 학습법의 핵심은 미친 듯이 크게 외치는 것. 영어문장을 큰 소리로 빠르게 반복해서 읽다 보면(영어식 제스처까지 섞어) 자연스럽게 영어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이 학습법은 동양인이 영어를 배울 때 걸림돌인 ‘수줍음’ ‘체면’ 등 심리적 요인까지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보다 몇 년 앞서 영어를 배우는 데 발음과 리듬을 강조한 것이 헨리 홍의 ‘영어발음 구구단’이다. 그는 LA의 한국 교민들이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가 안 되는 이유를 ‘발음’ 탓이라고 설명했다. ‘Bus’를 헨리 홍식으로 한글표기 하면 ‘브아스’가 된다. 그런 것을 한국식으로 ‘뻐스 뻐스’ 하니까 미국인들은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홍씨는 R로 시작하는 발음을 할 때는 먼저 ‘우’ 발음을 하라(로버트가 아니라 우라벗이고, 이것을 빨리 발음해서 롸벗이 된다) 식의 독특한 공식을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기적의 학습법을 좇던 사람들은 아무리 Milk를 미국인처럼 발음한다 해도 영어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문장을 통째로 외울까. 임삼진·김운형씨의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3가지 처방전’을 보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문장을 통째로 외우라고 조언한다(절대 단어 하나씩 끊어 생각하지 말고 물 흐르듯 문장 전체를 외운다). 더욱 좋은 방법은 테이프로 듣고 따라하는 것이다. 우리말 해설이 없는 테이프라면 10분이면 간단한 문장 25개가 넘는 분량이고, 단어 수도 500여개 가까이 된다. 매일 10분씩 같은 문장을 30~40번 듣고 외우면 입에서 줄줄 나오게 된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통암기식 영어학습 순서를 제안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비기너용’ ‘영어는 통암기가 최고다2’, 어휘책 ‘영어실력 7배 기르기’ 및 영문법책, ‘영어는 통암기가 최고다1’ ‘꼭 외워야 할 영어 명문 베스트29’.
최근 각 서점마다 외국어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샘 박의 ‘50 English’도 결국 문장 암기식 영어 터득법이다. 즉 영어는 일차적으로 습관이며, 습관을 만들기 위해 먼저 암기하라는 설명이다. “50문장만 죽어라고 외워라”는 메시지는 단순 명쾌하면서,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수상쩍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점이 샘 박의 성공비결이다.
그러나 암기에도 요령이 있다. 샘 박은 50개의 문장을 0~49까지 번호를 매기고 순서대로 외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을 위해 각각 10개씩 번호가 매겨진 5장의 그림 카드를 제시하고 그림과 문장을 연관시켜 외운다.
그냥 문장을 외우는 것과 그림주소를 가지고 외우는 것은 머릿속에서 다시 문장을 꺼내 쓸 때 차이가 있다. 이렇게 50문장을 암기한 뒤 거꾸로 통역연습을 한다. 다음 단계는 기본 50문장을 응용한 150문장 익히기. 샘 박의 DACE(Divide and Conquer) 학습법은 독특한 암기방법을 제시해 요즘 영어학습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박기혁씨는 ‘소리파일’에서 색다른 방식의 암기법을 제시했다. 외우기는 하되 재미있는 영화를 보듯 편하게 외울 수 있다는 것인데, 소리와 관련한 특정 정보를 함께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덩어리째 저장된 소리파일을 쓰고 싶을 때 언제라도 열어서 쓸 수 있다면 영어에 능숙해졌다는 의미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E-쇼크’의 저자 김영수씨는 자신의 직업을 ‘영어요리사’라고 소개한다. 영어에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주는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많은 영어요리사(전문가)와 요리(교재)가 나왔는데도 손님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김영수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먼저 배가 고프다는데 자꾸 요리법만 알려주는 요리사들이 있다. 교재로 치면 영어를 이렇게 쓰면 틀리고 저렇게 말하면 콩글리시고, 이런 표현은 실례고, 저런 표현은 어색하다고 죽 늘어놓아 그것을 읽고 나면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드는 책들이다. 다음은 표현중심으로 공부해라, 직독직해가 좋다, 무조건 외워라 등등 비법만 잔뜩 늘어놓는다. 요리법만 알려주고 요리는 안 주는 요리사도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재료만 쌓아놓고 알아서 해먹으라고 한다. 문법 따로, 숙어 따로, 독해 따로, 듣기 따로, 영작 따로, 회화 따로 엄청난 교재가 쌓이지만 영양가가 없다.
더 나쁜 것은 설익은 요리를 가져다 주는 경우다. 전화영어, 여행영어, 비즈니스영어 등 테이프 딸린 회화교재들 중에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도 없는 어설픈 표현들이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음식은 나왔는데 숟가락이 없는 경우. CNN 뉴스나 스크린영어 교재들은 영어의 소리, 문자, 의미, 상황까지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 양이 너무 많아 수박 겉핥기 식이 된다.
왕도를 좇던 영어학습법은 다시 정도로 돌아오고 있다. ‘잉글리시 익스프레션 딕셔너리’ ‘워드 스마트’ 등 지난해 히트작을 펴낸 넥서스 김민기 주간은 “자극적인 제목보다 정직한 제목의 책들이 늘고 있고, 어설픈 비법보다 기초를 중시하는 책들이 다시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조은의 ‘기본구문 테이프로 영어듣기’나 ‘영어공부 제대로 하자’의 저자 이정훈씨가 워크북 형태로 만든 ‘이제는 프레젠테이션이다’ ‘영어공부, 영어로 가르친다’ 등이 정직한 제목으로 승부한 사례다.
김민기 주간은 “영어학습서 시장은 토플, 토익 등 시험영어 시장을 포함해 3000억원 가량 된다. 사람들은 이제 영어학습에 비법이 있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필요성에서 보면 마땅한 교재를 찾기 어렵다. 최근 몇 년간 토종 학습서들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체계적인 훈련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다시 외국 학습서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비교적 체계적인 훈련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이정훈씨의 ‘소리클럽’ 시리즈와 김영수씨의 ‘E-쇼크’ 시리즈다. 이씨는 영어를 크게 표현영어, 수용영어, 소리영어, 문자영어로 나눈다. 표현영어는 말 그대로 자기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영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말하며 수용영어는 남의 글과 말을 이해하는 영어로 읽기와 듣기다. 소리영어는 말소리로 진행되는 모든 영어를, 문자영어는 글로 씌어지거나 진행되는 영어를 말한다.
이씨가 ‘표현영어’와 ‘소리영어’ 학습법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런던 유학시절 “리스닝이 되면 스피킹은 저절로 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영어방송도 웬만큼 들리는데 입은 여전히 붙은 채였다. 노래를 듣는 것과 부르는 것만큼 리스닝과 스피킹은 별개였던 것. 그래서 그가 제안한 학습법은 ‘말하기 중심’이다. 먼저 ‘액센트 잉글리시 시리즈’(총5권)를 통해 필수문장 860개를 암기한다. 이 시리즈는 책 1권당 2개의 테이프를 가지고 한 달 동안 학습하는 것으로 860문장을 완전 암기하는 데 5개월을 잡는다. 다음 단계 ‘프레젠테이션 영어’는 발표자가 되어 자신을 소개하고 주제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씨는 프레젠테이션이야말로 종합적인 영어교육이라고 말한다.
김영수씨의 ‘E-쇼크’(총6권)는 각 권마다 2개월씩 1년을 공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언뜻 보면 테이프가 들려주는 영어문장을 들으면서 빈칸을 채워넣는 듣기용 워크북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를 함께 훈련할 수 있다. 문장에서 강하게 소리나는 부분(Strong Sound)과 약한 부분(Weak Sound)을 빈칸 채우기로 확인하고,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하나로 묶어 파도타기 하듯 연습한다. 다시 테이프를 들으며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면서 암기하는 것(Shadowing), 마지막으로 텍스트만 보면서 직독직해 훈련을 한다. 여기까지가 1단계고 2단계는 완전히 익힐 때까지 반복, 3단계는 받아쓰기, 4단계는 한글문장만 보면서 영어문장을 완성하는 쓰기 훈련이다.
이처럼 최근 개발된 교재들은 저자가 학습자에게 숟가락을 쥐어줄 뿐만 아니라 아예 음식을 입에 떠서 넣어줄 정도로 친절하다. 그러나 새로운 학습법이 등장했다고 기존 학습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한 해 베스트셀러는 신재용의 ‘잉글리시 익스프레션 딕셔너리’다. 이 책은 영어회화를 상황별(인사, 먹고 마시기, 입고 꾸미기, 일상생활 등)로 묶어놓아 어떤 상황에서 필요한 말을 찾을 때 활용하는 일종의 사전이다. 또 지난해 영어학습서 시장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김대균의 ‘토익 답이 보인다’였다. 이 책은 토익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문제유형을 분석해 점수 올리기 비법을 가르쳐준다. 학원가에서 손꼽히는 토익강사 김대균씨가 자신의 강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것으로 입시, 취직, 승진시험 등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어쨌든 ‘영절하’ 이후 영어학습서 시장에서 절대 강자란 없다. 한 권의 책이 독식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훨씬 다양한 학습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중에서 한 가지만 골라라. 영어도사들이 강조하는 점은 일단 한 번 선택하면 끝까지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영어, 한방에 터지는 비법은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