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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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에 눌리고 부시에 얻어맞고

이라크 국민 ‘독재와 미 공습’ 불안한 나날 … 세계 여론 반대 속 美 강경파 확전 주장 계속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2-02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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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세인에 눌리고 부시에 얻어맞고
    미국의 ‘이라크 때리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아직은 연기를 피우는 단계지만, 어느 날 아침 지구촌 사람들은 이라크에서 ‘실제 상황’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아프간 탈레반군을 마구 두들기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로선 이라크 공격이야말로 강한 유혹이다. 그 신호탄인 부시독트린은 이미 쏘아올려졌다. 테러와의 연계가 드러나면 ‘손보겠다’는 게 부시독트린의 뼈대다.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계가 드러나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도 희박한 곳이 이라크다. 그런데도 반미 테러를 지원하는 ‘깡패국가’로 낙인찍힌 탓에 아프간 다음으로 손볼 국가로 떠올랐다.

    아프간 전쟁의 성공(아직은 절반의 성공)으로 기세가 오른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 정권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사찰을 받아들여라. 거부할 경우는 각오하라. 이번만큼은 우리의 반응이 다를 것이다.”

    확전 땐 후속 공격대상 0순위

    이라크 확전론은 이제 막 운을 떼는 단계지만, 예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따지고 보면 이라크 공격론은 9·11 테러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미국 내 강경파들이 끊임없이 펼쳐온 주장이다. 9·11 테러사태는 이라크 공격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 같은 강경파들은 “(이번 기회에)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없다”며 확전의 불을 지펴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걸쳐 아프간 공격은 반(反)테러 전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월 말 부시는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기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다음 공격목표가 될 수 있다”고 경고, 결과적으로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라크 정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우리는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무기사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바로 다음날 미 전투기들이 이라크 남부의 방공지휘통제센터를 공습했다. 이를 두고 군사평론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찾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공습시점이 부시의 경고가 나온 지 하루 만이란 점에 비추어 전부터 가끔 있어온 1회적 공습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 미 전투기들의 이라크 공습은 지난 10월23일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 내 온건파들은 이라크 확전론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 그는 최근 CNN과의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예단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파월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어렵게 형성한 국제연대를 깨고 아랍국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견해를 비쳤다. 이라크가 9·11 테러에 관련돼 있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공격할 경우 미국에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란 입장이다.

    미 행정부 내 매파들은 9·11 테러범 가운데 한 명인 모하메드 아타와 이라크 정보기관의 관련설을 내세운다. 납치한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에 부딪쳤던 아타가 이라크 정보기관원과 만난 적이 있다는 첩보에 바탕해서다. 이라크가 테러의 배후란 확증은 아직 없다. 그런데도 미 강경파들은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테러 지원국의 하나로 이라크를 꼽아왔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화나 협상보다 군사적 행동을 선호하는 게 매파(강경파)의 오랜 전통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 내 매파가 주로 펜타곤(국방부) 안에 포진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 정점엔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자리잡고 있고,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차관과 피터 로드먼, 제이 크라우치 차관보 등 쟁쟁한 면모들이 월포위츠의 뒤를 받쳐준다. 이들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고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사실만으로도 공격 명분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미국 안팎에서 이라크 확전론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와 싸울 때가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로 제동을 걸었다.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한 국제연대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중동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 아랍 국가들은 이라크 확전론에 반발하고 있다.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는 더 이상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며, 아랍권의 대미 협력체제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 밝혔다. 파루크 알 샤라 시리아 외무장관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유혈충돌과 맞물려 중동지역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갈 것이라 걱정한다.

    유럽 국가들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군사작전이 이라크 등으로 번지는 것을 반대한다”고 부시 행정부의 확전 움직임을 경계했다.

    당사자인 후세인 정권은 위기의식 중에도 완강히 저항하는 태세다. 이라크는 생화학무기 개발 등과 관련한 국제협정을 위반한 적이 없다며 “미국의 무기사찰 주장은 공격 구실을 찾기 위한 것”이란 논리를 편다.

    비관적인 시사평론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시간문제로 본다. 공격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하느냐가 관건이란 얘기다. 공격이 있다면 물론 아프간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뤄질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의 군수산업체들과 연계를 맺은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 아래 미국의 패권을 지구촌 전체에 관철시킴으로써 새로운 줄 세우기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인다. 그 출발점이 아프간이고 다음이 이라크다. 후세인의 대량 살상무기 개발과 핵무기 보유 위험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탈레반 체제 전복처럼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듯하다.

    강경파들은 이라크 공격의 또 다른 구실로 “이라크의 민주화는 이라크와 아랍국들에도 이득이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이라크 국민은 오랫동안 후세인의 독재로 고통받아 왔다. 후세인은 이라크에서 알라신에 가까운 절대자로 군림한다. 문제는 지난 10년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함으로써 후세인의 권력기반 강화에 결과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후세인은 위기관리를 구실로 반체제 인사들을 검속해 왔다. 이라크 전체가 정보기관원의 끄나풀로 가득한 상황이다.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이라크 민주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발상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발상 자체가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주의적 오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걸프전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은 CIA의 생화학전 피해 경고를 받아들여 바그다드 진격을 포기했다. 미 국방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는 최근 화학무기 제조 능력을 일부 복구했으며, 필요할 경우 즉각 이런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다시 아들 부시가 생화학 무기사찰을 내세워 어설프게 후세인 체제를 흔들려고 하면, 2200만 이라크 국민만 더욱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판이다. 그들은 지난 10년간 이어진 경제제재와 후세인 체제의 실정(失政) 탓에 식량난과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았다. 매월 5세 이하 어린이 약 6000명이 사망하고, 어린이 200만명 이상이 영양부족으로 각종 질병을 앓는다는 소식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수순은 공습 강화가 될 게 뻔하다. 아프간 카불에 이어 바그다드에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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