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독트린’. 9·11 테러공격의 총연출자로 꼽히는 오사마 빈 라덴 세력과 테러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깃발에 새로 쓰인 이름이다. 미국 영토와 시민에 대해 비정규전인 테러 형태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나 단체를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한 매우 공격적인 시사용어다. 지금 부시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 전쟁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과 경제와의 전쟁이다. 가뜩이나 내리막길인 경제가 9·11 테러참사 뒤 말이 아니다. 불경기 한파로 벌써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미 국민은 테러를 당한 것보다 훨씬 더 예민한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일부 미 시사평론가들도 부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경제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지고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다. 테러 전쟁을 빨리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탈레반은 ‘알 자지라’ 방송 적극 활용
부시 대통령은 두 가지 전쟁 가운데 현재로서는 빈 라덴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부시의 전략은 두 가지다. 군사작전으로 빈 라덴 세력을 압박하는 한편, 다른 방식으로 탈레반 지지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전전 또는 심리전이다. 10월7일 밤 첫 공습을 시작한 이래 날마다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는 한편, 아프간 국민에게 식량과 함께 라디오, 선전문을 동시에 투하하고 있다. 첫 공습 후 9시간 만인 8일 새벽 식량 3만7500인분을 뿌렸다. 말 그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전쟁’ 방식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전쟁은 탈레반 정권에 충성하는 다수 아프간 사람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이다. 나흘째 이어진 공습으로 300명이 죽었다는 탈레반 정권의 주장이 맞는다면, 상갓집 위로 식량봉지를 떨어뜨리는 격이다. 일부 아프간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 불질렀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법도 하다.
이처럼 부시의 심리전은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십자사(ICRC)와 국경없는의사회(MSF)를 비롯해 아프간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펴온 국제기구 직원들도 생각이 다르다. 군사적·인도적 주장과 행동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아프간 주민 500만∼700만 명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150만 명이 겨울을 나는 동안 굶어죽을 것으로 내다본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충족과 관련된 식량을 앞세운 부시 정권의 심리전에 맞서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도 선전전에 열심이다. 아프간에 대한 공습이 시작된 지난 10월7일 빈 라덴이, 그리고 9일에는 그의 대변인이,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통해 “미국이 떨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랍권의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듣고 많은 이슬람교도 청년이 아프간 국경을 넘기 위해 몰려드는 상황이다. 이즈음 알 자지라는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대외적인 창구로 등장해 ‘아랍권의 CNN’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부시 정권은 식량을 공중투하하면서 ‘미국의 적은 이슬람권 전체가 아니라 테러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빈 라덴은 “미국이 알라와 이슬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니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이슬람 형제애를 상기시킨다. 이슬람·서방 전쟁이라는 대결구도로 몰아가려는 것이 빈 라덴의 기본 전략이다.
부시·빈 라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전을 곁들인 선전전에서 누가 이길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부시 미 대통령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테러응징이란 명분을 지녔고, 빈 라덴은 아랍권의 뿌리깊은 반미주의, 반이스라엘(반유대주의) 분위기에 힘의 원천을 두고 있다. 그런 사정을 잘 꿰고 있는 부시 정권은 언론을 통한 빈 라덴의 선전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 쪽은 탈레반 정권의 최고 지도자인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를 인터뷰한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압력을 가해 인터뷰 기사가 못 나가도록 막았다.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라디오방송이 오마르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VOA는 미 정부가 재정을 출연하는 방송매체 가운데 아프간의 주언어인 파슈토 말을 방송하는 유일한 매체다.
부시 참모들은 빈 라덴의 강력한 메시지가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다면, 전 세계 이슬람 교도와 특히 빈 라덴 추종자들에게 반미 행동을 부추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연한 걱정이다. 문제는 아랍권에 이렇다 할 미국 선전매체가 없다는 점이다. 99년 말까지 아랍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나팔수 역할을 맡은 것은 ‘알 마잘’(al-Majal)이란 아랍어 잡지다. 알 마잘은 중동지역 전역에서 미국의 입장을 전한 무료 배포 잡지였다. 그러나 알 마잘의 재정을 받쳐준 미 대외 원조기관 USIS가 클린턴 행정부 때인 99년 미 국무부 안으로 흡수됨에 따라 이 잡지도 덩달아 폐간됐다. 미국 책을 아랍어로 번역하던 작업도 중단됐다.
지난 냉전시대, 소련에 맞서 미국은 선전·심리전에 엄청난 돈을 들였다. 비밀 해제된 미 행정부 문서들은 미국이 어느 정도 선전전에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51년 미 트루먼 행정부는 백악관 직속 국가안보위(National Security Council) 아래 심리작전부를 설치했다. 이 부서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외국의 언론인과 학자, 번역가, 영화사에 은밀히 재정적인 후원을 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200만 권에 이르는 반공 서적이 출판됐고, 소련을 혐오하도록 부추기는 대중가요들이 작곡됐다. 그러나 아랍권에 관한 한 미국은 선전전에 그만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와의 선전전에서도 밀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미국이 주도해 온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제재 때문에 수십만 명(이라크 주장으론 200만 명)의 이라크 국민이 희생당했다고 후세인은 선전해 왔다. 경제제재로 꼭 필요한 약품마저 제대로 구하지 못해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가 이런 죽음은 사담 후세인이 져야 할 몫이 크다. 경제제재가 이라크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수입원인 원유를 팔아 사들이는 식량 프로그램(Oil for Food)의 이라크 내 주관자는 후세인이다.
그럼에도 이라크 어린이의 죽음과 미국을 연결시켜 온 후세인의 선전전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걸프전 뒤 10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이라크와 소모적인 대결국면을 미국 혼자 고집스레 끌어왔고(유럽 국가 중 영국 외에는 제재에 비판적이다), 다른 하나는 아랍권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다. 기회 있을 때마다 후세인은 미국이 이중 잣대로 아랍권을 재고 있다고 선전해 왔다. 팔레스타인을 강점해 군사정치를 펴며 국가 테러리즘(state terrorism)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은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운동을 테러리즘으로 매도해 왔다는 것이다.
빈 라덴도 10·7공습 직후 낸 성명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하며 ‘반이스라엘=반미’라는 등식을 상기시키며 지하드를 다짐했다. 이런 빈 라덴과의 선전전에서 미국이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 문제라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유혈충돌의 씨앗인 이스라엘 정착민과 함께 병력을 점령지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하고,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부시 독트린이 그런 쪽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번 싸움에서 미국이 근본적으로 이기기는 어렵다. 군사적인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다. 빈 라덴이 공습으로 또는 특수부대에 사살되거나, 아니면 CIA의 ‘더러운 전쟁’으로 암살되더라도 부시의 테러전쟁은 쉽게 막을 내릴 수 없다. 아랍권에는 제2, 제3의 빈 라덴이 줄서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알 자지라’ 방송 적극 활용
부시 대통령은 두 가지 전쟁 가운데 현재로서는 빈 라덴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부시의 전략은 두 가지다. 군사작전으로 빈 라덴 세력을 압박하는 한편, 다른 방식으로 탈레반 지지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선전전 또는 심리전이다. 10월7일 밤 첫 공습을 시작한 이래 날마다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는 한편, 아프간 국민에게 식량과 함께 라디오, 선전문을 동시에 투하하고 있다. 첫 공습 후 9시간 만인 8일 새벽 식량 3만7500인분을 뿌렸다. 말 그대로 전에 없던 ‘새로운 전쟁’ 방식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전쟁은 탈레반 정권에 충성하는 다수 아프간 사람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이다. 나흘째 이어진 공습으로 300명이 죽었다는 탈레반 정권의 주장이 맞는다면, 상갓집 위로 식량봉지를 떨어뜨리는 격이다. 일부 아프간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 불질렀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법도 하다.
이처럼 부시의 심리전은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십자사(ICRC)와 국경없는의사회(MSF)를 비롯해 아프간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펴온 국제기구 직원들도 생각이 다르다. 군사적·인도적 주장과 행동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아프간 주민 500만∼700만 명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150만 명이 겨울을 나는 동안 굶어죽을 것으로 내다본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충족과 관련된 식량을 앞세운 부시 정권의 심리전에 맞서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도 선전전에 열심이다. 아프간에 대한 공습이 시작된 지난 10월7일 빈 라덴이, 그리고 9일에는 그의 대변인이,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통해 “미국이 떨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랍권의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이 같은 소식을 듣고 많은 이슬람교도 청년이 아프간 국경을 넘기 위해 몰려드는 상황이다. 이즈음 알 자지라는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대외적인 창구로 등장해 ‘아랍권의 CNN’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부시 정권은 식량을 공중투하하면서 ‘미국의 적은 이슬람권 전체가 아니라 테러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빈 라덴은 “미국이 알라와 이슬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니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이슬람 형제애를 상기시킨다. 이슬람·서방 전쟁이라는 대결구도로 몰아가려는 것이 빈 라덴의 기본 전략이다.
부시·빈 라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전을 곁들인 선전전에서 누가 이길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부시 미 대통령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테러응징이란 명분을 지녔고, 빈 라덴은 아랍권의 뿌리깊은 반미주의, 반이스라엘(반유대주의) 분위기에 힘의 원천을 두고 있다. 그런 사정을 잘 꿰고 있는 부시 정권은 언론을 통한 빈 라덴의 선전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 쪽은 탈레반 정권의 최고 지도자인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를 인터뷰한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압력을 가해 인터뷰 기사가 못 나가도록 막았다.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라디오방송이 오마르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VOA는 미 정부가 재정을 출연하는 방송매체 가운데 아프간의 주언어인 파슈토 말을 방송하는 유일한 매체다.
부시 참모들은 빈 라덴의 강력한 메시지가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다면, 전 세계 이슬람 교도와 특히 빈 라덴 추종자들에게 반미 행동을 부추길 것으로 보고 있다. 당연한 걱정이다. 문제는 아랍권에 이렇다 할 미국 선전매체가 없다는 점이다. 99년 말까지 아랍에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나팔수 역할을 맡은 것은 ‘알 마잘’(al-Majal)이란 아랍어 잡지다. 알 마잘은 중동지역 전역에서 미국의 입장을 전한 무료 배포 잡지였다. 그러나 알 마잘의 재정을 받쳐준 미 대외 원조기관 USIS가 클린턴 행정부 때인 99년 미 국무부 안으로 흡수됨에 따라 이 잡지도 덩달아 폐간됐다. 미국 책을 아랍어로 번역하던 작업도 중단됐다.
지난 냉전시대, 소련에 맞서 미국은 선전·심리전에 엄청난 돈을 들였다. 비밀 해제된 미 행정부 문서들은 미국이 어느 정도 선전전에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51년 미 트루먼 행정부는 백악관 직속 국가안보위(National Security Council) 아래 심리작전부를 설치했다. 이 부서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외국의 언론인과 학자, 번역가, 영화사에 은밀히 재정적인 후원을 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200만 권에 이르는 반공 서적이 출판됐고, 소련을 혐오하도록 부추기는 대중가요들이 작곡됐다. 그러나 아랍권에 관한 한 미국은 선전전에 그만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와의 선전전에서도 밀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미국이 주도해 온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제재 때문에 수십만 명(이라크 주장으론 200만 명)의 이라크 국민이 희생당했다고 후세인은 선전해 왔다. 경제제재로 꼭 필요한 약품마저 제대로 구하지 못해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가 이런 죽음은 사담 후세인이 져야 할 몫이 크다. 경제제재가 이라크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수입원인 원유를 팔아 사들이는 식량 프로그램(Oil for Food)의 이라크 내 주관자는 후세인이다.
그럼에도 이라크 어린이의 죽음과 미국을 연결시켜 온 후세인의 선전전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걸프전 뒤 10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이라크와 소모적인 대결국면을 미국 혼자 고집스레 끌어왔고(유럽 국가 중 영국 외에는 제재에 비판적이다), 다른 하나는 아랍권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다. 기회 있을 때마다 후세인은 미국이 이중 잣대로 아랍권을 재고 있다고 선전해 왔다. 팔레스타인을 강점해 군사정치를 펴며 국가 테러리즘(state terrorism)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은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운동을 테러리즘으로 매도해 왔다는 것이다.
빈 라덴도 10·7공습 직후 낸 성명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하며 ‘반이스라엘=반미’라는 등식을 상기시키며 지하드를 다짐했다. 이런 빈 라덴과의 선전전에서 미국이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스라엘 문제라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유혈충돌의 씨앗인 이스라엘 정착민과 함께 병력을 점령지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하고,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부시 독트린이 그런 쪽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번 싸움에서 미국이 근본적으로 이기기는 어렵다. 군사적인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다. 빈 라덴이 공습으로 또는 특수부대에 사살되거나, 아니면 CIA의 ‘더러운 전쟁’으로 암살되더라도 부시의 테러전쟁은 쉽게 막을 내릴 수 없다. 아랍권에는 제2, 제3의 빈 라덴이 줄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