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6

..

돈풍년 충무로 웬 한숨소리

투자조합 20여 개 2천억 원 조성 … ‘대박 영화만 만들어라’ 닦달

  • < 유진우/ 매일경제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2-31 14: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돈풍년 충무로 웬 한숨소리
    충무로에 돈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영화의 ‘대박’ 행렬이 어어지자 벤처캐피털은 너도나도 거대한 투자조합을 만들고 있으며 IMF사태 이후 영화판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대기업들도 차츰 돈주머니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의 돈줄은 주로 대기업이 담당했다. 삼성·대우 등이 영화 판권이나 비디오유통사업 등으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유일한 돈줄인 대기업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영화계는 암담한 분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빈자리에 벤처캐피털의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털의 돈은 영화계의 근심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대기업 자본의 빈자리를 메워갔다.

    비교적 일찍 영화투자에 관심을 가진 회사는 미래창업투자나 일산창업투자 등. 이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대박영화들이 나오면서 벤처캐피털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다양한 투자조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무한기술투자에서 운영하는 ‘무한영상벤처투자조합’, 코리아픽처스와 코웰창업투자 등이 출자한 ‘코웰멀티미디어’ 등 현재까지 결성된 투자조합은 20여 개이며 규모는 2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한동안 뜸했던 대기업의 투자도 부채질할 전망이다. 제일제당 그룹의 CJ엔터테인먼트와 오리온 그룹의 미디어플렉스가 투자조합을 결성했고, 롯데 그룹은 최근 롯데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곧 투자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영화제작사인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는 엔터테인먼트 홀딩컴퍼니인 로커스홀딩스에게서, 명필름은 CJ엔터테인먼트에게서, 강제규필름은 KTB네트워크에게서 지분교환 등으로 자본금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이런 호황에도 불구하고 충무로에는 많은 걱정이 있다. 첫째는 영화의 흥행성만이 작품의 존재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해마다 충무로에서 수십 편의 영화가 기획되지만 모든 작품이 완성되어 스크린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현장의 한 스태프는 현재 ‘돈 되는’ 영화가 아니면 시나리오 단계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실제 90년대 후반에 기획된 B영화사의 호러영화나 K영화사의 스포츠영화 등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돈 안 되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무산

    둘째는 제작사들이 작품보다는 스타 섭외에 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투자를 결정짓는 요소는 ‘좋은 시나리오’가 최우선이지만 흥행성을 타진하는 제1의 조건은 출연배우로 가늠된다. 심지어 어떤 투자자는 “돈 걱정 말고 스타만 잡아오라”고 닦달한다고 한다.

    셋째는 투자사가 실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인지이다. 일반적으로 30억 원을 투자한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전국 관객 60만 명 정도.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는 8월까지 32편이지만 전국 관객 60만 명을 넘긴 영화는 10편도 안 된다.

    영화의 모든 이익을 투자사가 갖는 것도 아니고, 투자사가 한 작품에만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영화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투자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특히 벤처캐피털은 몇 년 후 결산을 해보아 ‘이익이 없는 사업’이라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돈이다.

    돈은 넘쳐나는데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느냐고 의문을 갖겠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충무로가 대박영화만 양산하려는 공장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벤처캐피털을 위시한 자본의 유입이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임은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