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형(품세)을 비롯해 봉기술과 검술 대련, 송판 격파 등 한국무술의 여러 기술을 선보이는 이국인들의 긴장된 표정, 경연 때마다 심사 사범들에게 깍듯이 절하는 모습, 그리고 귓전을 때리는 또렷한 한국어 구령들…. 한국인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 느껴질 법한 장면이지만 미국에선 벌써 20년째 이어지고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특히 휴스턴 아스트라돔 체육관은 하루 대관료가 1만 달러(1300만 원)를 웃도는 대형 체육관임에도 700여 명의 선수를 비롯해 가족과 관람객 등 1500여 명으로 빼곡이 들어차 미국 내 한국무술의 열풍을 실감케 했다. 더욱이 테러 발생과 전쟁 개시 등의 여파로 올해 선수와 관람객 참가율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국술원 관계자의 설명을 감안하면 이 행사가 상당한 규모로 자리매김했음을 느끼게 했다.

이날 국술 세계선수권대회는 축제처럼 활기 넘쳤다. 다섯 살의 어린 선수가 있는가 하면 환갑에 가까운 백발의 노인선수도 있고, 참가 선수의 40%는 여성이었다. 어린 자녀들이 경연을 펼치면 부모들은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경연 결과에 따라 메달을 목에 건 자녀를 얼싸안고 축하하거나 낙심한 자녀를 위로하는 가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캔자스에서 12시간 차를 달려 아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는 월터 디믹(43)은 이에 대해 “단순히 차고 지르는 기술 연마만 아니라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예의를 갖추도록 하는 정신수양을 겸하는 것이 국술의 매력”이라고 답했다. 캔자스대 생물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방과 후 국술 도장에 나가 제자를 지도하는 그는 “20년 전 처음 국술을 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국술을 지도하면서 같은 미국인으로서 제자들에게 일상생활 속에 다른 나라의 좋은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보다 1년 늦은 26년 전부터 국술이 보급돼 55개 도장에 2만여 명의 회원을 지닌 영국에서도 80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영국 데레한에서 호텔 매니저로 일한다는 일레이나 위커스(29)는 “2년 전부터 국술을 접했는데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아 짬짬이 연습하면서 정신적·신체적으로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진출해 입지전적 성공신화를 일궈낸 한국 무술인들은 대부분 미국 대통령 혹은 정치인들과 밀접한 인연을 맺어왔다.

아칸소주를 근거지로 삼아 보급된 미국 태권도협회(ATA)의 창시자 이행웅씨(李幸雄)도 스포츠와 정치의 만남을 주도한 인물. 지난해 64세로 타계한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직접 태권도를 지도했다. 1964년 미국에 처음 진출한 그는 태권도와 함께 한국문화 전파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제 태권도에 이어 국술이 세계 무대에 코리아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머리카락을 아예 ‘국술’이란 글자 모양으로 자른 맬컴 도널드슨(36·샌프란시스코 변호사)은 “청소년 시절부터 체력 단련을 위해 쿵푸 등 여러 운동을 조금씩 배우다 대학 때 국술의 도전의식에 매료됐다”며 “내년 가을 국술 종주국인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꼭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