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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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녕 DJ를 포기해야 하는가

  • 입력2004-12-22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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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정녕 DJ를 포기해야 하는가
    지난 여름 서울 근교에 있는 명성산(鳴聲山)에 올랐다가 큰 낭패를 당할 뻔했다. 정상이라 생각하고 힘들게 올라갔더니 끝이 아니었다. 해발 922m의 정상은 저쪽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지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먹구름이 염려되었다. 망설이다 결국 그대로 하산하기로 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힘이야 들겠지만 시간은 단축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곳곳에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곡의 바위들도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진퇴양난이란 말이 절로 실감났다. 험난한 바위틈에서 간신히 발을 디디고 있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벌집을 건드리고 말았다. 고스란히 벌침세례를 맞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산을 내려올 수 있었는데, 그때 그 감격이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명성산 정상에 올라가면 손쉬운 하산길이 있었다. 둘러가는 길이 빠르다는 역설(逆說)의 교훈을 생생하게 체험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은 역설의 연속이다. 아니, 역설 그 자체다. 노자(老子)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弱之勝强柔之勝剛)고 했다. 예수는 높이 되고자 하면 먼저 낮추라 했다. 하다 못해 야구나 골프를 할 때도, 장타를 치기 위해서는 우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는 역설의 진리를 숱하게 접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 ‘국민의 정부’는 딱할 정도로 곤경에 처해 있다. 갈 길은 먼데 해는 지고, 비는 내리는데 바지춤은 자꾸 내려가는 형국이다. 문민정부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기약 없는 몰락을 거듭하니, 70년대와 80년대를 함께 헤쳐온 민주화 세대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다. 역사 너머로 벌써 정리해야 했을 인사들이 어깨춤 추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자니 참담할 정도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민련과 손잡은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시작이었다. 질러가는 길이 빠른 듯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패착(敗着)이었다. 억지로 정권잡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대신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권력의 정체성이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보니 개혁이고 쇄신이고 될 리 없었다. 총선거를 앞두고 ‘위장이혼’하고, 자민련을 국회교섭단체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의원을 꿔주는 무리수를 둔 것은 작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술수와 야합이 세상을 우롱하니 국민 전체가 정신분열증에 걸릴 판이었다. 그러던 양측이 볼썽 사납게 헤어졌다. 불륜의 뒤끝답게, 온갖 추잡한 장면을 다 연출한다.

    왜 자꾸 반대로만 갈까… 세 불리할수록 정도 지켜야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성향으로 보나 노선으로 보나 두 정파가 한살림한다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진실을 호도하려 들었지만, 그것은 분명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 나라살림이 총체적 파탄에 빠진 근본 원인이 거기 있었다. 도덕적 해이와 끝닿을 데 없는 냉소주의가 만연한 이유도 바로 거기 있었다. 정도를 무시하고 원칙을 희롱하니 그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비극이었다. 그런 판국에 이런 사태가 오고 말았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이 증명되었으니, 더 이상 반가울 수 없다. 정도가 술수를 이기고, 원칙이 야합을 눌러야 세상 살 맛이 날 것 아닌가.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다음 행보를 주목했다. 그동안의 일탈을 반성하고 심기일전하기를 기대했다. 소수파라 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지지를 구할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아니 불행하게도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여전히 퇴행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 되는 길로만 가고 있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최악의 선택을 하였다.

    역설의 진리는 살고자 하면 먼저 죽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잡고 싶으면 먼저 놓을 것을 권면한다. 세가 불리할수록 원칙과 정도를 지키라고 당부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꾸 반대로만 가고 있다. 이제 정녕 그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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