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2년 3월27일 오후 2시24분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2001년 5월27일 경기까지 타자들이 기록한 파울 볼은 모두 몇 개일까? 투수들이 던진 공의 수는? 지금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창고에 모아놓은 공식기록지를 전부 모아 공의 개수를 더하면 된다. 실수만 피하면 여지 없이 답은 나온다. 시간과 인내력을 무진장 필요로 한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프로야구에서 통계는 핏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통산 최다 홈런-타율 등의 통계를 작성하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 기록은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분류하고, 또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야구를 흔히 바둑에 비유하고는 한다. 몇 년이 지나도 기보가 있어 복기가 가능한 바둑처럼 야구도 바로 공식기록이라는 것이 있어 경기 자체를 머리 속에서 재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봐야만 하는 축구-농구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가 수를 내놓은 뒤 일순간의 정적과 호흡이 있은 뒤에야 이쪽의 새로운 수가 나온다. 결국 다른 종목과 다른 이러한 시간적 여유가 야구의 기록을 가능케 한다.
공식 기록을 창안한 이는 헨리 채드윅(1824~1908)이라는 영국 출신의 야구기자. 지금과 같이 각 포지션별로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최초로 박스 스코어라는 것을 고안해 당시의 야구기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1845년경 약 20개의 조항으로 처음 명문화한 야구규칙을 다듬어 플레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현재 프로야구가 있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대만은 각 리그마다 독자적인 기록양식을 채택하였지만 기본적인 기록 원칙과 부호 등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까지 한국은 몸에 맞는 공을 D로 표시하던 점이 달랐지만 지난해부터는 그마저 미국과 같이 HP(Hit by Pitched ball)로 표시한다.
야구 규칙 10.01 a)에 따르면 공식기록원은 기자석에서 게임을 관제한다고 되어 있으나 오늘날에는 다르다. 채드윅이 기록을 만들 당시엔 기자들이 이 일 또한 담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기자들의 업무와 분리했기 때문. 초창기에는 기록이 체계화하지 않은 탓에 시비가 자주 일곤 해서, 경기를 자주 보고 또 비교적 공평무사한 자리에 있는 기자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요즘은 야구와 관련한 직업군이 워낙 세분화해 전문기록원이 그 일을 맡는다.
미국은 리그 사무국 직원을 공개 채용해 각 도시에 전담기록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KBO 산하에 기록위원회를 두고 있다. 11년 경력, 지난해까지 총 1061경기에서 기록을 관장한 김상영 기록위원장을 필두로 13명의 기록위원이 있다. 이중 지난 96년 5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입사한 성연주씨는 유일한 홍일점. 지난해까지 2군에서 총 348경기의 기록을 관장했다. 반면 한국야구 기록의 틀을 잡아놓았다고 평가받는 이는 현재 KBO 규칙위원장인 조해연씨다. 1960년대 ‘해병대 조상사’로 불리며 해병대 야구단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조씨는 비야구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감독까지 지낸 야구계의 기인. 프로야구 초창기엔 MBC 청룡 기록원으로 재직하면서 기록에 의한 선수연봉 고과 시스템의 대강을 손질했고, 더그아웃에서 당시 배성서 감독 등에게 기록 자문 등의 일을 해준 적도 있다.
이들 공식기록원의 판단은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난 5월25일 잠실 SK-LG전서 기록원의 최종 판단이 요구된 경우를 살펴보자. 9회 SK 선두타자 대타 채종범이 좌전 안타, 9번 최태원이 우전안타를 때렸다. 1루 대주자 송재익은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달려 완전히 세이프. 그러나 LG 유격수 유지현이 공을 받아 2루를 밟고 2루심에게 어필해 주자가 아웃 선언되었다. 송재익이 2루를 밟지 않고 지나친 탓에 누의 공과(그냥 지나침)로 처리한 것. 송재익은 당연히 아웃이지만 전광판에는 최태원의 안타까지 취소되었다. 도대체 왜? 이날 경기를 관장한 김재권 기록원의 말을 빌려보자. “안타는 타자 본인과 주자가 안전하게 진루해야 하므로 타자가 억울하지만 기록상 구제받을 수 없다.” 최태원은 1루에 진루했으나 선행 주자의 미스 탓에 안타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김재권 기록원은 안타의 기본적인 정의로 돌아가 최태원의 타구를 판단한 것이다.
타구의 판단, 바꿔 말하면 야수의 수비 판단은 공식기록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몇 년 전 LG 유지현의 번트에 관한 논란 또한 마찬가지다. 발 빠른 유지현이 무사 1루 상황에서 댄 번트가 가끔 희생번트로 기록되지 않고 타수로 처리된 적이 있었다. 유지현으로서는 타수 하나가 늘어 타율에서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위원회는 유지현이 번트했을 때 주자를 진루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고 안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희생번트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완전하고도 의도적인 번트를 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규칙 적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비측 번트 처리능력이 전보다 좋아지고 상대적으로 그에 따른 타자들의 번트 기술이 나아지기 때문에 가끔 의도적인 번트도 안타를 얻기 위한 기습 번트처럼 보일 수 있다. 한마디로 현대야구의 발전과 함께 기록원들의 판단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 바꿔 말하면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 대신 당시 경기상황 등을 상당부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규칙은 어떻게 바뀔까. 일례로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에는 우리에게 없는 실내 돔구장이 있다. 돔구장의 특성상 여러 부가적인 규칙이 있음은 물론이다. 돔구장 내 외야 쪽 천장을 맞힐 경우 경기장 특별규칙 등에 의해 인정홈런으로 기록한다. 우리 나라에 돔구장이 생기면 마찬가지 규칙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소재의 배트를 개발하거나 공의 반발력이 더 좋아지는 경우에는 스트라이크 존 또한 넓어져야 한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다소 넓혔다. 기록과 규칙은 이처럼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프로야구 기록은 온갖 사례의 거름을 먹고 자란 역사책인 셈이다.
프로야구에서 통계는 핏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통산 최다 홈런-타율 등의 통계를 작성하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 기록은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분류하고, 또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야구를 흔히 바둑에 비유하고는 한다. 몇 년이 지나도 기보가 있어 복기가 가능한 바둑처럼 야구도 바로 공식기록이라는 것이 있어 경기 자체를 머리 속에서 재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봐야만 하는 축구-농구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가 수를 내놓은 뒤 일순간의 정적과 호흡이 있은 뒤에야 이쪽의 새로운 수가 나온다. 결국 다른 종목과 다른 이러한 시간적 여유가 야구의 기록을 가능케 한다.
공식 기록을 창안한 이는 헨리 채드윅(1824~1908)이라는 영국 출신의 야구기자. 지금과 같이 각 포지션별로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최초로 박스 스코어라는 것을 고안해 당시의 야구기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1845년경 약 20개의 조항으로 처음 명문화한 야구규칙을 다듬어 플레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현재 프로야구가 있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대만은 각 리그마다 독자적인 기록양식을 채택하였지만 기본적인 기록 원칙과 부호 등은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까지 한국은 몸에 맞는 공을 D로 표시하던 점이 달랐지만 지난해부터는 그마저 미국과 같이 HP(Hit by Pitched ball)로 표시한다.
야구 규칙 10.01 a)에 따르면 공식기록원은 기자석에서 게임을 관제한다고 되어 있으나 오늘날에는 다르다. 채드윅이 기록을 만들 당시엔 기자들이 이 일 또한 담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기자들의 업무와 분리했기 때문. 초창기에는 기록이 체계화하지 않은 탓에 시비가 자주 일곤 해서, 경기를 자주 보고 또 비교적 공평무사한 자리에 있는 기자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요즘은 야구와 관련한 직업군이 워낙 세분화해 전문기록원이 그 일을 맡는다.
미국은 리그 사무국 직원을 공개 채용해 각 도시에 전담기록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KBO 산하에 기록위원회를 두고 있다. 11년 경력, 지난해까지 총 1061경기에서 기록을 관장한 김상영 기록위원장을 필두로 13명의 기록위원이 있다. 이중 지난 96년 5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입사한 성연주씨는 유일한 홍일점. 지난해까지 2군에서 총 348경기의 기록을 관장했다. 반면 한국야구 기록의 틀을 잡아놓았다고 평가받는 이는 현재 KBO 규칙위원장인 조해연씨다. 1960년대 ‘해병대 조상사’로 불리며 해병대 야구단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조씨는 비야구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감독까지 지낸 야구계의 기인. 프로야구 초창기엔 MBC 청룡 기록원으로 재직하면서 기록에 의한 선수연봉 고과 시스템의 대강을 손질했고, 더그아웃에서 당시 배성서 감독 등에게 기록 자문 등의 일을 해준 적도 있다.
이들 공식기록원의 판단은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난 5월25일 잠실 SK-LG전서 기록원의 최종 판단이 요구된 경우를 살펴보자. 9회 SK 선두타자 대타 채종범이 좌전 안타, 9번 최태원이 우전안타를 때렸다. 1루 대주자 송재익은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달려 완전히 세이프. 그러나 LG 유격수 유지현이 공을 받아 2루를 밟고 2루심에게 어필해 주자가 아웃 선언되었다. 송재익이 2루를 밟지 않고 지나친 탓에 누의 공과(그냥 지나침)로 처리한 것. 송재익은 당연히 아웃이지만 전광판에는 최태원의 안타까지 취소되었다. 도대체 왜? 이날 경기를 관장한 김재권 기록원의 말을 빌려보자. “안타는 타자 본인과 주자가 안전하게 진루해야 하므로 타자가 억울하지만 기록상 구제받을 수 없다.” 최태원은 1루에 진루했으나 선행 주자의 미스 탓에 안타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김재권 기록원은 안타의 기본적인 정의로 돌아가 최태원의 타구를 판단한 것이다.
타구의 판단, 바꿔 말하면 야수의 수비 판단은 공식기록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몇 년 전 LG 유지현의 번트에 관한 논란 또한 마찬가지다. 발 빠른 유지현이 무사 1루 상황에서 댄 번트가 가끔 희생번트로 기록되지 않고 타수로 처리된 적이 있었다. 유지현으로서는 타수 하나가 늘어 타율에서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위원회는 유지현이 번트했을 때 주자를 진루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고 안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희생번트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완전하고도 의도적인 번트를 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규칙 적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비측 번트 처리능력이 전보다 좋아지고 상대적으로 그에 따른 타자들의 번트 기술이 나아지기 때문에 가끔 의도적인 번트도 안타를 얻기 위한 기습 번트처럼 보일 수 있다. 한마디로 현대야구의 발전과 함께 기록원들의 판단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 바꿔 말하면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 대신 당시 경기상황 등을 상당부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규칙은 어떻게 바뀔까. 일례로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에는 우리에게 없는 실내 돔구장이 있다. 돔구장의 특성상 여러 부가적인 규칙이 있음은 물론이다. 돔구장 내 외야 쪽 천장을 맞힐 경우 경기장 특별규칙 등에 의해 인정홈런으로 기록한다. 우리 나라에 돔구장이 생기면 마찬가지 규칙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소재의 배트를 개발하거나 공의 반발력이 더 좋아지는 경우에는 스트라이크 존 또한 넓어져야 한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다소 넓혔다. 기록과 규칙은 이처럼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프로야구 기록은 온갖 사례의 거름을 먹고 자란 역사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