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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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는 아이에겐 꼭 벌을 줘라

‘지는 교육’은 부모의 몫… 아이들 싸움 개입 금지, 방청소·옷정리 스스로 하도록

  • < 박영숙/ 한국수양부모협회 회장·호주대사관 공보관 harmsen@naver.com>

    입력2005-01-31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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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안 듣는 아이에겐 꼭 벌을 줘라
    영국대사관 시절 동료였던 로스 스패로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와서 아이들이 싸울 때 부모가 개입하는 방식을 보고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장난감 하나를 놓고 두 아이가 싸울 때, 보통 엄마들은 자기 애를 설득해서 양보하라고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 엄마들은 오히려 상대 애에게 ‘너는 많이 가지고 놀았잖니? 네가 양보해라’며 장난감을 빼앗아 자기 애에게 주더군요.”

    그렇다. 이처럼 이기적으로 자식을 기르는 나라도 없다. 외동이들이 늘면서 한국 어머니들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되고 말았다. 오로지 내 아이만을 위해 사는 동물.

    그러나 지는 교육은 아이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부모가 실천하는 것이다.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은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을 가르치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남의 권리를 생각케 하고 ‘남에 대한 배려’를 배우며 ‘남에게 보탬이 되는 아이’로 키우자는 것이다. 지는 연습은 아이들을 스트레스에서 해방시키고 진정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나는 이기는 법보다 지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져줄 상대가 필요하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겐 꼭 벌을 줘라
    지는 경험을 하려면 상대가 필요하다. 외둥이들이 늘 문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형제들이 많은 집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양보하고 양보받는 미덕을 배울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외둥이를 기르는 부모들에게 나는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수양부모가 되라고 권한다. 아니면 또래 아이들과 많이 놀게 하고, 복지원이나 빈민촌 공부방, 장애우시설 등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도록 한다.



    이런 훈련은 성격이 형성되는 7~8세 이전, 즉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해야 한다. 내 아이를 시설 좋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 속으로 밀어넣는 것도 필요하다. 세상에는 얌전하고 신사적인 또래들만 있는 게 아니라 거칠고 반항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과 만나 사귀는 것이 결국 세상에 나오는 연습이기도 하다.

    아이들끼리 싸움을 하거나 논쟁할 때 부모가 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 스스로 잘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다시 친구로 지내는 과정은 어른이 나서지 않을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지난 95년 처음 우리 집에 온 수양아들 샘은 태권도 선수였다. 동두천에서 태어난 샘은 학교에 안 다니고 태권도만 열심히 배웠다. 덕분에 자신보다 덩치가 큰 형(친아들 숀)을 자주 건드렸다. 급소를 맞은 숀이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일도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놀라 달려갔지만 곧 그 정도로 맞아서 아이가 죽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샘은 내 관심을 끌기 위해 내가 가장 아끼는 것, 즉 형 숀을 건드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골이 나서 뛰어오기만 기다렸다. 나는 아이의 ‘관심끌기’ 작전을 알고 난 후 철저하게 무관심 전략으로 나갔다. 맞아도 엄마가 달려오지 않는 것을 알고 숀은 더 이상 데굴데굴 구르며 울지 않았고 샘 역시 때려봤자 재미가 없으니까 이틀 만에 그만두었다.

    규칙을 지키는 것도 지는 교육이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겐 꼭 벌을 줘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일단 우리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누구나 입구에 붙어 있는 가정규칙을 지켜야 한다(미국에서는 가정규칙을 붙여두지 않는 집은 수양부모 자격을 주지 않는다). 그중 중요한 규칙이 스스로 물을 따라 마시는 것이다. 우리 집에 처음 온 아이들은 대부분 앉아서 “물 줘요”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걸을 수 있는 나이만 되면 혼자 물을 따라 먹도록 한다.

    또 냉장고의 주스나 물은 부모의 소유이므로 물을 마실 때 “물 좀 마셔도 되요” 또는 “저는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물 한 잔 갖다 드릴까요”라는 식으로 허락을 받고 먹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물건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며, 부모님이 노력 끝에 사다 놓은 사유재산임을 배운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상황조차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지는 아이’로 키우는 한 방법이다. 그래야 사회에 나와 남의 물을 얻어 마시고 고마워할 줄 안다.

    서구에서는 13세 이하의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는 반드시 플라스틱 그릇을 쓴다. 물을 마신 플라스틱 컵을 헹궈 그릇 말리는 곳에 놓아 다시 씻을 필요가 없게 정리하는 일 정도는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고 집 근처 약수터에서 물 떠오는 일을 아이들에게 맡긴다. 자기들끼리 순서를 정해 물을 떠오도록 하는데 한밤중이라도 물이 떨어지면 물을 떠오게 한다. 담력도 키우고 아이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아예 다 같이 가서 물을 떠오는 과정에서 지는 아이도 있고 이기는 아이도 있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 준다.

    그밖에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어야 할 가정규칙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모든 아동은 자신의 방을 깨끗이 정리할 의무가 있으며, 1주일에 한 번씩 자신 방의 먼지털기와 진공청소기를 써서 대청소를 하고, 10세 이상이면 자신의 타월, 옷, 침대시트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스스로 정리하며, 벗은 옷은 반드시 세탁기에 넣는다. 마른빨래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걷어 가거나 접어두면 직접 서랍에 넣는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런 생활교육을 하는 집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모든 음식은 반드시 부엌이나 식당에서만 먹도록 하며, 쓰레기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남은 음식물은 반드시 냉장고 또는 싱크대에 치우도록 한다. 단순히 주부가 편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 앞으로 아이 혼자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대비기도 하다.

    외출 시에는 가스, 전등, 보일러가 꺼졌는지 점검하고 문을 잠그고 나가는 것은 몸에 배도록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모든 것을 점검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회인으로 자란다.

    말로만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 이런 내용을 적어 벽에 붙여둔다. 일반적으로 14~15세 아동은 늦어도 9시까지 귀가하고 주말은 10시, 16세 이상은 주중 10시 주말 12시, 14세 이상 아동의 주중 취침시간은 10시, 그 이하는 9시, 주말은 1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식으로 가정의 질서를 분명히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반항을 할 때는 벌을 준다. 주로 자신의 방에서 못 나오게 한다. 한 대 때리는 게 낫지 그게 무슨 벌이냐고 하겠지만 10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방에 갇힌 동안 자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라는 공포감도 느끼기 때문이다. 또 나머지 가족이 밖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싸우거나 물건을 파손하거나 했을 때 이 벌을 이용한다. 물론 아이에게는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 대신 주말 외출, 친구 집 파티 등에 가고 싶다면 학교성적을 일정 수준 이상 올려야 한다는 약속을 한다. 일주일에 책 1권은 필수로 읽으며 한 번 이상 일기 쓰는 것도 중요하다.

    싫다는 일도 하게 하라

    아무리 귀한 왕자 공주라도 사회에 나가면 하루종일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세금을 내고 가난한 사람들과 땀의 대가를 나눈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이가 원치 않더라도 집안행사에는 반드시 참석시키고 손님접대에 참여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 이처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귀한 내 자식,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귀한 자식일수록 지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질 줄 아는 아이가 마지막에 이기며, 지는 연습이 된 아이가 끝까지 가는 끈기가 있으며, 져본 아이들이야말로 인생을 즐기고 풍성한 감성을 지니며, 패배한 뒤의 쓴맛을 즐기는 여유를 배운다. 인생은 사실 진정한 패배도 없고 진정한 승리도 없는 제로섬 게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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