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과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은 서울 명동에 있는 중앙시네마극장에서 영화 ‘친구’를 함께 관람했다. 두 사람은 영화 관람 후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정국상황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최근 둘 사이의 정치적 거리가 부쩍 가까워지고 있음을 드러낸 것.
김의원이 3월22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도입하는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헌 논의를 위한 여야간 협의기구를 제안하자 김최고위원이 이틀 뒤인 24일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맞장구치는 ‘우정어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하필이면 제목이 ‘친구’인 영화를 함께 봤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여기에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와 손학규 의원이 가세한다면 영화가 진짜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그럴싸한 해석이 덧붙여졌다. 영화 ‘친구’는 70년대에서 90년대를 배경으로, 네 친구의 우정과 배신을 다룬 영화.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유사성을 갖고 있는 이들 4명이 요즘의 행보대로라면 정치적으로 한 묶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네 사람은 최근 들어 개별적인 교차회동을 갖는 등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비주류의 수장격인 김덕룡 의원의 행보는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등 당의 울타리를 뛰어넘기 직전의 임계수위까지 도달해 있는 듯하다. 김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2002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지역대결이 아닌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정당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4월 초에는 민주당 개혁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 강연을 통해 개헌론을 다시 제기할 계획이다.
이러한 김의원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근태 최고위원이 주장해온 ‘신민주연합론’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여야에 흩어진 과거의 민주화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신민주연합론’이나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정당구조로 헤쳐 모여야 한다는 김의원의 주장에는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계개편 주장에 아직은 당 체제 내의 비판에 머물고 있는 이부영 부총재의 ‘개혁세력 결단론’이 가세하는 ‘개혁신당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부총재는 지난 2월10일 여야 소장파의원들이 주축이 된 ‘개혁입법 연대모임’에서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이부총재는 물론 ‘결단’이 탈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고 개헌 주장 역시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개헌 논의를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손학규 의원은 “현 시점의 개헌 논의는 여권의 정계개편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부총재와 마찬가지로 “당내에서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해 이를 당의 결속을 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개헌 논의를 개방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비주류와 여야 개혁파의 연대움직임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반응은 시큰둥한 쪽이다. 어렵사리 DJP공조를 복원하고 민국당을 끌어들여 3당 연합의 틀을 마련해 놓은 판에 여야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섣부른 개헌론이 현재로서는 득될 게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원내 개헌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동의해야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 내 비주류의 협조만으로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이 3월29일 “동짓달에는 동짓달에 할 얘기가 있고 입춘에는 입춘에 할 얘기가 있다. 지금은 개헌론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으로 여겨진다. 비교적 개혁세력의 연대에 우호적인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측조차 “여권의 흡인력이 약한 상황인데 한나라당 비주류가 쉽게 울타리를 넘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당내 입지확보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다. 민주당의 한 소장파 의원도 “솔직히 말해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을 대변한다는 비주류의 정치적 영향력은 YS가 헛기침 한 번 하는 만큼도 안 된다. 그 정도 세력으로는 개헌이나 정계개편은 어림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개혁신당론 같은 얘기는 이상론일 뿐이거나 신문에 한 줄 나기 위해 ‘튀어보는’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폄하했다.
오히려 여권 핵심부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측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영남권과 보수층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의 움직임인 것 같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여야 개혁소장파의 독자세력화보다는 박근혜 부총재가 그같은 흐름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여야 개혁소장파와 박부총재가 개헌을 매개로 결합하는 새로운 보혁 연합이 탄생한다면 차기 대선 구도는 천지개벽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는 “양자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이질성 때문에 그 접합 가능성은 97년 대선 때의 DJP연합보다 훨씬 낮아 보이지만 만약 현실로 나타났을 때 얻는 시너지효과는 양쪽 모두가 명분과 실리를 얻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박부총재로서는 TK(대구-경북)라는 특정 지역에만 의존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국민후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개혁세력은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실리를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보혁 연합은 선결해야 할 조건이 많고 그 중에서도 TK 민심의 향배가 가장 큰 변수가 되리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박부총재가 이회창 총재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수단으로 ‘개헌론’을 펴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이총재를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TK 민심을 의식한 전형적인 외곽 때리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TK 지역에서 대중적 인기는 누리고 있지만 당내에서 자파 의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면으로 이총재 불가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만큼 독자적 입지 확보 차원에서 개헌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비주류 영향력 YS 헛기침만큼도 안 된다”
이총재측의 시각도 비슷하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장이 생기지 않느냐. 일단은 그러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 자체에 박부총재의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꾸준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이총재 외에는 대선 후보감이 없다는 ‘대안부재론’을 극복하는 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개헌론이 탄력을 받게 되면 여든 야든, 당내 비주류 세력과 손을 잡고 제3의 세력을 형성하든 정치적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듯하다.
아무튼 김덕룡 이부영 박근혜 손학규 의원 등 비주류 4인방의 ‘이회창 흔들기’가 어디로 귀결될 것인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박부총재와 TK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김의원이 3월22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도입하는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헌 논의를 위한 여야간 협의기구를 제안하자 김최고위원이 이틀 뒤인 24일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맞장구치는 ‘우정어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하필이면 제목이 ‘친구’인 영화를 함께 봤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여기에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와 손학규 의원이 가세한다면 영화가 진짜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그럴싸한 해석이 덧붙여졌다. 영화 ‘친구’는 70년대에서 90년대를 배경으로, 네 친구의 우정과 배신을 다룬 영화.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유사성을 갖고 있는 이들 4명이 요즘의 행보대로라면 정치적으로 한 묶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네 사람은 최근 들어 개별적인 교차회동을 갖는 등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비주류의 수장격인 김덕룡 의원의 행보는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등 당의 울타리를 뛰어넘기 직전의 임계수위까지 도달해 있는 듯하다. 김의원은 최근 공개적으로 “2002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지역대결이 아닌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정당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4월 초에는 민주당 개혁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 강연을 통해 개헌론을 다시 제기할 계획이다.
이러한 김의원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근태 최고위원이 주장해온 ‘신민주연합론’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여야에 흩어진 과거의 민주화세력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신민주연합론’이나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정당구조로 헤쳐 모여야 한다는 김의원의 주장에는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계개편 주장에 아직은 당 체제 내의 비판에 머물고 있는 이부영 부총재의 ‘개혁세력 결단론’이 가세하는 ‘개혁신당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부총재는 지난 2월10일 여야 소장파의원들이 주축이 된 ‘개혁입법 연대모임’에서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이부총재는 물론 ‘결단’이 탈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고 개헌 주장 역시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개헌 논의를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손학규 의원은 “현 시점의 개헌 논의는 여권의 정계개편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부총재와 마찬가지로 “당내에서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해 이를 당의 결속을 해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개헌 논의를 개방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비주류와 여야 개혁파의 연대움직임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반응은 시큰둥한 쪽이다. 어렵사리 DJP공조를 복원하고 민국당을 끌어들여 3당 연합의 틀을 마련해 놓은 판에 여야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섣부른 개헌론이 현재로서는 득될 게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원내 개헌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에서 상당수 의원들이 동의해야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 내 비주류의 협조만으로는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이 3월29일 “동짓달에는 동짓달에 할 얘기가 있고 입춘에는 입춘에 할 얘기가 있다. 지금은 개헌론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으로 여겨진다. 비교적 개혁세력의 연대에 우호적인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측조차 “여권의 흡인력이 약한 상황인데 한나라당 비주류가 쉽게 울타리를 넘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당내 입지확보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을 정도다. 민주당의 한 소장파 의원도 “솔직히 말해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을 대변한다는 비주류의 정치적 영향력은 YS가 헛기침 한 번 하는 만큼도 안 된다. 그 정도 세력으로는 개헌이나 정계개편은 어림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개혁신당론 같은 얘기는 이상론일 뿐이거나 신문에 한 줄 나기 위해 ‘튀어보는’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폄하했다.
오히려 여권 핵심부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측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영남권과 보수층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의 움직임인 것 같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여야 개혁소장파의 독자세력화보다는 박근혜 부총재가 그같은 흐름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여야 개혁소장파와 박부총재가 개헌을 매개로 결합하는 새로운 보혁 연합이 탄생한다면 차기 대선 구도는 천지개벽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는 “양자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이질성 때문에 그 접합 가능성은 97년 대선 때의 DJP연합보다 훨씬 낮아 보이지만 만약 현실로 나타났을 때 얻는 시너지효과는 양쪽 모두가 명분과 실리를 얻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박부총재로서는 TK(대구-경북)라는 특정 지역에만 의존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국민후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개혁세력은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실리를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보혁 연합은 선결해야 할 조건이 많고 그 중에서도 TK 민심의 향배가 가장 큰 변수가 되리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박부총재가 이회창 총재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수단으로 ‘개헌론’을 펴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이총재를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TK 민심을 의식한 전형적인 외곽 때리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TK 지역에서 대중적 인기는 누리고 있지만 당내에서 자파 의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면으로 이총재 불가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만큼 독자적 입지 확보 차원에서 개헌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비주류 영향력 YS 헛기침만큼도 안 된다”
이총재측의 시각도 비슷하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장이 생기지 않느냐. 일단은 그러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 자체에 박부총재의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꾸준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이총재 외에는 대선 후보감이 없다는 ‘대안부재론’을 극복하는 데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개헌론이 탄력을 받게 되면 여든 야든, 당내 비주류 세력과 손을 잡고 제3의 세력을 형성하든 정치적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듯하다.
아무튼 김덕룡 이부영 박근혜 손학규 의원 등 비주류 4인방의 ‘이회창 흔들기’가 어디로 귀결될 것인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박부총재와 TK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