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수간(獸姦), 즉 동물과 벌이는 섹스는 변태 중에서도 최고의 변태행위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요즘 인터넷에는 동물과 섹스하는 모습의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올라 있어 많은 이들이 그 ‘엽기성’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특히 미성년자들이 음란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인터넷이 생활의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패륜과 변태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고대에는 수간이 그렇게 변태적이거나 엽기적인 행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어, 산양, 소 등은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이런 동물과의 섹스는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는 하나의 계기로 이해되기도 했다. 당연히 패륜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성스러운 행위’로 여겨졌을 법하다.
물론 수간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이슬람 속담 중 ‘메카 순례는 낙타와 성행위를 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메카로 가는 그 길고 긴 여정에서 교통 수단인 낙타와 성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성욕을 해결하고 여행도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일강 유역의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수간을 다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여행기’란 책에는 한 원주민이 나일강에서 암악어와 수간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초원에서는 젊은 양치기들이 성의 탈출구로서 어린 산양을 이용했다고 한다. 성기에 꿀이나 설탕을 발라 산양에게 오럴섹스를 시키는 ‘기교’까지 발휘했다는 것이다.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는 고립된 시골마을에서 못생긴 외모로 ‘왕따’를 당하는 한 남성이 참다 못해 개와 수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의 수간은 보다 예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고대의 수간은 대부분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나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에 떠다니는 온갖 종류의 수간은 인간의 그릇된 성적 욕망이 빚어낸 변태행위에 다름 아니다. 요즘 성에 굶주려 수간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수간은 인간의 행복하고 건전한 섹스를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색다른 섹스를 즐기려는 현대인들의 자기파괴적 욕망의 분출일 뿐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수간이 그렇게 변태적이거나 엽기적인 행위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어, 산양, 소 등은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이런 동물과의 섹스는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유지하는 하나의 계기로 이해되기도 했다. 당연히 패륜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성스러운 행위’로 여겨졌을 법하다.
물론 수간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이슬람 속담 중 ‘메카 순례는 낙타와 성행위를 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메카로 가는 그 길고 긴 여정에서 교통 수단인 낙타와 성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성욕을 해결하고 여행도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일강 유역의 유목민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수간을 다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여행기’란 책에는 한 원주민이 나일강에서 암악어와 수간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아라비아의 오아시스 초원에서는 젊은 양치기들이 성의 탈출구로서 어린 산양을 이용했다고 한다. 성기에 꿀이나 설탕을 발라 산양에게 오럴섹스를 시키는 ‘기교’까지 발휘했다는 것이다.
일본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는 고립된 시골마을에서 못생긴 외모로 ‘왕따’를 당하는 한 남성이 참다 못해 개와 수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의 수간은 보다 예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고대의 수간은 대부분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나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에 떠다니는 온갖 종류의 수간은 인간의 그릇된 성적 욕망이 빚어낸 변태행위에 다름 아니다. 요즘 성에 굶주려 수간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수간은 인간의 행복하고 건전한 섹스를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색다른 섹스를 즐기려는 현대인들의 자기파괴적 욕망의 분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