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조국 근대화 바람으로 ‘초가집도 고치고, 마을 안길도 넓히는’ 새마을사업이 한창이었지만, 우리집은 아직도 보릿고개가
한창이었다. 사진 속의 보리가 빨리 영글어야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보리농사는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요
하나뿐인 밑천이었다.
그해 부모님께서는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짓고 담배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리 가족은
보릿고개를 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근면 덕분에 우리 사남매 모두 사회의 필요한 일꾼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보리 심은 데 보리 나고, 향기로 키운 자식 향기가 난 것이다. 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본인, 형 김갑종(40·공무원), 누이 김위자(34·주부), 아우 김종배(32·공무원)이다.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고향인 경북 안동시 북후면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오랜만에 옛날 사진을 꺼내보니‘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른다.
조국 근대화 바람으로 ‘초가집도 고치고, 마을 안길도 넓히는’ 새마을사업이 한창이었지만, 우리집은 아직도 보릿고개가
한창이었다. 사진 속의 보리가 빨리 영글어야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보리농사는 우리 가족의 생명줄이요
하나뿐인 밑천이었다.
그해 부모님께서는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짓고 담배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리 가족은
보릿고개를 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근면 덕분에 우리 사남매 모두 사회의 필요한 일꾼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보리 심은 데 보리 나고, 향기로 키운 자식 향기가 난 것이다. 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본인, 형 김갑종(40·공무원), 누이 김위자(34·주부), 아우 김종배(32·공무원)이다.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고향인 경북 안동시 북후면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오랜만에 옛날 사진을 꺼내보니‘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