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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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순수, 젊은 화가 두 얼굴

  • 입력2005-03-15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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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과 순수, 젊은 화가 두 얼굴
    아널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현대미술의 원류로 여겨지는 인상주의의 발생을 역사사회학적 배경 아래 서술하고 있다.

    인상주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서구 근대사에 신흥부르주아가 등장함으로써 왕과 귀족의 세력이 몰락하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부르주아의 등장은 미술의 경제구조를 재편하게 되고, 그들의 취미에 맞는 형태로 문학을 비롯한 각 예술들은 변신을 요구받게 된다. 게다가 사진기의 발명으로 인해 미술은 과거와 같은 단순한 모방론에 안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캔버스 안에 새로운 소재와 내용을, 가장 회화적일 수 있는 방법론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자본과 순수, 젊은 화가 두 얼굴
    그러나 이런 사회적 변화에 둔감했던 소위 아카데미라는 보수적 체제는 살롱을 중심으로 한 콩쿠르와 같은 구식 등단체제를 통해 폐쇄적인 경로의 미술가 양산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감수성이 민감한 젊은 학생들은 불만을 품게 되고 급기야 이들 ‘창조적 소수’는 아카데미를 뛰쳐나오게 된다. 그리고 교수의 눈밖에 난 이들은 살롱전과 같은 각종 콩쿠르에 얼굴도 못 내밀게 된다.

    결국 이들은 1874년 사진작가 나다르의 작업장에서‘그들만의 리그’인 앙데팡당 전시회를 개최하고 ‘무명화가 및 조각가 판화가 예술가 협회전’이란 이름을 붙이는데, 이때 출품된 모네의 ‘인상, 해돋이’에 대해 신문기자 르로이가 비꼬아 말한 “정말로 인상적”이라는 조소적인 뉘앙스의 평가를 그들도 받아들여,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장황스럽게 인상주의 발생기를 늘어놓은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미술과 경제와의 관계, 보수적 아카데미와 진보적 작가군의 대립구조면에 있어서 인상주의로부터 100년이 지난 우리의 미술 현실이 그 당시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본과 순수, 젊은 화가 두 얼굴
    소위 70년대 부동산투기 붐으로 인한 복부인-졸부의 등장과 그들의 거대한 평수의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한 그림의 대형화, 그들의 몰 문인화적 취향에 맞춰진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현란한 색채의 동양화 등장. 또한 국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과 대학을 둘러싼 잡음, 그리고 이런 공모전과 아카데미즘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상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공개하려는 각종 그룹들의 난립 등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우리 젊은 작가들의 고투와 소외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해마다 수천 수만의 미대생들이 대학 문을 나서고 있으나 거의가 무력한 실업자로서 남게 되는 현실, 자신이 아카데미의 희생자이면서도 입시학원을 전전하면서 아카데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 오늘날 우리의 미술대학은 이런 사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인식이 부족하다.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직시와 과감한 구조조정,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전환과 변신, 새로운 문화환경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미술의 모색이 시급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 아래 최근 인사동에서 두 가지의 젊은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우선 아시아 태평양 지역 14개국 대학생들의 ‘노키아 아시아 태평양 미술대전’은 세계적인 이동전화 회사의 미술 후원을 통한 기업홍보 전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제 미술교육의 현장까지 거대한 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침투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비해 바로 옆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나라 19개 대학 교수들이 추천한 대학생들의 전시 ‘2001 미술의 향방전’은 이런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아마추어적이며 보수적인 냄새를 풍기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아시아 태평양지역 대학생들의 실력과 성향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술에 대해 순위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경지와 품격은 존재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들 젊은 작가 지망생이 스타가 되도록 비평풍토를 개선하고, 장기적인 후원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또 청년작가를 발굴하여 국제적 경쟁력을 키우자는 얘기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말뿐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자신만의 진실성을 찾는 작가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미적 교육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노키아전-1월 23일까지 인사아트센터(문의 02-736-1020, 2001), 미술의 향방전-동덕아트갤러리(문의 02-732-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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