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라뇨? 전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를 만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겨울이라 농사일도 그리 바쁘지 않을텐데 집에 없는 날이 많았고, 어렵사리 통화가 이루어져도 쉽게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없어 한동안 애를 태우게 하던 그가 미안한 듯, “사무실로 오시죠”라고 했을 때는 새해로 접어들어 전국에 큰 눈이 내리고 난 다음이었다.
경기도 포천군으로 접어들어 철원 쪽으로 한참을 달려가니 그가 일러준 ‘38선 휴게소’가 나타났다. 여기서 40분 정도만 더 가면 민간인 통제지역인 비무장지대(DMZ)가 나온다고 휴게소에서 만난 인근 주민이 일러준다.
휴게소 가까운 곳에 ‘한탄강 네트워크’ 사무실이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흐르는 강물 모양으로 새긴 예쁜 나무간판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이우형씨(36)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웃는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영하 15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지만, 사무실엔 달랑 전기난로가 하나. 실내에서도 두꺼운 점퍼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던 이씨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 전형적인 농촌 총각(그는 아직 미혼이다)이었다.
대학교수들도 자문하는 지역 문화재 전문가
이씨는 참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무슨 말에도 빙긋이 웃기만 할 뿐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답답할 정도로 말을 아꼈다. 젊은이들이 속속 떠나버린 고향에서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열심히 농사짓고 시간 나면 여기저기 정처없이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이씨. 그에게는 ‘이도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향토사학자’ ‘지역사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포천에서 나고 자랐고, 고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게 됐을까. 그것은 이 지역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과 지식 때문이었다.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농사짓는 틈틈이 문화유적 답사를 다니면서 포천군뿐 아니라 경기 북부, 강원지역까지 유물`-`유적은 물론 풍속`-`지리`-`역사 등을 훤히 꿰뚫게 되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찾는 대학교수나 박물관 관계자, 문화재 전문가들은 꼭 이씨를 찾는다.
한탄강이나 임진강 주변, 휴전선 철책 부근 등 경기 강원 북부지역의 문화유적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발견, 확인됐다. 포천 영송리 유적,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오는 시기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파주 주월리 유적, 최근 들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철원의 궁예 도성 등이 대표적이다. “영송리 유적의 경우 선사시대 유적지로 눈여겨 봐둔 곳이었는데, 어느 날 예비군훈련을 받으면서 보니 포클레인으로 무참히 파헤쳐지고 있었어요. 그대로 달려나가 저지시켰는데, 사방이 토기 파편이더군요.”
스스로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하는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산천을 돌아다니고 문헌과 자료를 수집하면서 오랫동안 혼자서 조사`-`연구활동을 해왔다. 농사일이 한가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고, 튼튼한 등산화를 구해 신고는 답사길에 올랐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1년에 등산화 세 켤레씩 버리는 건 보통이었다. 그렇게 산과 들을 헤매면서 청춘을 다 보냈지만,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이뤄야 할 목표를 세워두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이씨는, 그러나 광포한 전쟁과 무심한 세월 속에 실체를 감추고 있던 유적과 유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집이 한탄강 근처다 보니 어릴 때도 주변에 석탑이나 산성 같은 것들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데 호기심이 많아 책도 찾아보고 어른들께 여쭤보고 하다가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게 된 거죠.”
지역사회 향토자료집, 군지 발간 등에 참여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된 이씨는 91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개년 계획으로 군사보호구역 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할 때 전문가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DMZ를 출입하면서 궁예 도성 등 유물 유적 71건을 발견,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영토싸움이 치열했던 것을 비롯해, 우리 민족 역사의 중심이었던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우리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휴전선 일대는 문화유적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도 다 중요하지만 이 지역을 잘 보존해야만 우리나라의 시대별 역사가 제대로 간직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삼국시대 돌성으로 추정되는 성재산성을 조사할 때는 산성의 70%가 지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큰 곤란을 겪었다. 조사반은 지뢰제거반과 함께 하루 30∼40cm씩 지뢰를 제거해 나갔는데,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탓에 몇 십cm만 나아가도 지뢰탐지기가 ‘삑삑’ 소리를 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성벽에 이르렀을 때 조사단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DMZ 내의 문화유적들은 이렇게 어렵사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쯤 산과 들 어딘가를 헤매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가 이렇듯 사무실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은 얼마 전 발족한 ‘한탄강 네트워크’의 총무팀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연천-포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주민들은 오염돼 가는 한탄강을 살리고 이들 지역의 신문고 구실을 하기 위해 ‘한탄강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후 이 단체는 인터넷 홈페이지(www.hantanet.com) 개설과 함께 월간 소식지 ‘한탄강’을 발행하면서 회원수 150명이 넘는 지역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교수, 교사, 공무원, 농민, 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한탄강 살리기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이씨는 지역사 연구 담당으로 홈페이지 관리와 소식지 발간을 책임지고 있다. 누구보다 지역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고 지역문화재와 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이우형씨가 조직의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역사에 중요한 고대 유적지로, 또 통일시대 남북교류의 중심지로 점쳐지고 있는 이곳이 주위에 난립한 공장과 무분별한 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탄강의 상황을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문화 환경답사도 추진하면서 한탄강 지킴이 노릇을 해 나갈 겁니다.”
지금 한탄강은 제2의 동강 논쟁으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한탄강과 그 지류인 영평천에 홍수조절과 용수공급을 위한 다목적댐 건설계획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탄강을 젖줄로 삼아 살아가는 포천 연천 철원지역의 주민들은 한결같이 “한탄강을 제2의 동강으로 만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탄강 네트워크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댐 건설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현지조사에 나서는 등 조직적인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미 3급수로 전락한 한탄강을 막는다면 오염도가 위험수위에 이를 것입니다. 한탄강이야말로 생태, 분단, 통일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민족의 젖줄인데, 이런 생태계의 보고가 사람들의 인식부족 때문에 오염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서서 이쪽저쪽의 바위와 산을 가리키며 그 유래와 전설에 대해 설명해주던 이씨는 사진촬영이 끝난 뒤에도 차가운 강바람을 맞고 서서 한동안 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땅을 사랑하고, 강을 사랑하는 서른 여섯 농군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강변은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다.
경기도 포천군으로 접어들어 철원 쪽으로 한참을 달려가니 그가 일러준 ‘38선 휴게소’가 나타났다. 여기서 40분 정도만 더 가면 민간인 통제지역인 비무장지대(DMZ)가 나온다고 휴게소에서 만난 인근 주민이 일러준다.
휴게소 가까운 곳에 ‘한탄강 네트워크’ 사무실이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흐르는 강물 모양으로 새긴 예쁜 나무간판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니 이우형씨(36)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웃는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영하 15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지만, 사무실엔 달랑 전기난로가 하나. 실내에서도 두꺼운 점퍼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던 이씨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단단해 보이는 체격이 전형적인 농촌 총각(그는 아직 미혼이다)이었다.
대학교수들도 자문하는 지역 문화재 전문가
이씨는 참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무슨 말에도 빙긋이 웃기만 할 뿐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답답할 정도로 말을 아꼈다. 젊은이들이 속속 떠나버린 고향에서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열심히 농사짓고 시간 나면 여기저기 정처없이 돌아다닌다”고 말하는 이씨. 그에게는 ‘이도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향토사학자’ ‘지역사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포천에서 나고 자랐고, 고졸 학력이 전부인 그가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게 됐을까. 그것은 이 지역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과 지식 때문이었다.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농사짓는 틈틈이 문화유적 답사를 다니면서 포천군뿐 아니라 경기 북부, 강원지역까지 유물`-`유적은 물론 풍속`-`지리`-`역사 등을 훤히 꿰뚫게 되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찾는 대학교수나 박물관 관계자, 문화재 전문가들은 꼭 이씨를 찾는다.
한탄강이나 임진강 주변, 휴전선 철책 부근 등 경기 강원 북부지역의 문화유적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발견, 확인됐다. 포천 영송리 유적,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오는 시기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파주 주월리 유적, 최근 들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철원의 궁예 도성 등이 대표적이다. “영송리 유적의 경우 선사시대 유적지로 눈여겨 봐둔 곳이었는데, 어느 날 예비군훈련을 받으면서 보니 포클레인으로 무참히 파헤쳐지고 있었어요. 그대로 달려나가 저지시켰는데, 사방이 토기 파편이더군요.”
스스로 ‘역마살이 끼었다’고 말하는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산천을 돌아다니고 문헌과 자료를 수집하면서 오랫동안 혼자서 조사`-`연구활동을 해왔다. 농사일이 한가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고, 튼튼한 등산화를 구해 신고는 답사길에 올랐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1년에 등산화 세 켤레씩 버리는 건 보통이었다. 그렇게 산과 들을 헤매면서 청춘을 다 보냈지만,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이뤄야 할 목표를 세워두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이씨는, 그러나 광포한 전쟁과 무심한 세월 속에 실체를 감추고 있던 유적과 유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집이 한탄강 근처다 보니 어릴 때도 주변에 석탑이나 산성 같은 것들이 많았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데 호기심이 많아 책도 찾아보고 어른들께 여쭤보고 하다가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게 된 거죠.”
지역사회 향토자료집, 군지 발간 등에 참여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된 이씨는 91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개년 계획으로 군사보호구역 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할 때 전문가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DMZ를 출입하면서 궁예 도성 등 유물 유적 71건을 발견,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영토싸움이 치열했던 것을 비롯해, 우리 민족 역사의 중심이었던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면 우리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휴전선 일대는 문화유적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도 다 중요하지만 이 지역을 잘 보존해야만 우리나라의 시대별 역사가 제대로 간직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삼국시대 돌성으로 추정되는 성재산성을 조사할 때는 산성의 70%가 지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큰 곤란을 겪었다. 조사반은 지뢰제거반과 함께 하루 30∼40cm씩 지뢰를 제거해 나갔는데,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탓에 몇 십cm만 나아가도 지뢰탐지기가 ‘삑삑’ 소리를 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성벽에 이르렀을 때 조사단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DMZ 내의 문화유적들은 이렇게 어렵사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쯤 산과 들 어딘가를 헤매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그가 이렇듯 사무실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은 얼마 전 발족한 ‘한탄강 네트워크’의 총무팀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연천-포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주민들은 오염돼 가는 한탄강을 살리고 이들 지역의 신문고 구실을 하기 위해 ‘한탄강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후 이 단체는 인터넷 홈페이지(www.hantanet.com) 개설과 함께 월간 소식지 ‘한탄강’을 발행하면서 회원수 150명이 넘는 지역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교수, 교사, 공무원, 농민, 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한탄강 살리기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데, 이씨는 지역사 연구 담당으로 홈페이지 관리와 소식지 발간을 책임지고 있다. 누구보다 지역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고 지역문화재와 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는 이우형씨가 조직의 큰 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역사에 중요한 고대 유적지로, 또 통일시대 남북교류의 중심지로 점쳐지고 있는 이곳이 주위에 난립한 공장과 무분별한 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탄강의 상황을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문화 환경답사도 추진하면서 한탄강 지킴이 노릇을 해 나갈 겁니다.”
지금 한탄강은 제2의 동강 논쟁으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한탄강과 그 지류인 영평천에 홍수조절과 용수공급을 위한 다목적댐 건설계획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탄강을 젖줄로 삼아 살아가는 포천 연천 철원지역의 주민들은 한결같이 “한탄강을 제2의 동강으로 만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탄강 네트워크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댐 건설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현지조사에 나서는 등 조직적인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미 3급수로 전락한 한탄강을 막는다면 오염도가 위험수위에 이를 것입니다. 한탄강이야말로 생태, 분단, 통일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민족의 젖줄인데, 이런 생태계의 보고가 사람들의 인식부족 때문에 오염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서서 이쪽저쪽의 바위와 산을 가리키며 그 유래와 전설에 대해 설명해주던 이씨는 사진촬영이 끝난 뒤에도 차가운 강바람을 맞고 서서 한동안 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땅을 사랑하고, 강을 사랑하는 서른 여섯 농군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강변은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