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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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살리다 기업 다 죽는다”

김영호 前 산업자원부 장관… 구조조정도 산업경쟁력 강화 차원서 추진해야

  • 입력2005-03-09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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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살리다 기업 다 죽는다”
    지난해 8월 개각에서 물러난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재임 당시 금융정책과 산업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쌍두마차론’을 설파하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1월5일 김 전 장관을 만나 바람직한 산업정책의 방향에 관해 들어보았다. 김 전 장관은 산업정책이 결여된 금융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산업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3년간을 평가한다면.

    “김대중 정부는 한마디로 금융을 정비해놓고 나서 금융이 산업을 구제하도록 한다는 접근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면 은행을 살리는 동안 기업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 BIS비율을 강조하다 보니 은행이 기업에 돈을 안 풀었다. 은행을 살리는 메커니즘에 기업을 죽이는 요소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을 살려낸 뒤 은행의 돈이 기업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은행들은 포트폴리오 투자에 집중할 뿐 기업에 돈을 대주지 않는다.”

    재임 당시 산업정책과 관련해 주력했던 점은.

    “취임해보니 제조업은 완전히 서자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장했고 IT산업과 굴뚝산업의 결합을 떠들고 다녔다. 한편으로는 금융과 산업이 쌍두마차를 이뤄서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 금년도 산업기술분야 예산이 2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범부처적으로 산업경쟁력 강화의 틀을 형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실패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특정한 사람을 욕해야 하니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청와대 산업담당 비서관자리조차도 산업을 모르는 재경부 출신의 관료가 앉아 있으니 무엇이 되겠는가. 돈줄은 기획예산처에서 쥐고 있고 법적 기반은 재경부에 있었다. 그쪽에서 안 놓아주면 끝이다.”

    구조조정과 산업정책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구조조정을 하고 난 뒤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채권단이 삼성차를 매각할 때는 무조건 가장 좋은 값을 주는 업체에 넘기고 싶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값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해당 차종에 관한 한 아시아 또는 글로벌 플랫폼을 한국에 둘 수 있는 방안을 채택해야 한다. 이것이 고용을 증가시키고 수출 증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이다.”

    과연 산업정책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미국의 경우를 보라. 미국이 산업정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산업을 위해 미국 정부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산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인프라를 제공하고 기술개발 시스템, 정보 시스템 등을 구축해 주고 있다. 일본은 기업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에 대해 직접 지원했고 미국은 기업들의 자생력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지원하지 않은 것뿐이다. 우리나라도 인프라 측면에서 미국만큼은 해줘야 한다. 르노가 삼성을 인수할 때도 프랑스 정부는 올코트 프레싱을 펼쳤다. 이러한 것이 바로 산업정책이다.”

    재계에서는 민관합동의 경쟁력 강화 기구를 제안하고 있는데….

    “재임 당시에도 전경련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산업경쟁력 강화는 전경련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도 두루 참여해야 하고 산학협동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노동자 세력이 경쟁력 강화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쟁력 강화 전략에서 노동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데 노동자 세력이 빠진 경쟁력 강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말하자면 범국가적인 경쟁력 강화 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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