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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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시린 젊은날의 비망록

  • 입력2005-03-09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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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시린 젊은날의 비망록
    ’맑은 386’이라는 트레이드마크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포크록밴드 동물원이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이 날선 겨울에 여덟번째 앨범 ‘동화’(冬畵)를 가지고 돌아왔다.

    네번째 트랙 ‘새 옷’에서 유준열이 노래하듯이 ‘방황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새 옷을 입은’ 이 30대 청년 3명의 노래집은 꽤 짧지 않은 침묵을 기다려 온 이들 세대의 팬들에게는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데뷔한 이 밴드는 80년대와 90년대의 터널을 지나 새로이 맞은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순결한 미의식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리더의 카리스마가 없는 밴드, 거품 같은 인기에 목매는 매니지먼트를 싱긋 웃으며 거부해 온 이 밴드는 우리 대중음악계에 ‘착하지만 똑똑한 시민’의 이미지를 파종한 최초의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광수생각’의 작가 박광수가 이 앨범을 위해 특별히 제공한 단편만화를 컨셉트로 이 앨범은 하나의 작은 뮤지컬과 같다. 시청 앞 지하철 정거장에서 변해버린 옛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젊은 시절의 가슴 시린 비망록이라 하겠다.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함 사이로 배영길이 숨가쁘게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를 읊조리면 세 멤버 모두가 입을 모아 ‘작아지는 꿈’을 이마를 가볍게 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리고 목에 멘 박기영이 씁쓸하게 토해내는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와 ‘너에게 감사해’가 이어진다.

    가슴시린 젊은날의 비망록
    이 앨범은 화면이 없는, 그러나 가슴시린 영화다. 여기엔 세상의 쓴맛과 약간의 단맛을 본 20~30대뿐만 아니라 그 위, 아래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약간 지루한 두세번째 트랙의 지지부진함만 너그러이 넘어간다면….



    동물원의 최대 위기는 ‘널 사랑하겠어’가 담겼던 여섯번째 앨범을 끝으로 많은 대표곡을 만들고 불렀던 김창기가 이탈했을 때였다. 정신과 의사로 개업한 그는 지난해 중반 ‘하강의 미학’이라는 타이틀로 솔로 앨범을 선보이면서 응축된 고독을 훌륭하게 선율로 풀어냈지만 시장은 홀로 선 아티스트를 거부했다. 아직 우리의 시장 논리는 욕망을 비워낸 자들을 화형대로 보내는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동물원의 이 신작은 그래서 가슴이 아련해진다. 김창기가 있었다면 이 아련한 서정미는 더욱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일종의 미련 같은 것. 우리는 그가 왜 동물원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다음 동물원 앨범에 다시 어제의 지음(知音)들과 목소리를 함께하기를 소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동물원만큼은 영원히 한 길을 가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의 숨은 백미 ‘씽씽씽’의 여운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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