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의 기초에는 근본적인 논쟁이 있다. 의권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민이 의사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일종의 의권재민론(醫權在民論)과 의사의 독점적-배타적 진료권은 이미 사회로부터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획득된 것이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연히 쟁취해야 된다는 의권쟁취론(醫權爭取論)이 그것이다. 물론 의권쟁취론자들도 의권이 곧 환권(患權)이기 때문에 의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은 환자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보건에 관한 권리나 건강권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작정 진료를 거부하는 현재의 투쟁방식이 그러하고, 의사협회의 대정부요구안 중 일부도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공중보건의들의 사병신분 및 급여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요구나, 행정고시에 의무직을 신설하여 응시자격을 의사로만 한정해달라는 요구가 그런 것들이다. 역시 사병신분을 갖는 공익법무관들도 있고, 어느 한 특정직업만을 위해 행정고시 직렬을 신설한다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쯤은 의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당시 의사협회와 약사회는 의보적용환자부터 의약분업을 시행하기로 노력하자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의사협회는 이 합의내용을 무효화시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94년 약사법 개정 당시 99년 7월까지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규정하였다가 작년에 1년간 연기했다. 작년 5월10일 시민대책위원회의 안에 따라 의약분업에 대한 기본합의서까지 작성됐지만 이 또한 의사협회에 의해 무시됐다.
헌법상 국민의 보건권에 관심이 없기로는 의약분업사태에 대처하는 정부나 집권여당의 태도도 매한가지로 보인다. 헌법이 보건에 관한 규정까지 둔 취지는 국가가 적극적인 보건정책을 통해 국민의 건강생활을 보호할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은 이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 ‘준비 부족’을 이유로 의약분업을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해집단의 예상되는 반발 등 골치아픈 문제 때문에 국민건강권이야 어찌됐든 의약분업을 연기해온 역대 정부의 변명이 ‘준비 부족’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이해집단의 반발 때문에 원칙을 훼손해왔다는 지적을 받는 김대중 정부식 개혁의 한계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료부문의 개혁이 의료소비자인 국민과 직접적인 이해집단인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여느 분야보다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정부 개혁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뉴질랜드에서도 공공의료의 비중을 줄이고 민간의료보험시장을 확대해 나가려는 정책은 시행 4년 만에 수정됐다. 미국은 서구사회에서 국민의료보험이 확립돼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20세기 전반 미국의 사회개혁가들은 최소한 세 차례에 걸쳐 의료보험을 실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의권보다 국민 건강권 우선… 정책 일관성 유지돼야
미국의사협회(AMA)는 의료보험제도 하에서의 의사에 대한 지불방법이 의사들의 전문적 자율성과 수입에 손실을 줄 것이기 때문에 반대했다. 현재 미국인 약 4600만명 정도는 민간보험에도 들지 못하고 사회보장혜택도 받지 못한다. 일본에서도 의약분업은 의사들의 반대로 원칙적으로는 의약분업을 규정하고 단서에서 광범위한 예외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절충됐다.
최근 의료개혁시민연합의 의약분업 실태조사가 있었다. 시민들은 처방전을 통해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서 알게 되고 복약지도도 자세히 받게 되며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미 의약분업의 장점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물론 불편한 점에 대한 호소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철저한 준비와 의약계의 협조를 통해 극복이 가능한 절차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이미 김대중정부는 집권 초기 100대 과제 속에서 의약분업의 실시를 약속했다. 의약분업은 의권보다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김대중정부가 약속한 100대 과제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정책에 대한 일관성 유지와 신뢰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라도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보건에 관한 권리나 건강권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작정 진료를 거부하는 현재의 투쟁방식이 그러하고, 의사협회의 대정부요구안 중 일부도 그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공중보건의들의 사병신분 및 급여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요구나, 행정고시에 의무직을 신설하여 응시자격을 의사로만 한정해달라는 요구가 그런 것들이다. 역시 사병신분을 갖는 공익법무관들도 있고, 어느 한 특정직업만을 위해 행정고시 직렬을 신설한다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쯤은 의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당시 의사협회와 약사회는 의보적용환자부터 의약분업을 시행하기로 노력하자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의사협회는 이 합의내용을 무효화시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94년 약사법 개정 당시 99년 7월까지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규정하였다가 작년에 1년간 연기했다. 작년 5월10일 시민대책위원회의 안에 따라 의약분업에 대한 기본합의서까지 작성됐지만 이 또한 의사협회에 의해 무시됐다.
헌법상 국민의 보건권에 관심이 없기로는 의약분업사태에 대처하는 정부나 집권여당의 태도도 매한가지로 보인다. 헌법이 보건에 관한 규정까지 둔 취지는 국가가 적극적인 보건정책을 통해 국민의 건강생활을 보호할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은 이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 ‘준비 부족’을 이유로 의약분업을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해집단의 예상되는 반발 등 골치아픈 문제 때문에 국민건강권이야 어찌됐든 의약분업을 연기해온 역대 정부의 변명이 ‘준비 부족’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이해집단의 반발 때문에 원칙을 훼손해왔다는 지적을 받는 김대중 정부식 개혁의 한계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료부문의 개혁이 의료소비자인 국민과 직접적인 이해집단인 의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여느 분야보다 쉽지 않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정부 개혁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뉴질랜드에서도 공공의료의 비중을 줄이고 민간의료보험시장을 확대해 나가려는 정책은 시행 4년 만에 수정됐다. 미국은 서구사회에서 국민의료보험이 확립돼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20세기 전반 미국의 사회개혁가들은 최소한 세 차례에 걸쳐 의료보험을 실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의권보다 국민 건강권 우선… 정책 일관성 유지돼야
미국의사협회(AMA)는 의료보험제도 하에서의 의사에 대한 지불방법이 의사들의 전문적 자율성과 수입에 손실을 줄 것이기 때문에 반대했다. 현재 미국인 약 4600만명 정도는 민간보험에도 들지 못하고 사회보장혜택도 받지 못한다. 일본에서도 의약분업은 의사들의 반대로 원칙적으로는 의약분업을 규정하고 단서에서 광범위한 예외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절충됐다.
최근 의료개혁시민연합의 의약분업 실태조사가 있었다. 시민들은 처방전을 통해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서 알게 되고 복약지도도 자세히 받게 되며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미 의약분업의 장점에 대해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물론 불편한 점에 대한 호소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철저한 준비와 의약계의 협조를 통해 극복이 가능한 절차적인 문제였을 뿐이다.
이미 김대중정부는 집권 초기 100대 과제 속에서 의약분업의 실시를 약속했다. 의약분업은 의권보다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김대중정부가 약속한 100대 과제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정책에 대한 일관성 유지와 신뢰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라도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