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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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는 ‘문화 올림픽’도 있다

자국 문화 알리는 또 하나의 각축장…조수미 공연, 조선시대 명품전 돋보여

  • 입력2005-06-22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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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에는 ‘문화 올림픽’도 있다
    지난 9월14일 시드니 올림픽 전야. 호주의 상징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올림픽 축하공연의 ‘프리마 돈나’는 단연 소프라노 조수미였다. 맹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빚어내는 조수미의 화음은 오페라 하우스에 모인 전 세계인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45개 행사장서 성황 4년간 준비

    성화가 오페라 하우스를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개막된 ‘수미 조 & 보첼리 조인트콘서트’는 호주에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두 성악가의 축하 공연일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올림픽인 ‘문화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전세계 예술가 4000여명이 참가한 ‘시드니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은 문화 올림픽의 핵심 행사. 올림픽 개막 한달 전인 지난 8월18일, 시작과 동시에 각 국의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지상 최대의 문화이벤트’라는 극찬을 받았다.

    문화 올림픽은 음악회, 오페라, 연극, 무용, 비주얼 아트를 포함한 미술 전람회, 문화 유물 전시회, 거리의 축제 등을 포함한다. 준비기간만 4년, 행사장도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45개소에 이른다.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최정예이듯,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에도 각국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예술인들만 참가했다. 조수미와 보첼리를 필두로 리카르도 무티, 로린 마젤 등의 지휘자들과 게일 에드워드 댄스 그룹 등 세계 정상급 예술인들이 시드니로 총집합한 것.

    지난 97년부터 ‘4개년 문화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로 장장 4년 동안 호주 전역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는 사실상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을 향한 대장정이었다. 국내에서도 97년 김매자씨가 이끄는 창무회 무용단을 시작으로 김덕수 사물놀이패, 정경화 장영주 장한나 등 한국 출신 예술가들이 호주의 각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특히 올림픽 전야 공연 후 스테이트 시어터에서 독창회를 가진 조수미는 ‘세기의 소프라노’라는 찬사에 걸맞게 신기에 가까운 ‘콜로라투라’ 창법으로 올림픽 시티즌들을 매료시켰다. 조수미의 공연을 지켜본 호주 국영 ABC-FM의 크리스토퍼 로렌스는 “조수미는 명성 그대로다. 그녀가 왜 호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수미 조 스페셜’을 몇년째 계속하고 있다.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을 통해 주 시드니 총영사관은 ‘문화 외교’의 중요성을 또 한번 절감했다. 문화적 뒷받침이 없는 외교 통상은 오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 사실로 입증된 것. 자국의 전통문화로 포장하지 않은 상품은 문화의 국제시장인 이곳에서도 국적 없는 ‘유사품’ 취급을 당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빛나는 문화 유산이 있고, 그 심오한 예술성과 독창성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올림픽이 개최되는 시드니에서 올림픽 시티즌들의 시선을 다시 한번 끌어 모으고 있는 것. 지난 9월8일부터 시드니 파워하우스 뮤지엄에서 전시되고 있는 ‘땅, 영혼, 불’이라는 부제의 ‘조선시대 명품전’도 바로 그런 행사의 일환.

    “국보 1점과 보물 2점이 포함된 중요 문화 유산이라 시드니로 유치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이 전시회를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다행히 우리 명품들을 좋은 공간에서 전시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지난해부터 전시회를 준비한 백기문 주 시드니 총영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특히 “전시장을 찾은 호주인들이 한국 도자기가 중국 도자기보다 더 우월하다고 평가하면서, 우리 도자기의 독창적인 선과 빛깔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올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전시품의 경호문제 때문에 호주 순회전을 포기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전시장을 찾은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 총감독 리오 쇼필드씨는 “문화 올림픽엔 금메달이 없지만 만약에 금메달을 줄 수 있다면 조선백자에 주고 싶다”면서 “첨단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선시대 명품전의 도우미 역할로 나선 사물놀이팀은 말이 찬조출연이지 사물놀이 강연회가 별도로 마련될 정도로 관람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림픽 아트 페스티벌의 공식행사가 ‘명품전’인지 ‘사물놀이’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

    아트 페스티벌은 문화 올림픽의 핵심 행사답게 각 나라의 경쟁 또한 뜨겁다. 이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단연 돋보이는 두 축으로, 유럽쪽 공식행사장에서는 ‘동양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돈이 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는 특성에 어울리게 일본은 이곳에서도 역시 문화상술을 펼치고 있다.

    ‘저패니메’(Japanime). 일본이 문화 올림픽에 출전시킨 전략 품목은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 전시회였다. 문화수출의 종주국으로 올림픽 시장에 첨단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런 문화의 각축장에 주최국인 호주가 빠질 리 없다. 호주에도 10만년을 헤아리는 전통문화가 있다. 호주는 원주민 ‘애버리진’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현대감각에 맞게 포장해 내놓았다. 지난 9월19일부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갖기 시작한 뱅가라 댄스 시어터(Bangarra Dance Theater)의 ‘스킨’(Skin)이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 ‘은신처’라는 부제가 붙은 전반부에선 이상향을 찾아 호주 내륙 깊숙한 숲을 떠도는 여인들을 그렸고, 후반부에선 ‘창’이라는 주제로 문명세계인 도회지를 떠도는 원주민 남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묘사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점화에 원주민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을 등장시킨 시드니올림픽조직위와 마찬가지로 아트 페스티벌 조직위도 원주민을 등장시켜 호주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동안 유럽의 아류로 하찮게 평가되었던 호주의 문화를 ‘애버리진’ 문화와 연결시켜 새롭게 재창조하겠다는 ‘뉴 오스트레일리아’ 정책의 일환이다.

    이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 호주 문화계의 진디워라벅(Jindyworobak) 문화운동과 일맥 상통한다. 이 운동은 ‘호주예술가들이 이주문화인 서구문화에 함몰되기보다 10만년을 헤아리는 애버리진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호주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자’는 일종의 정체성 찾기 운동이었다.

    시드니 올림픽의 열기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메달 경쟁에서 선두 그룹을 이루는 나라들은 연일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 선수들은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는 잊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의 올림픽인 ‘문화 올림픽’에서 받은 감동 역시 ‘올림픽 경기’ 이상의 여운을 남기며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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