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디지털이다. 아날로그시대를 딛고 디지털시대의 장을 연 지금은 여성이 주도하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시대’다. 왜 그런가.
첫째, 디지털(digital)은 원래 ‘손가락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의 뜻을 담고 있다. 팔의 힘(완력)이 아니라 손으로, 손가락으로 하는 일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다. 한 예로 컴퓨터의 자판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글쓰기를 하는 여성필자들이 대거 두각을 나타낸 일을 들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속에서 여성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고, 실제로 여성이 ‘역사의 기록자’가 되면서 이제까지 남성이 기록자가 되었던 ‘역사’(history)에서 여성이 기록자로 화한 ‘역사’(herstory)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아날로그시대가 1 더하기 1은 2라는 ‘축적’의 시대이자 한정생산의 시대라면 디지털은 1과 0을 통한 무한대의 생산을 약속하는 시대다. 바로 그 예측불가능이라는 시대적 성격은 다분히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남성들은 아날로그적 판짜기에 익숙했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인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바로 여성이야말로 새 판을 짤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성(gender)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고 유연성과 창의성을 갖춘 여성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총론은 단 하나이다. ‘여성답게-여성’으로 살면 된다. 더 이상 여성들은 명예나 남성적인 성공의 기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들의 폭력적이며 복잡하고 권력 지향적인 방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제 여성적이라는 말은 유능함과 지혜로움과 이성적인 혹은 성공이라는 표현과 동일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디지털혁명 중이다. 앨빈 토플러는 디지털혁명도 엄연한 혁명이므로 이 혁명의 와중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희생자가 반드시 있다고 했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생각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자는 지배당하고 피 흘리며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토플러의 말을 생각하면 여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승리자인 동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피해자라는 각기 다른 운명을 살아갈 ‘쌍둥이 자매’와 같다.
성(gender)이 아니라 정보화의 나이(age)만이 문제가 되는 인터넷 혁명시대에 젊은 여성들은 세상을 다 가질 것이지만, 늙은 여성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대 이후 여성들에 대한 국가적인 인터넷 교육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엔 한 개인이 정보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하는 ‘개인적 노력’과 ‘책임’으로 남을 것이다.
정보화에 있어 10대와 20대의 경우는 남녀의 차이가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고, 몇몇 조사에서는 여성들이 같은 비율로 포진하고 있다. 이제 여성은 디지털시대의 강자로서 화려하게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셈이다. 이제 여성들은 ‘전략적 사고’로써 이 디지털시대를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
첫째, 여전히 배고픈 개가 돼라. 오랫동안 여성은 ‘헝그리 정신’을 갖고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여성들의 상대는 배고픈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대는 성을 초월한 남녀이다. 이제 여성들은 처음으로 힘센 개와 싸우는 ‘메인게임’을 시작했다. 힘센 개와 배고픈 개가 싸우면 언제나 당연히 배고픈 개가 이긴다. 위기의식과 싸움꾼 정신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두번째, 전천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나는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재벌의 반열(?)에 오른 30대 여사장을 만났다. 그녀는 정말 눈부신 성공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야기 가운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짧은 탓도 있어 내내 아쉬웠다. 그녀의 성공의 원인이 손에 꽉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뒤 그녀의 동창을 통해 뒷이야기를 듣고 그 성공비결을 알아낼 수 있었다.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 때 집안이 폭삭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가족은 학교 앞에 구멍가게를 냈다. 엄마는 군것질거리를 팔고 자식들은 방과후 친구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좌판을 깔고 자질구레한 물건을 팔았다는 것이다. 우리 상식으로, 그것도 딸아이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고, 아이들 역시 물건팔기에 나선 것은 ‘허, 참’ 싶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성공의 원천이 있다고 나는 판단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전천후 인간’으로 그녀는 길러진 것이다. 아무리 벤처붐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녀는 굳건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를 용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가족제도와 결혼, 남성에 대해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지금 전세계는 모계사회로 진행 중이다.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판이 새로 짜이고 있다. 여성을 중심으로 남성은 원시수렵시대처럼 왔다가 가고, 또 오는 그런 모계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이미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보편화된 사실혼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결혼은 생애 여러 번 올 수 있다. 또한 이혼은 보편화되며 아이는 여성을 중심으로 양육될 것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족과 여성성의 문제에 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네번째는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성적 구조인 이른바 피라미드 구조는 권위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은 권위를 부정한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수백명에 이르는 성공한 벤처기업 사장 가운데 비서를 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이메일이나 메시지로 사내 외 업무처리를 하고, 자신의 스케줄도 입력시킨다. 실제로 비서라는 직종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서구의 경영전문가들도 꽤 많다. 디지털시대에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아니라 어떤 권위에도 오염되지 않는 보통사람이 조직을 이끌어갈 것이다. 비서 없이 1대 1 접속의 문을 열어놓은 사람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섯번째는 전략적으로 움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가슴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여성이 실수하고 지배당하고 좌절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전략이란 무엇인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행동지침을 이성적으로 수립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과감하게 나아가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이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의 문제”라고도 말했다. 과감한 가지치기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구사하는지가 바로 21세기 최고의 전략이 될 것이다.
여섯번째는 ‘옮겨다니라’, ‘떠돌이가 돼라’는 것이다.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다. 여성은 그동안 ‘정주성-정착성’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길을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끝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21세기를 제대로 된 여성의 시대로 만들 수 있다. 나라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성의 경제 역시 붕괴되었다. 여성이 자유롭게 움직여서는 안 될 그 어떤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
일곱번째, 공부하고 돈을 벌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위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두 가지뿐이다. 남자들이 알고 있는 것을 몰랐고, 남자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무식했고 돈이 없었다. 지식과 돈을 갖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인류가 이렇게 빨리 이처럼 많은 변화를 짧은 시간 내에 겪은 일은 없었다. 여성에게는 특히 그렇다. 윌리엄 기브슨은 “미래는 이미 다가왔지만 누구에게나 고르게 감지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나 특히 여성에게 중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첫째, 디지털(digital)은 원래 ‘손가락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의 뜻을 담고 있다. 팔의 힘(완력)이 아니라 손으로, 손가락으로 하는 일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다. 한 예로 컴퓨터의 자판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글쓰기를 하는 여성필자들이 대거 두각을 나타낸 일을 들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속에서 여성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고, 실제로 여성이 ‘역사의 기록자’가 되면서 이제까지 남성이 기록자가 되었던 ‘역사’(history)에서 여성이 기록자로 화한 ‘역사’(herstory)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아날로그시대가 1 더하기 1은 2라는 ‘축적’의 시대이자 한정생산의 시대라면 디지털은 1과 0을 통한 무한대의 생산을 약속하는 시대다. 바로 그 예측불가능이라는 시대적 성격은 다분히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남성들은 아날로그적 판짜기에 익숙했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인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바로 여성이야말로 새 판을 짤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성(gender)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고 유연성과 창의성을 갖춘 여성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 총론은 단 하나이다. ‘여성답게-여성’으로 살면 된다. 더 이상 여성들은 명예나 남성적인 성공의 기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들의 폭력적이며 복잡하고 권력 지향적인 방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제 여성적이라는 말은 유능함과 지혜로움과 이성적인 혹은 성공이라는 표현과 동일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디지털혁명 중이다. 앨빈 토플러는 디지털혁명도 엄연한 혁명이므로 이 혁명의 와중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희생자가 반드시 있다고 했다. 앨빈 토플러의 말을 생각하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자는 지배당하고 피 흘리며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토플러의 말을 생각하면 여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승리자인 동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피해자라는 각기 다른 운명을 살아갈 ‘쌍둥이 자매’와 같다.
성(gender)이 아니라 정보화의 나이(age)만이 문제가 되는 인터넷 혁명시대에 젊은 여성들은 세상을 다 가질 것이지만, 늙은 여성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0대 이후 여성들에 대한 국가적인 인터넷 교육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엔 한 개인이 정보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하는 ‘개인적 노력’과 ‘책임’으로 남을 것이다.
정보화에 있어 10대와 20대의 경우는 남녀의 차이가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고, 몇몇 조사에서는 여성들이 같은 비율로 포진하고 있다. 이제 여성은 디지털시대의 강자로서 화려하게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셈이다. 이제 여성들은 ‘전략적 사고’로써 이 디지털시대를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
첫째, 여전히 배고픈 개가 돼라. 오랫동안 여성은 ‘헝그리 정신’을 갖고 잡초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여성들의 상대는 배고픈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대는 성을 초월한 남녀이다. 이제 여성들은 처음으로 힘센 개와 싸우는 ‘메인게임’을 시작했다. 힘센 개와 배고픈 개가 싸우면 언제나 당연히 배고픈 개가 이긴다. 위기의식과 싸움꾼 정신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두번째, 전천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나는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재벌의 반열(?)에 오른 30대 여사장을 만났다. 그녀는 정말 눈부신 성공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야기 가운데 특별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짧은 탓도 있어 내내 아쉬웠다. 그녀의 성공의 원인이 손에 꽉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뒤 그녀의 동창을 통해 뒷이야기를 듣고 그 성공비결을 알아낼 수 있었다.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 때 집안이 폭삭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가족은 학교 앞에 구멍가게를 냈다. 엄마는 군것질거리를 팔고 자식들은 방과후 친구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좌판을 깔고 자질구레한 물건을 팔았다는 것이다. 우리 상식으로, 그것도 딸아이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고, 아이들 역시 물건팔기에 나선 것은 ‘허, 참’ 싶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성공의 원천이 있다고 나는 판단했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전천후 인간’으로 그녀는 길러진 것이다. 아무리 벤처붐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녀는 굳건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여성에게 가해진 굴레를 용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가족제도와 결혼, 남성에 대해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지금 전세계는 모계사회로 진행 중이다.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판이 새로 짜이고 있다. 여성을 중심으로 남성은 원시수렵시대처럼 왔다가 가고, 또 오는 그런 모계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이미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보편화된 사실혼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결혼은 생애 여러 번 올 수 있다. 또한 이혼은 보편화되며 아이는 여성을 중심으로 양육될 것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족과 여성성의 문제에 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네번째는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성적 구조인 이른바 피라미드 구조는 권위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은 권위를 부정한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수백명에 이르는 성공한 벤처기업 사장 가운데 비서를 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이메일이나 메시지로 사내 외 업무처리를 하고, 자신의 스케줄도 입력시킨다. 실제로 비서라는 직종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서구의 경영전문가들도 꽤 많다. 디지털시대에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아니라 어떤 권위에도 오염되지 않는 보통사람이 조직을 이끌어갈 것이다. 비서 없이 1대 1 접속의 문을 열어놓은 사람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섯번째는 전략적으로 움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가슴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여성이 실수하고 지배당하고 좌절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전략이란 무엇인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행동지침을 이성적으로 수립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과감하게 나아가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전략이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의 문제”라고도 말했다. 과감한 가지치기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구사하는지가 바로 21세기 최고의 전략이 될 것이다.
여섯번째는 ‘옮겨다니라’, ‘떠돌이가 돼라’는 것이다. 21세기는 유목민의 시대다. 여성은 그동안 ‘정주성-정착성’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길을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끝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21세기를 제대로 된 여성의 시대로 만들 수 있다. 나라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성의 경제 역시 붕괴되었다. 여성이 자유롭게 움직여서는 안 될 그 어떤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
일곱번째, 공부하고 돈을 벌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위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두 가지뿐이다. 남자들이 알고 있는 것을 몰랐고, 남자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무식했고 돈이 없었다. 지식과 돈을 갖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인류가 이렇게 빨리 이처럼 많은 변화를 짧은 시간 내에 겪은 일은 없었다. 여성에게는 특히 그렇다. 윌리엄 기브슨은 “미래는 이미 다가왔지만 누구에게나 고르게 감지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나 특히 여성에게 중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