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의 안전성 경제성 신화는 이미 깨졌다.”(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핵발전소 반대 특별위원회 이상범 위원장)
“전력 수요 자체가 많이 늘고 있기 때문에 발전소 건설은 불가피하고, 에너지 다변화 차원에서 원전 건설은 포기할 수 없다.”(산업자원부 안철식 원자력산업과장)
95년 굴업도 사건 이후 외견상 잠잠했던 핵 발전소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울산 핵발전소 반대 공동집행위’가 9월2일까지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반핵운동연대와 함께 울산시 서생면 핵발전소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요구하며 5일 동안 농성을 벌이는 등 ‘핵발전소 반대 열기’가 불붙고 있다. 공집위는 이번 기회에 정부의 잘못된 핵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공집위는 울산 지역 32개 시민-사회단체와 시-군-구 의회, 그리고 주민대표로 구성됐다.
울산시민들의 핵발전소 반대 이유는 크게 두가지. 무엇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핵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 등 반핵 시민단체와 공집위는 “핵발전소는 79년 미국 드리마일 섬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나 86년 구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에서 보듯 안전하지도 않은데다 해체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성도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민주적 절차나 주민들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와 한전이 일방적으로 울산을 핵 단지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도 울산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이상범 위원장은 “98년 11월 울주군수가 독단적으로 울주군에 핵발전소를 유치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울산지역 원전 설치 반대운동이 시작됐고 올 6월 산자부가 울주군 서생면에 대한 원전 추가 부지 지정고시 강행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시 불붙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원전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산업자원부 원자력산업과 채규남 사무관은 “정부도 원전 건설에 따른 민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관리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노력으로도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 신규사업추진팀 전석주 팀장은 “시민단체 등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원전 건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와 그들의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처럼 전력 수요 증가 폭이 크지 않은 상황에 국민의 반대가 심해 원전 건설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 우리나라도 20년 후에는 전력 수요 증가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원전 건설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팀장은 전망한다.
정부와 한전은 또 원전 건설 반대운동에도 ‘거품’이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8월25일 건설 계획을 발표한 신고리 1, 2호기가 들어설 효암(부산 기장군) 및 비학(울산 울주군) 부지내 주민들은 보상이나 지역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오히려 환영하고 있는데 반해 보상에서 소외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것.
정부와 시민단체의 이런 논란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가 전력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정부의 현실론과 “대체 에너지 등 다른 방안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원전 타령만 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명분론이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결국 원전에 대한 철학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가 원전 건설을 계속하는 것은 여건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소 조성봉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원전 건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국민적 설득이 불가능해 엄청난 경제적-경제외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아직도 원전이 경쟁력 있는 발전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도 원전 건설 반대운동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이 되면 현실적으로 원전 건설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원전 건설 없이도 전력 공급이 충분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전 주장대로 앞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전 건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수-화력이나 가스 발전 등 대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김정인 교수는 이 점에서 원전 건설은 마지막 수단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원전 추가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므로 원전 위주 에너지 정책에 앞서 △에너지 절약 및 에너지 효율 향상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중국 러시아 지역의 천연가스 개발 참여를 통한 LNG 발전소 건설 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에너지 절약 등 수요 관리 위주의 정책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수요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량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피크타임 때의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다. 에너지절약시민연대는 “여름철 전국의 에어컨 온도를 1℃만 올려도 84만kW의 전력을 절약, 원전 1기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약 2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잘 알려진 대로 전력은 저장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발전소 건설은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를 전제로 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여름철이 아닌 계절에는 유휴시설이 되는 발전소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작년의 경우 한전의 평균 발전설비 가동률은 47.6%에 불과했다. 일반 제조업의 경우 이 정도 가동률은 ‘파산’을 의미한다.
결국 발전소 건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여름철 피크타임 전력수요를 억제, 계절별 시간대별로 수요를 평균화해야 한다(전문용어로는 부하율 개선이라고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물론 현행 전력요금 체계도 이를 위해 계절별 시간대별 요금을 달리하고 있다. 전력수요가 없는 심야시간대에 전력요금을 할인해주는 것도 부하율 개선을 위한 조치다.
그러나 현재의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전력수요가 몰리는 때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전력요금이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는 요금이 내려가는 전력요금 체계를 도입해야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이런 체계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신뢰성 있는 프로그램이 하루빨리 제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앙대 김정인 교수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없이는 정부나 기업, 국민들도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에너지 가격정책을 고수했던 과거의 전력산업 구조하에서는 값싸게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법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전력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작년 국회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 한전 노조는 작년의 기세를 몰아 ‘전력산업 구조개편 분쇄’를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통한 독점구조가 해체되면 한전의 원전 선호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는 “독점 구조하에서 전력수요 예측이 이뤄지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생산을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면 되지 특별히 다른 가능성을 찾을 이유가 없다”면서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원자력발전에 적극적인 것은 이들 나라에서 전력사업이 독점 내지 독점과 유사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에는 한전 내부에서도 대체로 동의한다. 한전 신규사업추진팀 전석주 팀장도 “원전의 경우 투자 규모가 크고 회임기간이 길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독점이나 독점에 가까운 회사들이 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원자력발전 부문이 자회사로 떨어져나가면 현재의 한전과 자금조달 조건이 달라지는 데다 현재상태만으로도 원전 발전의 수익성이 좋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원전을 무리해서 건설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 개편 등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편다고 해도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원전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는 다른 지역 주민의 뜻에 동의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절약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시대의 구호 같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전력 수요 자체가 많이 늘고 있기 때문에 발전소 건설은 불가피하고, 에너지 다변화 차원에서 원전 건설은 포기할 수 없다.”(산업자원부 안철식 원자력산업과장)
95년 굴업도 사건 이후 외견상 잠잠했던 핵 발전소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울산 핵발전소 반대 공동집행위’가 9월2일까지 서울 명동성당에서 한국반핵운동연대와 함께 울산시 서생면 핵발전소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요구하며 5일 동안 농성을 벌이는 등 ‘핵발전소 반대 열기’가 불붙고 있다. 공집위는 이번 기회에 정부의 잘못된 핵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공집위는 울산 지역 32개 시민-사회단체와 시-군-구 의회, 그리고 주민대표로 구성됐다.
울산시민들의 핵발전소 반대 이유는 크게 두가지. 무엇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핵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핵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 등 반핵 시민단체와 공집위는 “핵발전소는 79년 미국 드리마일 섬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나 86년 구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에서 보듯 안전하지도 않은데다 해체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성도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민주적 절차나 주민들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와 한전이 일방적으로 울산을 핵 단지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비치는 것도 울산시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이상범 위원장은 “98년 11월 울주군수가 독단적으로 울주군에 핵발전소를 유치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울산지역 원전 설치 반대운동이 시작됐고 올 6월 산자부가 울주군 서생면에 대한 원전 추가 부지 지정고시 강행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시 불붙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원전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산업자원부 원자력산업과 채규남 사무관은 “정부도 원전 건설에 따른 민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관리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노력으로도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 신규사업추진팀 전석주 팀장은 “시민단체 등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원전 건설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와 그들의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처럼 전력 수요 증가 폭이 크지 않은 상황에 국민의 반대가 심해 원전 건설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 우리나라도 20년 후에는 전력 수요 증가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원전 건설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팀장은 전망한다.
정부와 한전은 또 원전 건설 반대운동에도 ‘거품’이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8월25일 건설 계획을 발표한 신고리 1, 2호기가 들어설 효암(부산 기장군) 및 비학(울산 울주군) 부지내 주민들은 보상이나 지역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오히려 환영하고 있는데 반해 보상에서 소외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것.
정부와 시민단체의 이런 논란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가 전력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정부의 현실론과 “대체 에너지 등 다른 방안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원전 타령만 하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명분론이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결국 원전에 대한 철학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가 원전 건설을 계속하는 것은 여건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소 조성봉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원전 건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국민적 설득이 불가능해 엄청난 경제적-경제외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아직도 원전이 경쟁력 있는 발전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도 원전 건설 반대운동이 미국이나 유럽 수준이 되면 현실적으로 원전 건설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원전 건설 없이도 전력 공급이 충분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전 주장대로 앞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전 건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수-화력이나 가스 발전 등 대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김정인 교수는 이 점에서 원전 건설은 마지막 수단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원전 추가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므로 원전 위주 에너지 정책에 앞서 △에너지 절약 및 에너지 효율 향상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중국 러시아 지역의 천연가스 개발 참여를 통한 LNG 발전소 건설 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또 에너지 절약 등 수요 관리 위주의 정책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수요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량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피크타임 때의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다. 에너지절약시민연대는 “여름철 전국의 에어컨 온도를 1℃만 올려도 84만kW의 전력을 절약, 원전 1기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약 2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잘 알려진 대로 전력은 저장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발전소 건설은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를 전제로 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여름철이 아닌 계절에는 유휴시설이 되는 발전소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작년의 경우 한전의 평균 발전설비 가동률은 47.6%에 불과했다. 일반 제조업의 경우 이 정도 가동률은 ‘파산’을 의미한다.
결국 발전소 건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여름철 피크타임 전력수요를 억제, 계절별 시간대별로 수요를 평균화해야 한다(전문용어로는 부하율 개선이라고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물론 현행 전력요금 체계도 이를 위해 계절별 시간대별 요금을 달리하고 있다. 전력수요가 없는 심야시간대에 전력요금을 할인해주는 것도 부하율 개선을 위한 조치다.
그러나 현재의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전력수요가 몰리는 때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전력요금이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는 요금이 내려가는 전력요금 체계를 도입해야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이런 체계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신뢰성 있는 프로그램이 하루빨리 제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앙대 김정인 교수는 “전력산업 구조 개편없이는 정부나 기업, 국민들도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에너지 가격정책을 고수했던 과거의 전력산업 구조하에서는 값싸게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법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전력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작년 국회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 한전 노조는 작년의 기세를 몰아 ‘전력산업 구조개편 분쇄’를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통한 독점구조가 해체되면 한전의 원전 선호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통신대 이필렬 교수는 “독점 구조하에서 전력수요 예측이 이뤄지면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생산을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하면 되지 특별히 다른 가능성을 찾을 이유가 없다”면서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원자력발전에 적극적인 것은 이들 나라에서 전력사업이 독점 내지 독점과 유사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에는 한전 내부에서도 대체로 동의한다. 한전 신규사업추진팀 전석주 팀장도 “원전의 경우 투자 규모가 크고 회임기간이 길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독점이나 독점에 가까운 회사들이 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원자력발전 부문이 자회사로 떨어져나가면 현재의 한전과 자금조달 조건이 달라지는 데다 현재상태만으로도 원전 발전의 수익성이 좋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원전을 무리해서 건설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 개편 등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편다고 해도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원전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는 다른 지역 주민의 뜻에 동의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절약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시대의 구호 같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