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화제가 된 책 한 권과 앞으로 화제가 될지도 모르는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두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이다. 6월 초에 선보인 ‘시간박물관’(푸른숲)은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출간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고유번호를 매긴 5000부 한정판매, 스노화이트 고급지에 올컬러 인쇄, 변형 5×7배(일반 단행본의 1.8배) 판형과 붉은 천을 덮어씌운 양장본, 그리고 308쪽짜리에 4만9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 이 책은 이미 4000부 가량이 주인을 찾아가 곧 매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 책은 보는 즐거움에 정신이 팔려 정작 읽는 즐거움을 놓치게 만든다.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크리스틴 리핀콧 등 세계적인 석학이 왜 이 시점에서 ‘시간’을 이야기했을까. 물론 때늦은 감은 있다. 이 책의 원작은 뉴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개최된 ‘시간이야기전(展)’의 전시도록이었다. 남들은 200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되새긴 ‘시간’의 의미를 우리는 반년이 지난 뒤에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처럼 심오한 수수께끼를 꼬치꼬치 파고들려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농담으로 시작된 에코의 글은, 끊임없이 시간문제에 도전해온 인류가 얻어낸 답은 “시간이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한다”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시계는 유용한 물건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하루가 지루해서 길다고 느끼거나 너무 즐거워서 짧다고 느끼는-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진정한 척도는 내적 척도라고 말한다.
그밖에도 시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가득 찬 이 책을 넘기면서,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만 그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간단할 수도 있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이 책은 사진 400여장과 석학 24명을 동원했다.
‘시간의 박물관’이 시간의 철학을 파헤치려 했다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빌려준다.
책머리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우리는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눈치챌 수 있다. 저자는 성급한 독자들을 위해 책 앞부분에 평안함을 보장해 주는 아홉 가지 생활태도를 나열해 놓았다. 문제도 읽기 전에 정답을 알려준 셈. 그가 제시한 태도란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하기, 권태-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하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 글쓰기, 포도주, 모데라토 칸타빌레-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등이다.
그러면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느림’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민음사)이나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새물결), 찰스 핸디의 ‘헝그리 정신’(생각의 나무)에 최근 나온 스튜어트 브랜드의 ‘느림의 지혜’(해냄)까지 속도의 시대를 경고하는 메시지는 여러 차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손이 가는 것은 여전히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다니면서 그 속도감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시간 박물관/ 움베르토 에코 외 23인 지음/ 푸른숲 펴냄/ 308쪽/ 4만9000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상소 지음/ 김주경 옮겸/ 동문선 펴냄/ 232쪽/ 7000원
하지만 이 책은 보는 즐거움에 정신이 팔려 정작 읽는 즐거움을 놓치게 만든다.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크리스틴 리핀콧 등 세계적인 석학이 왜 이 시점에서 ‘시간’을 이야기했을까. 물론 때늦은 감은 있다. 이 책의 원작은 뉴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개최된 ‘시간이야기전(展)’의 전시도록이었다. 남들은 200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되새긴 ‘시간’의 의미를 우리는 반년이 지난 뒤에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처럼 심오한 수수께끼를 꼬치꼬치 파고들려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농담으로 시작된 에코의 글은, 끊임없이 시간문제에 도전해온 인류가 얻어낸 답은 “시간이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한다”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시계는 유용한 물건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하루가 지루해서 길다고 느끼거나 너무 즐거워서 짧다고 느끼는-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진정한 척도는 내적 척도라고 말한다.
그밖에도 시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으로 가득 찬 이 책을 넘기면서,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만 그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어쩌면 간단할 수도 있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이 책은 사진 400여장과 석학 24명을 동원했다.
‘시간의 박물관’이 시간의 철학을 파헤치려 했다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빌려준다.
책머리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우리는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눈치챌 수 있다. 저자는 성급한 독자들을 위해 책 앞부분에 평안함을 보장해 주는 아홉 가지 생활태도를 나열해 놓았다. 문제도 읽기 전에 정답을 알려준 셈. 그가 제시한 태도란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신뢰하는 이의 말에 완전히 집중하기, 권태-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하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을 다시 한번 떠올리기, 글쓰기, 포도주, 모데라토 칸타빌레-절제라기보다는 아끼는 태도 등이다.
그러면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느림’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느림’(민음사)이나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새물결), 찰스 핸디의 ‘헝그리 정신’(생각의 나무)에 최근 나온 스튜어트 브랜드의 ‘느림의 지혜’(해냄)까지 속도의 시대를 경고하는 메시지는 여러 차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손이 가는 것은 여전히 허둥지둥 시간에 쫓겨다니면서 그 속도감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시간 박물관/ 움베르토 에코 외 23인 지음/ 푸른숲 펴냄/ 308쪽/ 4만9000원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상소 지음/ 김주경 옮겸/ 동문선 펴냄/ 232쪽/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