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공학 석사, UCL.A 재료공학 박사.
●미국 IBM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1981~91), 한국표면공학회 기술이사(1998∼99) 역임. 현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 대표.
●부인 김나나씨(48)와의 사이에 1남1녀.
‘Hangeul’이란 영문 표기를 본 외국인들 중 열에 아홉은 ‘한글’을 ‘행을’로 발음한다. 이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Shinchon)역과 신천(Shinch’on)역을 단순히 표기상으로만 분간하기란 쉽잖은 일이다. 경북 대구시의 공식 영문 표기는 ‘Taegu’. 그러나 아직도 백화점 등 일부에선 ‘Daegu’를 고집한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날까. 모두가 로마자 표기법의 오류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지명과 인명 등 고유명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지난 84년부터 쓰이고 있는 현행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에게조차 ‘낯선 문법’이 돼 버린 탓이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년간 끊임없이 사용상의 문제점을 노출시켜온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 작업은 여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 지난해 말 개정안이 확정될 예정이었지만 총선 등으로 인해 미뤄지는 바람에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은 아직도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수렴을 거치고 있는 단계다.
“로마자 표기법의 주 사용자가 외국인에 한정돼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로마자 표기법은 한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로마자를 차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세계 공용어가 영어란 이유로 10개의 모음을 가진 한글을 5개의 모음만 있는 영어로 다 표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모순이죠. 외국인들이 로마자 표기로 된 순수 한글 단어들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는데 과연 이를 제대로 알아듣고 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약칭 한세연구회) 회장 리의재박사(53). 그는 최근 지지부진한 한글 로마자 표기법 개정작업과 관련, 개정시안이 가진 결정적인 결함을 지적하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아 관련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리박사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우선 외국인들이 현행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한글의 음절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각 음절의 초성(첫소리)을 대문자로 쓰되 붙여쓰자는 것. 예컨대 한글을 ‘Hangeul’ 대신 ‘HanGeul’로 표기하면 음절 구분이 쉽고 발음이 오히려 국어에 가까워져 내외국인 모두에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동통신 회사인 도코모는 ‘DoCoMo’라고 쓰고 싱가포르전화국도 ‘SingTel’로 줄여쓰고 있다. 개정시안은 여전히 음절 구분을 하지 않고 있지만 대소문자 혼용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은 ‘Seoul’이 아니라 ‘SeoUl’이 돼야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주장은 로마자 표기법에서 과도하게 쓰이는 특수문자 등 부호를 없애자는 것. 한글 맞춤법과 어원을 무시한 채 발음 위주로 표기하다 보니 불필요한 부호가 많아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것이 이유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일부 받아들여졌다. 개정시안에서는 로마자 표기에 일명 ‘반달표’(ㅡ와 ㅓ를 구분짓기 위해 영문자 위에 표기하던 부호)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한글의 세계화’. 리박사가 이같은 지론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한글을 세계적인 언어로 부각시키고 싶다는 각별한 한글 사랑 때문이다. 그는 누구나 쉽고 간결하게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할 수 있도록 자신이 고안한 ‘쉬운 표기법’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리박사는 어문학자가 아니다. 공학박사 출신이다. 그의 전공은 진공박막표면기술. 지난 81년부터 만 10년간 미국 IBM기술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고 지금도 대한금속학회 평의원회 위원으로 있으니 그의 천직은 엔지니어임이 분명하다. 폐수와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공상태에서 박막(일종의 도금)을 만드는 첨단기술을 연구했던 그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6년 전 한 신문의 독자투고를 통해 국가에서 정한 로마자 표기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리박사는 96년 순수 민간연구모임인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를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학술활동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의 성인 ‘이’(李)를 ‘리’로 바꿨다. “원래 표기법은 ‘리’가 맞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리순신’ ‘리성계’ 등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러던 것이 정부수립 이후 한글맞춤법이 정해지면서 남한에서는 ‘이’로, 북한에서는 ‘리’로 정착됐다. 나는 옛것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성 영문 표기도 ‘Lee’나 ‘Yi’를 사용하는 대다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Ri’를 쓴다.
공학도의 ‘외도’는 계속됐다. 리박사는 96년 문화관광부의 로마자 표기법 관련 위탁용역 과제를 수행하고 97년엔 국립국어연구원의 ‘로마자 표기 개정 실무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로마자 표기법에 관한 논문도 10여 편이나 냈다. 현재 한세연구회의 회원은 950여 명. 대학교수 학생 직장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씩 정기산행을 갖는 한편 인터넷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리박사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내외국인 모두 혼동없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로마자 표기법 개정보완운동은 하나의 단계적 사업일 뿐이다. 로마자 표기법은 결국 세계인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한글이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전까지만의 일시적 방편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한글을 세계적인 언어로 키우자는 것이 활동의 최종 목표다.”
리박사의 꿈은 결코 작지 않다. 한글이 모든 나라에서 공용글자로 채택되도록 하여 외국에도 ‘외국어의 한글 표기법’이 만들어지게 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그의 생각엔 한글이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국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소신이 깃들여 있다.
따라서 그의 관심사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만 머물러 있진 않다. 그는 영어 등 외래어의 우리말 표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무턱대고 외래어를 선망하는 줏대없는 체질은 우리 고유의 말을 황폐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인터넷을 자신이 명명한 ‘세계망’이라 쓰고 홈페이지를 뜻 그대로 ‘택면’(宅面)이라 부른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막상 통일이 되면 남북한간의 이질적인 언어문제가 대두될 겁니다. 그래도 남북한 양측간에 가장 위대한 언어가 한글이며, 언어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고집스런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는 인식만 공유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모든 게 결국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착되는 셈이죠.”
‘GamSaHabNiDa(감사합니다)!’
기자가 리박사의 홈페이지 주소를 클릭하자 태극 마크가 선명한 그의 ‘택면’(http://www.shinbiro.com/~ProfRi)엔 우리말을 아예 로마자로 표기한 문구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그의 끊임없는 ‘자주정신’을 예고하는 징표처럼 여겨졌다. 한글을 영문으로 옮길 때 이탤릭체로 비스듬히 쓰면 외국인들의 눈에 더욱 잘 띄는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소한 배려에서마저 그의 한결같은 ‘한글사랑’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IBM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1981~91), 한국표면공학회 기술이사(1998∼99) 역임. 현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 대표.
●부인 김나나씨(48)와의 사이에 1남1녀.
‘Hangeul’이란 영문 표기를 본 외국인들 중 열에 아홉은 ‘한글’을 ‘행을’로 발음한다. 이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Shinchon)역과 신천(Shinch’on)역을 단순히 표기상으로만 분간하기란 쉽잖은 일이다. 경북 대구시의 공식 영문 표기는 ‘Taegu’. 그러나 아직도 백화점 등 일부에선 ‘Daegu’를 고집한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날까. 모두가 로마자 표기법의 오류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지명과 인명 등 고유명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지난 84년부터 쓰이고 있는 현행 한글 로마자 표기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에게조차 ‘낯선 문법’이 돼 버린 탓이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년간 끊임없이 사용상의 문제점을 노출시켜온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 작업은 여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 지난해 말 개정안이 확정될 예정이었지만 총선 등으로 인해 미뤄지는 바람에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은 아직도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수렴을 거치고 있는 단계다.
“로마자 표기법의 주 사용자가 외국인에 한정돼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로마자 표기법은 한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로마자를 차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세계 공용어가 영어란 이유로 10개의 모음을 가진 한글을 5개의 모음만 있는 영어로 다 표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모순이죠. 외국인들이 로마자 표기로 된 순수 한글 단어들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는데 과연 이를 제대로 알아듣고 그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약칭 한세연구회) 회장 리의재박사(53). 그는 최근 지지부진한 한글 로마자 표기법 개정작업과 관련, 개정시안이 가진 결정적인 결함을 지적하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아 관련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리박사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우선 외국인들이 현행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한글의 음절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각 음절의 초성(첫소리)을 대문자로 쓰되 붙여쓰자는 것. 예컨대 한글을 ‘Hangeul’ 대신 ‘HanGeul’로 표기하면 음절 구분이 쉽고 발음이 오히려 국어에 가까워져 내외국인 모두에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동통신 회사인 도코모는 ‘DoCoMo’라고 쓰고 싱가포르전화국도 ‘SingTel’로 줄여쓰고 있다. 개정시안은 여전히 음절 구분을 하지 않고 있지만 대소문자 혼용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은 ‘Seoul’이 아니라 ‘SeoUl’이 돼야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주장은 로마자 표기법에서 과도하게 쓰이는 특수문자 등 부호를 없애자는 것. 한글 맞춤법과 어원을 무시한 채 발음 위주로 표기하다 보니 불필요한 부호가 많아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것이 이유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일부 받아들여졌다. 개정시안에서는 로마자 표기에 일명 ‘반달표’(ㅡ와 ㅓ를 구분짓기 위해 영문자 위에 표기하던 부호)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한글의 세계화’. 리박사가 이같은 지론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한글을 세계적인 언어로 부각시키고 싶다는 각별한 한글 사랑 때문이다. 그는 누구나 쉽고 간결하게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할 수 있도록 자신이 고안한 ‘쉬운 표기법’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리박사는 어문학자가 아니다. 공학박사 출신이다. 그의 전공은 진공박막표면기술. 지난 81년부터 만 10년간 미국 IBM기술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고 지금도 대한금속학회 평의원회 위원으로 있으니 그의 천직은 엔지니어임이 분명하다. 폐수와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공상태에서 박막(일종의 도금)을 만드는 첨단기술을 연구했던 그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6년 전 한 신문의 독자투고를 통해 국가에서 정한 로마자 표기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위해 리박사는 96년 순수 민간연구모임인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학술연구회’를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학술활동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의 성인 ‘이’(李)를 ‘리’로 바꿨다. “원래 표기법은 ‘리’가 맞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리순신’ ‘리성계’ 등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러던 것이 정부수립 이후 한글맞춤법이 정해지면서 남한에서는 ‘이’로, 북한에서는 ‘리’로 정착됐다. 나는 옛것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성 영문 표기도 ‘Lee’나 ‘Yi’를 사용하는 대다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Ri’를 쓴다.
공학도의 ‘외도’는 계속됐다. 리박사는 96년 문화관광부의 로마자 표기법 관련 위탁용역 과제를 수행하고 97년엔 국립국어연구원의 ‘로마자 표기 개정 실무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로마자 표기법에 관한 논문도 10여 편이나 냈다. 현재 한세연구회의 회원은 950여 명. 대학교수 학생 직장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씩 정기산행을 갖는 한편 인터넷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리박사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내외국인 모두 혼동없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로마자 표기법 개정보완운동은 하나의 단계적 사업일 뿐이다. 로마자 표기법은 결국 세계인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한글이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전까지만의 일시적 방편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한글을 세계적인 언어로 키우자는 것이 활동의 최종 목표다.”
리박사의 꿈은 결코 작지 않다. 한글이 모든 나라에서 공용글자로 채택되도록 하여 외국에도 ‘외국어의 한글 표기법’이 만들어지게 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그의 생각엔 한글이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국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소신이 깃들여 있다.
따라서 그의 관심사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만 머물러 있진 않다. 그는 영어 등 외래어의 우리말 표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무턱대고 외래어를 선망하는 줏대없는 체질은 우리 고유의 말을 황폐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인터넷을 자신이 명명한 ‘세계망’이라 쓰고 홈페이지를 뜻 그대로 ‘택면’(宅面)이라 부른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막상 통일이 되면 남북한간의 이질적인 언어문제가 대두될 겁니다. 그래도 남북한 양측간에 가장 위대한 언어가 한글이며, 언어문화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고집스런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는 인식만 공유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모든 게 결국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착되는 셈이죠.”
‘GamSaHabNiDa(감사합니다)!’
기자가 리박사의 홈페이지 주소를 클릭하자 태극 마크가 선명한 그의 ‘택면’(http://www.shinbiro.com/~ProfRi)엔 우리말을 아예 로마자로 표기한 문구들이 가득했다. 그것들은 그의 끊임없는 ‘자주정신’을 예고하는 징표처럼 여겨졌다. 한글을 영문으로 옮길 때 이탤릭체로 비스듬히 쓰면 외국인들의 눈에 더욱 잘 띄는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소한 배려에서마저 그의 한결같은 ‘한글사랑’이 묻어났기 때문이다.